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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민족종교인의 ‘하나의 원리’

기자명 이제열

“우주의 근본원리를 깨닫는다고요?”

종교 관계자들 모인 토론회서
한 토론자 “종교 뿌리는 같다”
스님·불자도 비슷한 견해 많아
‘연기·공성’ 간과한 데서 비롯

종교토론회가 있었다. 토론 주제는 ‘각 종교에서 말하는 선과 악’이었다. 나는 불교 측 입장에서 선악 문제를 다루고 타종교 견해가 불교와 어떻게 다른지를 밝히기 위해 참석했다. 각 종교마다 주제발표가 있고 다음으로 자유토론과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각자 자신의 종교입장에서 타종교의 주장을 비판 수용하는 가운데 민족종교 발표자가 갑자기 토론 주제와 벗어나는 주장을 했다.

“각 종교의 형태는 달라도 그 뿌리는 같습니다. 결국은 하나의 근본을 말하는 것이고, 그 근본을 가르치는 방법이 다를 뿐입니다. 기독교의 하나님, 불교의 법, 유교의 도, 우리 민족종교의 한울님이 결국은 같은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에서 비롯됐고 그 하나가 곧 우주만유의 진리이며, 그 하나를 어떻게 하면 깨달을 수 있는지 또 그와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것이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삼위일체설과 불교의 삼신불 사상 우리 민족종교의 삼일 사상을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그 주장이 터무니가 없어서 “불교의 법이 하나의 원리를 설하는 가르침이라는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는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나 견성이 바로 우주의 근본 원리를 깨닫는 것 아닙니까? 바로 그 우주의 근본원리 그 하나의 원리를 석가모니가 깨달아 설법한 것이 법이지 않습니까?”고 답했다.

이에 다른 토론자들과 일반 참석자들이 흥미롭게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불교는 우주의 근본에 대해 설하지 않습니다. 즉 불교에서는 우주만물이 하나의 원리에서 비롯됐다고 가르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원인 없이 생겼다고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쪽에서 예로든 불교의 삼신불사상은 타종교의 삼위일체설이나 삼일사상과 동일성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내 답변에 대해 그가 던진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건드렸다. “제가 불교 하는 분들도 많이 만나 보았는데 선생님처럼 제 말을 두고 반대하는 분들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혹시 선생님이 하신 불교공부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신 적은 없습니까?”

나는 그의 공격적 발언에 좀 더 상세히 설명해주고 싶었으나 여건이 그렇지 못해 그쯤하고 말았다. 그러나 비단 이런 장소가 아니어도 불교계에서 일하다 보면 그런 견해를 지닌 사람을 적지 않게 만나게 된다. 일반인들도 이런 생각을 지닌 이들이 대다수이고 심지어 불자는 물론 스님들까지도 이런 생각 속에 빠져있다.

그러다보니 나누는 대화나 설법 속에 ‘우주의 근본’이 어떻고 ‘자기의 뿌리’가 어떻고 ‘전체’가 어떻고 ‘하나’가 어떻고 하면서, 불교가 마치 하나의 근원이나 하나의 진리를 찾는 종교인양 착각을 한다. 부처님 가르침의 기본이며 핵심 교설인 연기와 공성을 망각했거나 제대로 배우지 못한데서 나온 전도몽상인 것이다.

부처님은 우주 만물의 시초가 있다고 가르치거나 그 우주만물을 생성시킨 근본 따위가 있다고 가르치지 않았다. 근원적 하나에서 전체가 나온 것이 아니고 전체가 근원적 하나에 의해 돌아가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설혹 그 같은 하나를 알고보고 깨달았다 할지라도 불교에서는 이를 진리와 부합한 경지로 인정하지 않는다.

불교의 초점은 하나를 인정하거나 알고 모르는 것에 있지 않고 번뇌의 극복과 이에 따른 해탈에 있다. 우주건 만물이건 일체는 연(緣), 즉 조건에 의해 일어나고 연에 의해 소멸한다. 이에 모든 것은 실체가 없는 공이며 무자성이며 무주(無住)이다. 혹 우주의 근원인 그 어떤 하나가 존재한다 할지라도 연에 의해 지어진 허구에 불과하다. 불교가 일반 종교와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모름지기 하나를 조심해야 한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513호 / 2019년 11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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