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보듯, 나를 보게 하는 스님의 수행일기
거울을 보듯, 나를 보게 하는 스님의 수행일기
  • 심정섭 전문위원
  • 승인 2019.11.25 13:14
  • 호수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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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굴가’ / 원상 스님 지음 / 조계종출판사
‘토굴가’

“청산 숲 깊은 골에 일간 토굴 지어 놓고/ 송문을 반개하고 석경에 배회하니/ 녹양 춘삼월하에 춘풍이 건 듯 불어/ 뜰 앞에 백종화는 처처에 피었는데/ 풍경도 좋거니와 물색이 더욱 좋다/ 십 년을 기한 정코 일대사를 궁구하니/ 일찍이 모르던 일 금일에야 알았구나….”

나옹 스님의 ‘토굴가’를 바이브레이션까지 넣어 할머니 앞에서 불렀다. 그러면 할머니는 그제야 얼굴에 웃음기가 돌며 마음을 풀었다.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 이사장 원상 스님은 20대 후반에 85세 된 할머니와 토굴 같은 작은 절에 살았다. 그 시절, 상쾌한 아침에 흥에 겨워 학생 시절에 불렀던 가곡을 부르고 나면 할머니는 삐쳐서 말을 안했다. 스님이 좋은 목소리로 염불을 하지 않고 세속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렇게 할머니 화를 풀어드리려 가끔씩 토굴가를 부르며 꼬박 2년여를 지냈다. 하지만 이후 할머니와 인연이 이어지지 못했고, 결국 할머니와의 인연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면서 “할머니 제사는 내가 모셔준다고 약속했었는데 못 지켜 미안합니다”라고 써야 했다.

원상 스님이 연꽃마을 설립 30주년을 맞으면서 출가 34년간의 기록들을 모아 ‘토굴가-미소를 부르는 작은 깨달음’으로 엮어 2020년 연꽃마을 설립 30주년을 기념하고, 열아홉에 출가해 34년째 수행 정진 중인 지난 세월을 되새겼다.

“사실 나는 나를 모릅니다. 잠시간에 쓴 글을 통해서 나를 봅니다. 이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이 사람이 이런 성향의 사람이구나 하면서 나를 알아갑니다. 그래서 나의 글쓰기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스님은 자신이 쓴 글을 통해서 자기의 생각‧성향‧모양새를 스스로 돌아보고, 거울을 보면서 옷매무새를 다듬듯이 자기를 돌아보고 담금질하는 시간을 갖는다. 글은 어떤 형식과 주제에 매이지 않고 그때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기록한 것이기에 일상에서 겪은 일화들과 소소한 감상에서부터, 은사 스님인 덕산당 각현 스님의 뒤를 이어 연꽃마을의 책임자로서 갖게 되는 바람까지 모두를 아우르고 있다.

나이 열아홉에 집을 떠나 삭발염의하고, 속리산 법주사 행자실 막내로 인생을 새로 시작했다. 마음이 붕 떠서 보따리를 싸고 싶었을 때 자신을 위로해준 도반 덕분에 다시금 마음을 다잡은 후 30년 넘게 수좌로, 혹은 작은 절 주지로 생활하면서 있었던 순간순간들을 책 속에 고스란히 담았다.

원상 스님이 열아홉 행자에서 출가 34년, 연꽃마을 대표이사가 되기까지 순간순간 가졌던 생각들을 기록했던 수행일기를 모아 한 권 책으로 엮었다.
원상 스님이 열아홉 행자에서 출가 34년, 연꽃마을 대표이사가 되기까지 순간순간 가졌던 생각들을 기록했던 수행일기를 모아 한 권 책으로 엮었다.

“믿었던 나의 견해나 신념이 무너지고, 그리고 다시 만난 그 무엇들은 집착과 속박에서 벗어나 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바람이 꽃을 건들면 향기는 무색으로 피어납니다. 앞에만 보느라고 뒷자락에 핀 쑥부쟁이를 이제야 보았습니다. 바람이 꽃을 피우듯이 당신은 나의 연원입니다.”
“계곡의 물소리는 밤이 깊을수록 커져만 가고, 고요는 사물을 더욱 선명하게 합니다. 밖에서 찾지 않는 것이 공부의 요점인 것을 모른 채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제법이나 시간 보냈습니다. 가만히 가만히 조심스럽게 자신을 들여다봅니다.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이를 가만히 지켜봅니다.”

스님은 이렇게 수행자 시점으로 풍경과 자신을 돌아보며 정리된 마음을 글로 옮기는가 하면, “모든 집착에서 벗어난 것이 해탈입니다. 지금 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괴로우십니까? 또 무엇 때문에 행복하십니까? 고(苦)와 락(樂)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한 몸의 두 얼굴입니다.(…) 집착에서 벗어날수록 해탈과는 닮아가겠지요”라며 수좌의 날카로운 단면을 여지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누구를 보여주려고 쓴 글이 아니라지만, 그 안에는 누구나 보면서 세상살이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가르침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누구에 의지하지 않고 나는 나대로 본다. 사홍서원이라도 4가지 서원에 대한 자기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주체적 삶을 강조하는 스님의 글은 거울을 보듯, 나를 보게 하는 수행일기에 다름 아니다. 1만6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514호 / 2019년 11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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