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집착과 범계
43. 집착과 범계
  • 법장 스님
  • 승인 2019.11.25 17:16
  • 호수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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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았다고 거짓말하는 죄가 가장 큰 범계”

자기만 지계청정하다면서 
대중 멸시하면 범계 행위
계정혜 삼학 닦는다 하고
자신만이 옳다 해도 범계  

“배우는 자가 첫째 할 일은 나를 떠나는 것이다. 나를 떠난다는 것은 내 몸에 매이지 않는 것이다.” 

중국 임제종의 대혜종고 선사가 지은 ‘정법안장(正法眼藏)’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수행자가 탐진치(貪瞋痴) 삼독을 멀리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닦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그것을 수행한다고 하는 자기 자신에게도 매여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실천할 때 우선 ‘나’라는 주체를 인식한 후에 그것을 실행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 하여 모든 것이 성립된 인연에 의해 임시로 존재하는 것이기에 어떠한 것에도 집착하고 그것을 ‘나’ 또는 ‘나의 것’이라는 생각조차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정법안장에서 말하는 가르침은 모든 불교 수행에 적용되는 것이다. 원효 스님은 자신의 계율관을 정립해놓은 ‘보살계본지범요기’에서 수행자가 자신의 계정혜 삼학을 닦는 것에 집착하여 오히려 범계(犯戒)가 되는 예를 설명한다. 

우선 계(戒)를 잘 지키는 것이 오히려 계를 어기는 것이 되는 것에 대해서 “(자신만이 바른 계를 지녔다고 생각해서) 자기는 높으며 남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을 일으켜 계를 천천히 익히고 지켜나가는 대중들을 멸시하고 헐뜯는다. 그렇기에 이 사람은 작은 선(善)은 잘 지키지만 보다 중요한 것을 허문 것이니 복을 굴려서 화를 만들었기에 이보다 심각한 것이 없다”고 하여 자신의 계를 지키는 모습으로 다른 이들을 멸시하고 자만심에 빠져 화합승가를 헐뜯었기에 이러한 수행은 오히려 범계가 된다고 설명한다. 즉 청정한 계행을 잘 닦으며 수행을 하면 될 것을 그것에 매이고 집착하여 그것을 통해 다른 이들과 비교하고 그들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수행이 오히려 범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원효 스님은 이러한 계행을 지키는 모습을 다른 신도들에게 보여주어 다른 대중들의 보시물을 자신에게 가져오게 하거나 자신만의 이익과 명예를 위해 수행한다면 승가를 어지럽히는 삿된 계행이라고 말한다.

다음으로 선정(定)수행자가 아직 부처님의 깊은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면서 마치 깨달음을 얻은 성자와 같이 행동하고 신도들에게 자신의 삿된 가르침을 부처님의 가르침인 것처럼 꾸며서 말하는 것은 불법을 파괴하는 중죄라고 말한다. 또한 다른 수행자들을 억누르고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선정 수행자는 외도의 삿된 수행에 빠진 자라고 한다.

그리고 지혜(慧)를 닦는 수행자가 자신이 조금 총명하다고 해서 여러 경론을 배워 다른 수행자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교의 가르침이 모든 말과 생각을 떠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기에 오히려 불법을 어지럽히는 범계가 된다고 말한다. 또한 특정 한 경전이나 사상에 빠져서 그것만이 진정한 불교라고 생각하는 이는 다른 수행이나 공부하는 이들을 무시하고 자신만이 불교를 이해했다고 생각하기에 공부를 하면 할수록 끊임없이 범계를 저지르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좁은 공부를 하는 수행자는 낮은 식견과 그 지식을 가장 높다고 여기는 어리석음을 갖고 있고, 자신의 좁은 지식과 이해로 광대한 불교의 가르침을 말하기에 그것이 불교를 비방하는 어리석음이 된다고 하여 원효 스님은 어느 한 경전에 치우쳐서 그것만이 불교라고 하는 잘못된 공부에 대해 특히 주의를 주며 경계시키고 있다. 

이처럼 계정혜 삼학을 닦는 수행조차도 자신이 하는 수행만이 옳고 다른 이들보다 자신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수행을 닦는 것이 오히려 자신을 보다 미천하게 만들고 불법을 스스로 어지럽히며 범계를 저지르는 것이 된다. 이처럼 불교에서는 자신의 수행을 철저하게 닦고 그것을 어떠한 미련과 집착도 없이 모두 다른 이들과 공유하여 화합하며 살아가는 것을 추구한다. 그렇기에 부처님께서도 45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어떠한 명예와 이익도 바라지 않으시며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삶의 참다운 이치와 가르침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길 위에 계셨던 것이다.

법장 스님 해인사승가대학 교수사 buddhastory@naver.com

 

[1514호 / 2019년 11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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