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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연리지 부부의 못다 이룬 사랑

기자명 김정빈

천년의 세월 지나며 아름다운 사랑의 상징이 되다

당대 17세 유란지, 초중경과 결혼
시어머니 구박에 결국 친정으로 
결별해 살다 두 사람 모두 자살
합장 후 소나무·측백 심으니
뿌리와 가지 이어져 사랑목 되다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당(唐)나라 사람 유란지(劉蘭芝)는 열일곱 살에 초중경(焦仲卿)의 아내가 되었다. 결혼을 한 뒤 새벽닭이 울면 곧 베틀에 올라 쉬지 않고 하루 종일 베를 짰다. 문제는 시어머니였다. 그녀는 이런저런 이유로 날마다 며느리를 구박했다. 견디다 못한 유란지가 남편에게 자신을 친정으로 보내 달라고 부탁했고, 이에 초중경이 어머니에게 나아가 항의하자 어머니는 화를 내면서 “며느리가 예절도 없고 행동도 제멋대로여서 내가 그동안 화를 참아왔다. 동쪽 마을에 모습이 아름다운 진나부라는 아가씨를 데려올테니 네 마누라를 내쫓아라”고 말했다.

진나부는 미모로 유명한 사람이었지만 초중경은 그녀에게는 관심이 없고 오직 아내만을 사랑할 뿐이었다. 초중경은 어머니에게 “아내를 내쫓으면 저는 두 번 다시 혼인을 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노발대발하며 아들을 꾸짖었다.

초중경은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아내에게 잠시 친정에 가서 어머니의 화가 풀리기를 기다리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단 서로 떨어진다면 그 뒷일이 어떻게 되어갈지는 알 수 없는 일. 하지만 사세가 사세인지라 유란지는 남편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유란지는 “당신은 반석, 저는 갈대예요. 반석은 한자리에 진중하게 있고, 갈대는 실처럼 질기지요”라는 노래를 남기고 친정으로 떠났다.

유란지 또한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였던 모양이다. 그녀가 친정으로 돌아온 지 열흘 만에 그 고을 태수가 중매쟁이를 보낸 걸 보면 말이다. 중매쟁이 말로는, 그 태수가 유란지를 며느리로 삼고 싶다고 한다. 그렇잖아도 죄 없이 소박을 당한 딸을 애처롭게 여기던 유란지의 어머니로서는 너무나도 좋은 조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딸을 설득하려 하자 유란지가 말했다.

“제가 돌아오기 전날 밤, 저는 남편에게 절대로 헤어지지 않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러자 이번에는 그녀의 오라버니가 그녀를 갖은 말로 설득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이 흘렀지만 남편 초중경으로부터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결국 유란지는 오빠에게 태수의 아들과 혼인을 하겠다고 말해버렸다.

그 소식이 초중경에게 들어갔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초중경은 한달음에 아내에게 달려와 말했다.

“그대가 콧대 높은 집안으로 시집가게 된 걸 축하하오. 당신은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가면 날로 귀하게 되겠지요. 다만 이거 하나는 알고 계시오. 나는 죽어서 황천으로 갈 것이오.”
이 정도로도 부족했던지 초중경은 또 말했다.
“반석은 네모나고 두꺼워 천 년을 견디지만 갈대풀은 질긴 것처럼 보여도 하루밖에는 견디지 못하는 법이죠.”

이 비아냥이 유란지의 가슴에 대못으로 들어와 박혔다. 그녀가 항의했다.

“그건 무슨 말씀이신가요?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된 건 제 뜻이 아니라 어머니께서 핍박을 하신 것 때문이잖습니까?”

초중경은 아내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고 돌아와 죽을 결심을 한다. 그는 어머니에게 난데없이 큰 절을 올렸고, 이상한 낌새를 챈 그의 어머니는 “진씨 집 나부를 데려올 터이니 네 처 때문에 죽는 따위의 어리석은 짓은 말라”고 말했다.

