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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찰나(刹那)와 극미(極微)

기자명 현진 스님

극단의 짧은 순간인 1찰라는 0.013초

마음이 생멸하는 시간은 1찰라
극단의 긴 시간 지칭하는 ‘겁’은
시간단위보다는 긴 시간 비유
물질크기의 최소단위는 극미

우리는 구구단이지만 인도는 십구단이니, 인도 학생들은 숫자의 곱셈을 아홉 단계가 아닌 열아홉 단계를 외워야 한다. 그러니 그 고행(?)을 견뎌내는 학생들은 정예소수의 인도 IT인재에 들어가게 되지만, 대다수 학생들은 수포자의 흐름에 들어가고 만다. 

인도는 고대부터 숫자를 상상 이상의 큰 것까지 셈하여 이름을 붙여놓았는데, 한문역의 불교경전에 수록된 것만 해도 1에서 10의 59승까지 60단계에 이른다. 10의 59승은 범어로 안아비랍여(anabhilāpya, 정확히 말할 수 없는)이며 한문으론 불가설(不可說)이라 하는데, 물론 우리말이나 영어로는 그 이름이 없다. 잘 쓰지도 않는 가장 큰 숫자로 조(兆)의 만 배인 경(京)을 드는데 겨우 10의 16승일뿐이다. 그렇다면 시간의 길고 짧음과 물질의 크고 작음은 어디까지 정리해놓고 있을까?

극단의 짧은 순간인 찰나(kṣaṇa)는 이미 우리말에도 정착한지 오래인데, 현대적 시간단위로 환산하면 1찰나는 75분의 1초, 즉 0.013초라고 한다. 우리가 일으킨 마음은 1찰나만 머물다 사라진다고 하며, 끊임없이 생겼다 사라짐을 반복하는 물질은 17찰나가 생멸의 한 주기라고 한다. 그러니 물질이 한 차례 생멸하는 동안 그것을 지켜보는 마음은 17번 생멸하는 셈이다. 그리고 어떤 물질의 순간적인 변화가 감각기관에 포착되어 ‘감이 온다!’라고 우리가 느끼는 데는 120찰나, 즉 1과 5분의 3초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그리고 극단의 긴 시간을 겁(劫, kalpa)이라 하는데, 이는 어느 일정한 시간단위라기보다는 굉장히 긴 기간의 비유일 뿐이다. 흔히 예로 드는 ‘겨자겁’은 ‘사방 40리 크기의 성안에 겨자를 가득 채우고 백년마다 한 알씩 집어내어 그 겨자가 다 없어져도 1겁이 다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반석겁’은 ‘사방 40리 되는 바위를 백년마다 한 번씩 엷은 옷깃으로 스쳐서 마침내 그 바위가 다 닳아 없어져도 1겁이 다하지 않는다’라고 경전에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겁의 표현 가운데 엄청 큰 것이 진묵겁(塵墨劫)인데, 그 설명은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땅덩이를 갈아 먹으로 만들고, 동쪽으로 1천 국토를 지날 때마다 갈은 먹을 한 점씩 떨어뜨리되 그 크기를 티끌만큼 하여 먹이 다할 때까지 한다. 그렇게 지나온 모든 세계를 남김없이 갈아서 티끌로 만들고 그 티끌 하나를 1겁이라고 했을 때 모든 티끌만큼의 겁을 진묵겁[티끌 같은 먹이 다할 만큼의 겁]이라 한다’라고 되어있다. 진묵겁보다 더 긴 것은 셀 수 없을 만큼의 겁이란 의미인 아승기겁(阿僧祇劫), 그런 아승기겁을 세 차례나 수행해야 성불을 할 수 있다 하였으니, 이러다 질려서 수행을 포기하지나 않을지.

그래도 물질의 크기는 제법 다소곳하게 정리되어 있다. 최소의 크기에서 손가락 하나의 크기인 절(節)까지만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최소의 크기인 극미(極微)는 물질을 더 이상 분할이 안 될 때까지 쪼개었을 때의 최소단위이다. 극미가 7개 모이면 미진(微塵), 미진이 일곱 개 모인 크기가 금진(金塵)인데 사람의 몸속에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 만큼 작은 크기인 금가루에 해당하며, 금진이 7개 모인 크기가 수진(水塵), 토끼털 끝에 매달릴 수 있는 만큼의 작은 먼지인 토모진(兎毛塵), 양털 끝이기에 양모진(羊毛塵), 소털 끝이기에 우모진(牛毛塵),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햇볕에 보이는 먼지인 극유진(隙遊塵), 이의 알인 서캐 하나 크기인 기(蟣), 이 한 마리의 크기인 슬(蝨), 서캐 7개에 해당하는 작은 보리알 크기의 알곡인 광맥(穬麥), 그리고 손가락 한 마디인 지절(指節), 다음이 손가락 하나인 절(節)이 있다. 그런데 크기는 단계마다 그리 정밀한 척도를 지닌 것 같지는 않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514호 / 2019년 11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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