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자유의지와 무지
44. 자유의지와 무지
  • 강병균 교수
  • 승인 2019.11.25 17:32
  • 호수 1514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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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선택은 자유의지의 축복 아닌 무지의 농단

자유의지는 종교·철학 핵심 주제
다른 것을 선택할 능력이 아닌
결과적으론 ‘불완전한 결정 능력’
지식 늘면 자유의지 폭도 줄어

자유의지는 종교와 철학에서 가장 심각한 주제 중의 하나이다. 자유의지의 정의에는 통일된 정의가 없는데, 다 같이 동의하는 바는 결정론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세상은 미리 정해진 게 아니므로,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있다는 것이다. 물리세계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자연법칙에 의해 미리 정해져 있으므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는, 정신세계는 그렇지 않아서 우리의 의지로 정신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반대하기를, 정신도 물질인 뇌의 산물이므로 정신의 세계도 정해져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설사 정신이 뇌의 산물이라 할지라도, 뇌 신경세포의 활동은 불확정성(uncertainty)을 특징으로 하는 양자역학이 개입하므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직까지 아무 증거가 없다. 아무튼 모두 인정하는 바는, 자유의지란 선택하는 능력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자유의지란 다른 걸 선택할 능력이 아니다. ‘불완전한 결정 능력’이다.

흔히들 ‘자유의지란 동일한 상황에서 다른 행위를 할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주어진 정보를 이용해 최선의 선택을 내리고자 한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결정이 아니라 최선의 결정을 내리고 싶어 한다. 배우자·사업·직업·학교·주택·임신·거주지 선택 등이 다 그렇다. 최선의 결정은 ‘선택의 자유’와 거리가 있다. 설사 자유의지가 최선의 선택을 하는 능력이라 해도, 통상 최선의 선택은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설사 최선이 둘이라 해도 최선의 선택이란 점은 변함이 없다. 대개의 경우 최선의 선택은 하나이다. 둘이라 해도 그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선택이 합리적이라면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최선은 하나뿐이므로, 대부분의 경우에, 자유의지는 설사 존재한다 해도, 실제적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여러 길 중에서 항상 최선의 길을 택한다면, 그건 자유의지라고 볼 수 없다.)

자유의지는 ‘랜덤 넘버 제너레이터(난수[亂數]제조기)’처럼 무작위 행동을 의미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런 기계를 하나 구입해 의사결정을 하면 될 것이다. 사람들은 결정을 할 때 근거를 가지고 결정한다. 따라서 같거나 유사한 상황에서는 같거나 유사한 결정을 내릴 확률이 크다. 같은 정보와 같은 상황과 같은 판단력이라면, 백이면 백, 같은 판단을 내릴 것이다. 이 점에서 자유의지는 다른 것을 선택할 능력이 아니다. 근거에 기반해 결정을 하고 최선의 결정을 하는 것이 목표라면, 자유의지는 아무 근거가 필요 없는 무작위 운동이 아니다.

상황이 끝없이 변하면서, 심지어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 중에도 변하면서, 그게 결정에 영향을 미쳐 결정 내용이 바뀌는 모습이, 마치 결정 주체가 동일한 상황에서 다른 결정을 내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혹은 결정능력이 완벽하지 못해서 최선의 판단을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이 또는 변덕스러운 모습이, 자유로운 결정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의사결정에는 때론 ‘삶과 죽음’이 직결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결정 능력은, 최근에 생긴 것이 아니라 35억 년 진화과정에서 생긴 것이고,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의사결정에 생사가 걸렸다면, 그런 중요한 결정은 결코 무작위적인 결정이 아니다.

유사한 예를 들자면, 전문가는 무작위로 결정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문가가 될수록 공정(工程)과 과정은 고정된다. 최선의 길을 찾고 그걸로 고정된다. 그게 제자들에게 전해진다. (물론 더 나은 방법이 발견되면 부분적 또는 전체적으로 변경이 가능하다. 이 경우도 무작위적인 결정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 능력 있는 사람이 취할 길은 능력이 없는 사람이 취할 길보다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의 폭이 좁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에게는 단 하나의 길이 있고(그래서 하나님이라 부르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이래야 할까 저래야 할까 고민하는 일이 없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니다), 지극히 무지한 자에게는 모든 게 길이다. 남자는 장 볼 때 아무거나 사지만, 여자는 선택적으로 산다. 남자는 식품에 대한 지식이 적지만, 여자는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자가 누리는 듯한 다양한 선택은 자유의지의 축복이 아니라 무지의 농단이다. (지식이 늘 때 자유의지의 폭은 줄어든다.) 대마수상전을 할 때, 바둑 고수에게는 갈 길이 필연적인 수순 하나뿐이지만, 하수에게는 수많은 길이 있다. 능력 있는 사람은 어느 게 더 좋은 길인지 판단할 수 있지만, 능력 없는 사람은 어느 게 더 좋은 길인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식이 늘 때 자유의지의 폭은 준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514호 / 2019년 11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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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람되지만 2019-11-27 10:14:00
예수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신성. 모독했다는 죄로 십자가에 못박힘


부처가 화려한. 왕자의 길을 갈수. 있었지만 속세의
길. 벗고 깨달음의 길. 간것도. 바로 자유의지?
이지요!? 성스러운 자유의지. 입니다

바라밀행자 2019-11-25 21:53:23
참신하고 쇼킹하다. 뭐라고 반박하고 싶은 데 뭐라 반박하기가 어렵다

흑두건 2019-11-25 20:37:02
정론 법보에 야는 아닌데...
해종 행위자 아닌개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