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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이지상의 ‘십우도1, 심우 소를 찾아서’

감독의 귀농 경험 토대로 ‘나는 누구인가’ 성찰

이지상 감독의 ‘십우도 시리즈’
스스로 삶 성찰하는 내면일기
‘심우’는 귀향 전후 가족사 담겨
귀농 주제로 삶의 화두 일깨워   

 

십우도와 십우도 중 심우.

영화는 관객과 세상에 보내는 편지이다. 배창호 감독은 관객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라고 했고 독립영화 감독들은 세상을 바꾸는 대자보처럼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영화는 때로 감독이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일기이기도 하다. 이지상의 ‘십우도’ 시리즈는 감독의 내면일기에 가깝다. 이지상 감독은 오래 전 필자와의 대화에서 ‘사찰과 스님이 등장하지 않은 불교영화’로 십우도 시리즈를 구상하고 작업했다고 넌지시 말한 적이 있다. 

계획대로 이지상 감독은 2004년부터 ‘십우도’ 연작을 제작하기 시작하였으며 자신의 발언대로 소가 등장하지 않는 십우도 영화를 지향했다. 어쩌면 소 대신 감독이 스스로 자신의 귀농에 대해 성찰하고, 귀농생활에서 제기한 화두인 ‘왜 도시에 놓은 모과와 시골에 모셔둔 모과의 썩는 속도는 다른가’에 대해 카메라로 질문하고 작품으로 답을 한다. 영화 십우도는 소 대신 귀농한 한 인간이 스스로 길을 찾아가고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고 자신의 내면으로 카메라를 향하는 흔적이다.

첫 작품 ‘십우도1, 심우 소를 찾아서’는 감독 자신의 귀향일기이며 귀향 전후에 일어난 가족사에 대한 성찰이다. 영화평론가 강성률은 감독이 감독에게 보내는 편지가 ‘십우도 2, 견적’의 내용이라고 평가했다. ‘십우도 1, 심우 소를 찾아서’는 감독이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이기 보다는 자신의 내면으로 보내는 전언을 담은 일기에 가깝다. 이 작품의 첫 장면은 경허 스님의 십우도의 심우 게송을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읽어주면서 글씨를 써내려가는 손을 잡아낸다. 그리고 자막으로 가득 채운 화면에서 이지상 감독 자신의 영화 이력과 2003년 귀농을 결심하고 준비한 과정에 대해 소상하게 피력한다. 다음 장면은 감독 스스로 귀농 준비를 위해 농장에서 농사일을 배우는 과정을 담았다. 이 장면은 다큐적 사실성보다 귀농의 과정을 몽타주로 보여주는 입장에서 딸기를 재배하고 채소를 기르는 장면에 롱쇼트의 거리에서 관찰하고 있다. 첫 장면의 자연 속에서 일상과 이 장면의 귀농의 준비는 귀농을 통해 시골에서의 삶으로 길을 나서는 주인공의 첫걸음이므로 소를 찾아 나서는 심우와 조응된다. 심우(尋牛)의 게송은 ‘아득히 펼쳐진 수풀 헤치고 소 찾아 나서니 물 넓고 산 먼데 길은 더욱 깊구나’(십우도, 장순용 엮음, 세계사)이다. 소를 찾아 길을 나서는 것과 귀농을 위해 서울이라는 도시를 떠나 새로운 삶으로 접어드는 장면은 닮았다. 

장면이 전환되면 손이 클로즈업되고 중환자 병실이다. 다음 롱쇼트는 감독과 중환자실에 투병중인 감독의 모친으로 화면이 채워진다. 투병중인 노모와 간병을 돕기 힘든 노부를 서울에 남겨두고 문경으로 귀농을 하게 된 자신의 무거운 마음을 자문하듯이 보이스 오버로 들려준다. 이미지에 덧입혀진 감독의 보이스오버는 영화로 쓰는 일기인 시네다이어리 형식을 분명히 한다. 실험영화에서 시네다이어리는 사적인 일기를 통해 개인의 내면과 주장을 드러내지만 이지상의 작품은 시네다이어리를 통해 십우도의 정신을 반추하게 한다. 

이지상 감독.<br>
이지상 감독.

감독은 귀농 감행 원인에 대한 해명보다 귀농 전 병상의 모친이 바라보는 눈동자가 자신의 마음을 찌른다는 자책감에 더 방점을 찍는다. 야채에 물을 주는 동작을 반복하다가 주인공인 이지상 감독이 두 다리를 뻗고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두 팔을 벌린다. 그는 슬픔을 표현하면서 투병중인 모친이 모년 모일 모시에 별세했음을 전한다. 영화는 입관 장면과 화장 장면을 다큐멘터리로 담아내고 수의 대신 연두색 치마와 자주색 저고리를 입혀드렸음을 감독의 나레이션으로 전한다. 감독은 조성된 묘에 제를 지낸다. 다음 장면은 회상장면으로 넘어가서 옷감으로 허리띠를 만드는 모친과 형제의 이미지를 얼굴을 배제한 탈프레임으로 보여준다. 결국 2003년 6월 문경으로의 귀농 사실을 자막으로 설명한다. 

문경의 집에서 서울의 가족에게 전화하는 장면을 보이스오버로 다시 보여주면서 귀농사실을 확인시켜준다. 귀농한 집에서 감독은 혼자 프레임의 귀퉁이에 배치되어 식사를 한다. 중심인 서울에서 시골로 귀농한 사실과 노부모를 등지고 귀농한 스스로의 가책이 프레임의 중앙 보다 모서리와 가장 자리의 배치를 자연스럽게 한다. 

그는 탈곡하여 포장한 곡물에 큰 절을 올린다. 탈곡하는 장면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탈곡하는 농부들과 탈곡하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쌓이는 먼지와 땀이 스며든 의복 보다는 카메라 앞에선 연출된 농촌 풍경이 다소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십우도1 심우 소를 찾아서’의 진지한 감독의 내면적 반성과 성찰과 회한이 가득하지만 곡식탈곡의 풍경은 노동과 시간의 흔적이 희석되고 연출된 풍경이라는 인위적 때를 벗겨내지 못한 인상을 준다. 
 

영화 ‘십우도1, 심우 소를 찾아서’ 캡쳐.

저녁에 빈집이 프레임에 외롭게 놓여있고 감독은 농사일을 마치고 귀가하여 프레임 인 한다. 감독은 마루에 앉아 노동 이후의 달콤한 휴식과 고단한 하루를 되돌아본다. 이 순간에도 노동의 고통과 수확의 기쁨을 밀어내고 찾아드는 질문은 “어미를 죽이고 떠난 귀농, 뭘 찾아 떠났는지요, 소를 찾아 나선 나는 누구인가요?”라는 화두를 꺼내면서 ‘십우도 1, 심우 소를 찾아서’의 본령에 걸맞는 질문을 던진다. 참 나를 찾아서 나서는 십우도의 첫 장면인 심우는 ‘나는 왜 가족과 도시를 떠나 귀농을 하였으며 뭘 찾기 위해 길을 나섰는가’라는 질문지를 통해 십우도의 의미로 접어든다. 

이지상은 사찰과 스님이 등장하지 않는 십우도를 계획한 연출 의도에 부합한 작품을 완성한다. 그는 스스로의 일기와 같은 영화 만들기를 통해 ‘나는 왜 귀농을 하게 되었는가와 나는 귀농으로 무엇을 찾으려 하는가’라는 화두를 제시한다. 그리고 관객 모두는 삶을 통해 무엇을 찾고 있으며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내면의 거울에서 바라보게 한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512호 / 2019년 11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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