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경주 기림사 소조비로자나삼존불상
40. 경주 기림사 소조비로자나삼존불상
  • 이숙희
  • 승인 2019.11.19 09:43
  • 호수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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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존불 모두 1564년 이전 조성 추정
현존 소조불 중 가장 이른시기 사례

1564·1719년 두차례 중수 기록
좌우 협시불은 약사·아미타불
삼존 모두 높이 3m 넘는 대형
얼굴 표현과 착의법 등도 유사
경주 기림사 소조비로자나삼존불좌상, 조선전기, 높이 335㎝.
경주 기림사 소조비로자나삼존불좌상, 조선전기, 높이 335㎝.

경상북도 경주 기림사는 신라 때 창건한 사찰이라고 하나 현재 남아 있는 유물은 대부분 조선시대에 제작된 것이다. 아마도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전각이 불타버렸고 그 후 여러 번의 중수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 오래된 사찰의 연륜 만큼이나 단청의 색깔이 바래져 있어 유난히 고적하고 예스럽다. 

기림사 대적광전에 안치된 소조비로자나삼존불상은 본존 비로자나불상의 복장에서 발견된 ‘불상중수점안기’와 ‘아미타여래중수개금발원문’에 의해 1564년과 1719년에 걸쳐 1차, 2차 중수가 있었으며 좌우 협시불이 약사불과 아미타불로 밝혀졌다. 이는 비로자나삼존불상의 존명과 함께 삼세불과 삼신불이 합쳐진 독특한 형식의 삼불상임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 소조불상은 늦어도 1564년 이전에는 조성된 것으로, 현존하는 소조불상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예라 할 수 있다. 

기림사 소조비로자나삼존불상은 모두 높이가 3m가 넘는 대형 불상이다(사진). 삼존불은 각각 손의 형태만 약간씩 다를 뿐 크기나 얼굴 표현, 신체비례, 법의의 착의법 등에서 거의 유사하다. 전반적으로 머리와 다리에 비해 상반신이 크고 장대하여 신체비례가 맞지 않는다. 나발이 큼직하게 표현된 머리 위에는 육계가 높게 솟아 있고, 중앙에는 조그만 계주가 놓여 있다. 네모난 얼굴에는 둥근 눈썹과 가늘게 뜬 눈, 뭉툭한 콧등, 인중과 입체적인 입술이 표현되어 있으며, 표정은 없으나 종교적인 엄숙함이 엿보인다. 

넓고 당당한 어깨와 가슴은 수평으로 처리되어 있어 건장하면서도 경직된 듯한 모습이다. 양쪽 어깨를 덮은 통견의 법의에는 무겁게 내려온 듯한 옷주름이 표현되었는데 특히 왼쪽 무릎 위의 나뭇잎 모양 옷자락은 고려시대에 나타나기 시작하여 조선 전기의 불상에도 보인다. 반면에 가슴 위에 수평으로 입은 내의와 주름 표현, 두 다리 사이로 무겁게 늘어진 옷주름은 조선 후기의 불상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비로자나불상의 복장 유물은 1986, 1993년, 1997년 3차례에 걸쳐 도난당하였으나 모두 되찾아왔다. 첫 번째 도난 사건은 1986년 9월6일에 발생한 것으로 문화재 전문절도범들이 주존 비로자나불상의 등 뒷면을 뚫고 복장유물을 훔쳐 달아나다가 붙잡혀 미수에 그친 것이다. 이때 복장에서 나온 54권 17책의 경전은 고려와 조선 중종연간(1506∼1544)에 간행된 목판본이다. 

그중에는 1348년에 제작된 ‘상지은니대반야경’과 ‘백지금니불경’ 등 고려시대의 사경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포함되어 있다. 세 차례에 걸친 도난사건으로 인하여 기림사 비로자나불상의 복장에서 나온 고려, 조선시대의 사경과 판본들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 불상과 복장전적들은 모두 보물 제958호와 제959호로 지정되어 있다. 

기림사 소조비로자나삼존불상은 임진왜란(1592)과 정유재란(1598)으로 불타버린 사찰이 중건되기 시작하면서 16세 이후의 조선시대에 일시적으로 유행하게 되는 대형 소조불상의 한 예로서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shlee1423@naver.com

 

[1513호 / 2019년 11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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