초중경은 마당에서 서성이고 있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유란지가 죽었다는 것이다. 시는 그녀의 마지막을 이렇게 묘사한다.

“유란지는 태수 아들과의 혼인을 위해 만들어 놓은 푸른 천막으로 들어갔다. 어둑한 황혼이 깃들고 인적이 끊겨 사방은 고요했다. ‘내 목숨이 끊기면 혼은 떠나고 주검만이 남겠지.’ 치맛자락을 부여잡고 비단신을 벗어놓은 채 그녀는 맑은 연못에 몸을 던졌다.”

초중경은 정원의 나무 한 그루 동남쪽 가지에 목을 매고 죽어 아내의 뒤를 따라 황천으로 갔다. 두 사람이 죽은 다음 양가 사람들은 그들을 합장한 다음 무덤 양쪽에 소나무와 측백나무를 심었다. 두 나무는 뿌리는 뿌리대로 가지는 가지대로 서로 이어졌는데, 이것이 연리지(連理枝)이다. 원앙새 두 마리가 나타나 밤마다 머리를 서로 붙여 꼬며 울었다. 사람들은 죽은 두 사람의 영혼이 원앙새가 되어 나타났다고 믿었다.

‘화엄경’은 법계가 중중무진(重重無盡)하게 서로 얽혀져 있음을 설한다. 겹치고, 겹치고, 또 겹치는 무수한 인연의 그물. 그 그물코가 몇 번이나 겹쳐야만 이생에 부부가 되는 것일까. “옷깃 한 번만 스쳐도 오백 생의 인연”이라는 말에 기준하여 생각해보면 사람의 인연 중에 가장 중한 인연인 부부의 연을 맺으려면 오백억 번 이상의 전생 인연이 있어야만 할 것 같다.

이번 생의 부부 인연이 반드시 전생에 좋은 인연을 쌓았기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부부는 원수”라는 말에 부합하는 경우라면 이번 생에 부부가 되는 것은 전생에 지은 잘못을 갚기 위해서일 수도 있는 것이다. 초중경과 유란지가 맺은 부부의 연은 어떤 것이었을까. 아마도 좋은 것 절반, 나쁜 것 절반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중중무진의 인연법은 그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 사랑 대 미움이라는 분석은 인연을 둘로 나누고, 사랑과 미움이 절반씩 섞인다는 분석은 인연을 넷으로 나누지만 다시 그 넷은 여덟으로, 여덟은 열여섯으로 하는 식으로 인연사의 분석식은 더 복잡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듯 복잡에 복잡을 더해가는 과정은 먼저, 두 남녀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만들어낸다. 초중경에게는 어머니가 있고, 유란지에게는 친정 식구들이 있다. 그에 더해 초중경의 어머니에게는 진나부가 있고, 유란지의 친정 식구들에게는 태수와 그의 아들이 있다. 그리고 다시, 시에는 나오지 않지만 진나부와 태수 및 그의 아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그뿐 아니다. 거기에 사람들 말고도 지리적 특성, 날씨 등 여러 가지 물리적 환경 요인이 더해진다.

두 번째로, 두 사람의 내부에서도 너무나 복잡한 인연사가 전개된다. 두 사람은 각각 몸으로서나 마음으로서나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이고, 그들을 구성하는 색, 수, 상, 행, 식들 또한 각기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요소들의 집합인 것이다. 인연법을 믿는 한 사람의 불제자로서 우리는 인연의 복잡성 앞에 조용히 고개를 숙이게 된다. 세상은 두 개다. 먼저 세상이라는 세상(세상-세상)이 있고, 다음으로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라는 ‘나-세상’이 있다. 우리는 첫 번째 세상에서는 세상의 한 부속물이지만 두 번째 세상에는 세상의 주인이다. 첫 번째 세상으로서는 겸허하게 운명(인연)을 받아들일 것, 그러나 두 번째 세상에서는 주체적인 존재로서 능동성을 최대한 발휘할 것. 이것이 우리가 최종적으로 내리게 되는 결론일 것이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514호 / 2019년 11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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