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2. ‘한 물건’과 근본자리 

기자명 이제열

“근본 찾는 건 불교 아니라니까요”

같이 공부하던 스님에게 전화
법보신문 연재 보고 이의제기
유명 여대 불교 교수도 비슷
‘일심’조차 연기된 공성일 뿐

며칠 전 뜻밖의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과거에 같은 스승을 모시고 공부하다 출가한 스님이었다. 스님은 법보신문 연재를 보고 전화했다. 내가 글에서 ‘모든 종교는 결국 하나의 근본을 찾는 것이라는 민족종교인의 주장을 불교에선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견해와, ‘불교는 자신과 세계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믿는 종교가 아니다’라는 지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스님은 이왕 통화된 김에 간단히라도 할 말을 하고 끊겠다고 했다. 내가 어떤 거냐고 묻자 스님은 말을 꺼냈다.

“법사님, 우주 만물의 근본이 곧 나의 근본이고, 나의 근본이 바로 법사님의 근본 아닙니까? 또한 그 근본이 일체 제불의 근본인데 그 근본이 무엇이냐 하면 이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우주만유마다 제각기 다른 것 같지만 하나입니다. 바로 이 하나의 마음을 선가에서는 ‘한 물건’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지금 이렇게 말하고 듣고 하는 바로 이놈! 이놈이 일체의 근본자리인데 왜 법사님은 불교가 근본을 찾는 종교가 아니라고 합니까?”

스님은 말을 이어갔다. “우주가 갈라지기 이전에 이 한 물건이 있었고, 부모로 몸을 받기 이전에도 이 한 물건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 근본, 이 마음, 이 한 물건이 있기 때문에 법사님도 몸을 움직이고 생각하고 말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말이 틀렸습니까?”

나는 스님의 말씀이 끝나자 일단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충분히 알겠다는 얘기와 구체적인 내 의견은 만나서 밝히겠다는 것, 또 그 전에 지면을 통해 간략히 제 입장을 설명 드리겠다고 답했다.

나로서는 스님과 비슷한 견해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많이 들었던 터라 새삼 이상할 일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것이 마치 불교의 가르침인 것처럼 오인하고 있다. 마음은 전 우주를 덮고 만물에 내재하며 중생의 일거수일투족을 가능하게 하는 주체이며, 주재자이고, 근본이라는 큰 착각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마음을 다르게 표현하는 선가의 소위 ‘한 물건’이라는 말을 무조건 받아들인 나머지 마치 마음이 모든 생명 활동의 주체인양 착각한다. 이 한 물건이 생각도 일으키고, 감정도 일으키며,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며, 눈을 깜박이기도 한다고 여긴다. 이것을 찾는 것이 불법의 요체이며 수행 목적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불교학자 가운데도 이런 분이 있다. 유명 여대에서 불교학을 가르치는 모 교수가 그렇다. 그는 논문에서 ‘각자의 표층의식을 계발하다보면 아무런 매개 없이도 서로 통하는 우주적 마음이 드러난다’며 ‘이 경지가 8지 보살의 경지다’라고 말한다. 참으로 터무니없는 논리다. 이는 불법의 만법유식(萬法唯識), 삼계유심(三界唯心), 심위법본(心爲法本)의 의미를 오인하고 마음을 실체화시키는 데에서 오는 망견이다.

마음이 비록 만법의 주체이고 근원이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마음 또한 인연에 의해 지어진 환성·공성으로 실체가 없는 허구라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우리 마음은 결코 하나가 아니며, 하나가 될 수도 없고, 일고 꺼지는 마음 외에 안이건 밖이건 별개의 마음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혹 불교의 교리 가운데에 일심(一心)이 설해졌다 할지라도 그 마음 또한 연기된 공성임을 안다면 굳이 이름을 붙여 근원일 뿐 본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일심의 근원은 공성을 근원으로 삼는 것이지 유성(有性)을 근원으로 하지 않는다. 하나의 마음이 중생의 모든 행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의 마음이 중생계에 의지해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 물건은 가히 얻을 수 없으며 취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실체가 없는 허구성이기 때문이다. 물거품, 구름, 안개, 번개, 불을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근원은 바로 그런 것이다. 헛수고 하지 말아야한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514호 / 2019년 11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