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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수행

기자명 금해 스님

죽음이란 누구나 가는 길이니
어렵지 않은 평범한 일상일 뿐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사라지면
삶서 일어나는 악행도 사라져

저의 일상은 죽음과 매우 친근합니다. 신도나 가족, 이웃 등 인연들은 그물망처럼 이어져, 그들의 병고(病苦)와 죽음을 함께 합니다. 병문안을 시작으로 장례식장, 입관 등 항상 기도를 하게 됩니다. 가장 가까이 보기에, 죽음은 항상 제 옆에 붙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의 고통이 저를 아프게 합니다. 제 기도가 모자란 듯해서,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때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그만 듣고 싶어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죽음'이란 그림자가 짓눌러 숨을 쉬기 힘들면, 새벽빛이 들 때까지 오랫동안 법당을 거닙니다.

한 달 전쯤, 오래전부터 알았던 어느 거사님이 암으로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너무도 뜻밖이라 부랴부랴 문병을 갔습니다. 감기 한 번 앓은 적이 없는 건강한 분이라, 가족들도 모두 넋을 잃었습니다. 2주 동안을 물 한 모금 먹지 못해 많이 말랐습니다. 거사님의 마른 손을 잡으니, 눈물 흘립니다. 아내는 그동안 말도 없고 표정도 없던 거사님이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며 같이 울었습니다. 거사님은 자신의 병이 심각함을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거사님은 가장 큰 두려움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아직 젊은 아내, 딸에 대한 걱정과 자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한 번도 죽는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는데, 너무도 두렵답니다. 

저는 거사님께 “저도 죽음이 두렵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수년 전 무문관에서 동안거를 보내던 날이었습니다. 몸이 많이 아팠는데, 작은방 안에서 죽겠다는 생각이 든 후에 일주일 정도를 먹거나 잠들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은 검은 어둠 속에서 쏟아지는 폭우와 거센 바람 소리가 죽은 이들의 비명처럼 들리고, 창밖의 대나무 그림자가 요동치고 기왓장이 흔들렸습니다. 금방이라도 지붕이 무너져 순식간에 파묻힐 것 같았습니다. 거대한 태풍의 눈 가운데 갇힌 것처럼, 천장을 바라본 채 방 가운데 얼어붙은 듯 서 있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문득 제 입으로 수없이 말했던 경전 구절이 머리를 때린 것처럼 문득 떠올랐습니다.

“노인도 죽고, 스무살 청년도 죽고, 한 살 된 아이도 죽는다.”

저는 그 밤에, 겨우 죽음에 대한 공포를 벗어났습니다. 

죽음이란 누구나 가는 길이니, 어렵지도 두렵지도 않은 평범한 일상의 일일뿐이지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면 삶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악행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병실에 누워있는 거사님께 제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난 이 이야기를 해 드렸습니다. 제가 수없이 듣고 말했어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던 그 구절을, 거사님은 첫 한마디에 이해했습니다. 죽음의 두려움이 자신의 것인 간절한 이에게 다른 설명은 필요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경전의 수많은 구절을 듣고 암송하고 배웁니다. 하지만, 진정 체득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경전을 아는 만큼 수행의 힘이 비례하여 증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지극히 간절한 마음으로, 오롯이 정진하는 사람들이 참선이든 공부든 기도든, 어디서나 길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더 빨리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고, 훨씬 빨리 체득합니다.

금해 스님

동안거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생사를 벗어날 길이 열렸습니다. 그 길에서 무엇을 할지 자신만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금해 스님 서울 관음선원 주지 okbuddha@daum.net

 

[1513호 / 2019년 11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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