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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추사 김정희, 무량수와 자화상 ②

기자명 손태호

유일하게 평범한 일상 누렸던 말년을 그린 자화상

제주 귀양 풀려나 다시 북청 유배
유배 돌아와 봉은사·초당서 생활
불교 가르침 통해 평범한 삶 누려
자화상 진아에 대한 깨달음 내포
글씨 ‘판전’ 마지막 힘 쏟은 걸작

김정희 作 ‘자화상’, 종이에 담채, 32×23.5㎝, 19세기, 선문대박물관 소장.
김정희 作 ‘자화상’, 종이에 담채, 32×23.5㎝, 19세기, 선문대박물관 소장.

55세부터 시작된 제주도 귀양살이는 63세가 되어서야 해배가 되어 드디어 뭍으로 올라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울 장동 월성위궁은 이미 안동 김씨가 차지해 예산 향저에 몸을 추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아 서울 한강 노량진 건너편 용산 쪽에 작은 거처를 마련하여 지냈습니다. 이 시기를 강상(江上)시절이라 부르는데 경제적으로 궁핍하여 제수음식조차 타인의 도움으로 마련하는 시절이었지만 왕성한 예술적 활동으로 추사하면 떠오르는 명작들이 이 시기에 쓰고 그려집니다.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 ‘불이선란(不二禪蘭)’ 등이 이 시절 작품들입니다. 이 시기에도 불교와의 인연은 계속 이어져 산사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적은 ‘산사’라는 시와 ‘은해사(銀海寺)’ 현판 및 은해사 ‘대웅전(大雄殿)’, 백흥암의 ‘시홀방장(十笏方丈)’ 등 현판 글씨를 쓰고 여러 스님들과 편지도 주고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평온은 그리 길지 못했습니다. 안동 장씨에 대항하던 추사의 벗이자 후원자이던 영의정 권돈인이 헌종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안동 김씨의 공격으로 관직에서 쫓아낸 것으로도 모자라 그 배후에 김정희가 있다고 주장하여 결국 북청으로 유배를 보내버립니다. 

66세의 병약한 김정희로서는 정말 억울하고 또 억울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이때 김정희는 “하늘이여, 나라는 존재는 도대체 어떤 존재란 말입니까?”라고 울부짖었다 합니다. 고달픈 북청생활에서도 학문적 열정은 식지 않아 ‘황초령 진흥왕 순수비’를 고증하였고 석노라고 부르는 돌화살촉을 주워 숙신의 유물임을 고증하였습니다. 또한 ‘침계(梣溪)’와 ‘석노시(石砮詩)’라는 명필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2년간의 북청 유배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김정희는 서울 봉은사와 과천 초당을 오가며 생활하였습니다. 

과천 초당은 아버지 김노경의 묘 바로 앞에 아버지가 마련해두었던 작은 별서였습니다. 이곳에서 김정희는 71세로 죽기 전까지 4년간 인생에서 가장 편안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세상을 호령하던 기상과 학문적 자부심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고 몰락한 양반가의 울분 또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누렸는데 이때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 한 점을 남겼습니다. 

의관을 갖추고 위엄 있게 그려진 다른 초상화와 달리 탕건을 쓰고 평상복을 입은 촌로의 모습입니다. 왼쪽 어깨는 오른쪽에 비해 올라갔고 몸은 마르고 얼굴은 다소 초췌한 모습입니다. 가는 먹선으로만 그려진 얼굴은 머리카락과 수염, 구레나룻을 비교적 섬세하게 그렸는데 정리가 되지 않아 이리저리 헝클어진 모습 그대로입니다. 주름은 깊게 패여 살아온 날이 고됐음을 알겠고, 입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듯 굳게 다물고 있습니다. 마치 어느 날 낮잠이라도 자고 일어난 모습 그대로 그린 듯합니다. 

모든 것이 어수룩해 보여도 눈빛 하나는 형형합니다. 언뜻 보아 거칠고 평범한 그림처럼 보이지만 과천시절 세상의 아무런 원망도 후회도 없고 남들에게 뭐 하나 자랑하고자하는 마음이 없던 그 모습 그대로의 자화상입니다. 불필요한 기교 없이 담박한 그림이며 주인공의 심정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우리나라 초상화의 기본 정신인 전신사조(傳神寫照)를 잘 구현한 작품입니다. 오른쪽 위에는 다른 종이에 써서 오려 붙인 김정희의 화상찬(畵像讚)이 적혀 있습니다. 

‘이 사람을 나라고 해도 좋고 내가 아니라 해도 좋다. 나라고 해도 나고 내가 아니라 해도 나다. 나고 나 아닌 사이에 나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제석의 여의주가 주렁주렁한 데 누가 큰 마니주 앞에서 모습에 집착하는가. 하하. 과천 노인이 스스로 짓다.’

김정희는 누군가 이 자화상을 보고 자신의 실제 모습과 ‘같다’ ‘다르다’라는 품평을 할 것으로 생각되었는지 나라고 해도 좋고, 내가 아니라고 해도 좋다고 합니다. 이는 언뜻 초상화의 닮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의 모습과 진짜 자신에 대한 불교적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나와 나 아닌 사이에 나라고 할 만한 게 없다는 뜻은 진여(眞如), 즉 변화하는 세계의 변화하지 않는 존재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으로의 불교적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김정희가 연이은 유배생활과 부인을 비롯한 친인의 죽음, 풍비박산난 가문, 곤궁한 생활 속에서도 말년에 이렇듯 소박하고 평범한 자신의 자화상을 그릴 수 있었던 힘은 불교적 삶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김정희는 젊어서부터 불교와 인연이 깊었습니다. 추사의 별호인 중에 부처의 종이니 불교에 귀의한 사람이라는 뜻의 ‘불노(佛奴)’, 고요하게 선정에 든다는 ‘정선(靜禪)’, 인간적·사회적 능욕을 참는 수행을 하는 불자란 뜻의 ‘찬제거사(羼提居士)’도 불교와 관련된 호입니다. ‘천축고선생’과 ‘나가산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추사는 경전에도 매우 밝아 대승경전은 물론이고 ‘아함경(阿含經)’과 명상법인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도 공부했습니다. 또 초의선사에게 ‘전등록(傳燈錄)’을 요청하였고 불교백과사전에 해당하는 ‘법원주림(法苑珠林)’ ‘종경록(宗鏡錄)’을 구하여 읽었을 정도로 불경 공부에 열심이었습니다. 

이처럼 불교의 세계관에 심취하여 불경을 구하여 읽으면서 불교를 공부한 결과 추사는 쟁쟁한 선사들과 논변하고, 기도를 등한시하며 화두만 들고 있는 승려들을 비판하고 염불을 강조할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말년에는 봉은사에 기거하면서 불교에 귀의하여 불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죽기 며칠 전 병든 몸을 일으켜 봉은사 경판전 현판 ‘판전’을 썼는데 마치 어린애가 쓴 것 같은 아무런 사심과 욕심 없는 천진무구한 명작을 남기게 됩니다. 김정희는 이 글씨를 쓰고 사흘 후에 세상을 떠납니다. 생의 마지막 기력을 이 두 글자에 쏟아낸 것입니다. 불자이자 위대한 학자이고 당시 동아시아 서화, 금석학의 최고봉이었던 추사는 그렇게 세상과 작별하였습니다. 그런 추사의 마지막이 보고 싶지 않았는지 초의선사는 장례에는 참여하지 않고 멀리서 추사를 배웅하다가 사후 2년 후 탈상 바로 직전 상주를 찾아와 애통한 심정의 제문을 바칩니다.

‘… 슬프다! 선생이시여. 사십이년의 깊은 우정을 잊지 않고 저 세상에서는 오랫동안 인연을 맺읍시다. … 손수 달인 뇌협과 설유의 차를 함께 나누며 슬픈 소리를 들으면 그대는 눈물을 뿌려 옷깃을 적시곤 했지요. 생전에 말하던 그대 모습 지금도 거울처럼 또렷하여 그대를 잃은 나의 슬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나이다. … 시비의 문을 벗어나서 환희지에서 자유로이 거니시겠지요. 연꽃을 손에 쥐고 안양을 왕래하시며 거침없이 흰 구름 타고 저 세상으로 가셨으니 누가 감히 막을 수 있겠습니까? 가벼운 몸으로 편안히 가시옵소서. 흠향하소서.’ (초의선집 中) 

세상이 아무리 자신을 속여도 자신의 본 모습을 찾아 나선 추사 김정희. 그가 직접 그린 ‘자화상’을 보면서 스스로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에 과연 무엇이 있는지 깊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손태호 동양미술작가, 인더스투어 대표 thson68@hanmail.net

 

[1512호 / 2019년 11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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