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출퇴근길에 만난 부처님 ② - 동은 스님
22. 출퇴근길에 만난 부처님 ② - 동은 스님
  • 동은 스님
  • 승인 2019.11.26 09:40
  • 호수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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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곁에 있는 그 사람이 바로 부처님이다”

천은사 출근길은 100m도 안돼
그래도 출근길엔 많은일 일어나
잘익어 떨어진 모과도 볼수 있어

시누대로 만든 사립문을 나서면 
바로 범종각, 범종佛 뵐 수 있어 
종각의 계단은 운동하는 계단佛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출가 수행자가 출퇴근이라는 말을 써보니 좀 어색하다. 서울 총무원에서 소임 보는 ‘수도승(首都僧)’ 스님들이야 출퇴근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강원도 산골 주지가 출퇴근 한다는 것은 어째 이상하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가 종무소이다 보니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재택근무 하는 셈이다. 오래전 월정사에서 단기출가학교장 소임을 볼 때는 몇 년 동안 영월에 있는 작은 암자 금몽암에서 출퇴근을 한 적이 있다. 서강에서 평창강으로 이어지는 그 길은 거의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였다. 그 길 위로 꽃비 흩날리는 봄이 왔고, 황금빛 자작나무 잎들이 반짝이는 가을이 몇 번 지나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아름다운 출퇴근길은 내 인생에 다시는 없을 것이다.

지금 이곳의 출근길은 불과 100m도 안 된다. 그래도 출근은 출근이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는 그 길 위에서도 사바세계의 온갖 일들이 존재한다. 출근(?) 시간이 되면 방문을 나서 앞산 검은 봉우리를 바라보며 인사를 건넨다. 서산대사가 이곳에 머무실 때 이 검은 산을 보고 ‘흑악사’라고 이름을 지으셨던 그 봉우리다. 그 오랜 세월 도량을 굽어보며 신장역할을 하셨을 게다. 마당을 지나 정원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자목련 나무가 반긴다. 목련불(佛)이다. 법당에서 몇 백 년 동안 앉아 있는 우리 부처님이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봄이 되면 목련꽃으로 화현해서 중생들에게 기쁨을 주고, 가을에는 단풍잎으로 변신해서 중생을 제도하고 있는 것이다. 천수천안관세음보살님이나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이 왜 생겨났겠는가? 중생들이 살아가는 모든 곳에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대상이 되어 아픈 상처를 보듬어 주고 삶의 희망이 되어주기 위함이다. 때론 자목련으로, 때론 단풍잎으로, 때론 찬란한 일출로, 때론 아름다운 노을로···. 

목련불을 지나면 모과나무가 기다리고 있다. 누가 못생긴 사람을 보고 모과같이 생겼다고 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가을에 잘 익어 땅에 떨어진 노란 모과의 향기를 맡아보라. 천상의 향기가 난다. 가을이면 이 모과불(佛) 몇 분을 차안에 모셔 겨울이 올 때까지 향기로운 법문을 청해 듣는다. 이어 시누대로 만든 사립문을 나서면 바로 범종각이다. 부처님이야 팔만사천 법문으로 중생을 제도 하시지만, 그래도 큰 소리로 시원하게 울림을 주는 것은 역시 범종불(佛)이 제일이다. 범종 한 방이면 온 산천이 이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조용해진다. 종각을 지나면 바로 계단이 나온다. 몇 개 되지 않는 계단이지만 평소 운동이라곤 숨쉬기운동 밖에 하지 않는 나에게 운동을 시켜주기 위해서 대기하고 계신 계단불(佛)이시다. 둘러가는 길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근기가 약한 중생에겐 때론 야단을 쳐서라도 바른길로 이끄시는 것이다. 계단을 올라가면 불두화 나무가 있는 화단이 있다. 수국과 비슷한데 꽃모양이 부처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꽃도 알맞게 부처님오신날 쯤 피어 봉축분위기를 돋군다. 봄에는 이 나무에 부처님이 주렁주렁 나투신다.  

화단을 지나 누각을 올라서면 법당이 나온다. 직장이라면 사장님과 상사들께 출근 인사를 드려야 하지만, 부처님께 인사드리고 종무소 문을 연다. 하루에 몇 통 걸려오는 전화와 가끔 등산로를 묻는 길손들 외엔 거의 업무 볼 일이 없다. 창밖 바람에 흔들리는 수수꽃다리 잎을 보다가, 문 앞에 와서 뭐 먹을 것 없냐며 애처로운 눈빛 몇 번 깜박이는 다람쥐와 눈 맞추다가, 꾸벅꾸벅 졸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무실에서 부처님 일을 하고 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도시인들의 삶은 출퇴근과의 전쟁이다. 만행 다니다 어쩌다 그 시간에 지하철을 타면 거의 아수라장이다. 빳빳이 풀 먹인 무명 두루마기에 걸망을 메고 서 있으면 이 사람이 툭 치고, 저 사람이 건드려서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바쁘고 힘들게들 살아가고 있었다. 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 남기위한 얼굴들은 지치고 힘들어 짜증스럽거나 일그러져 있었다. 그들에게 지금 당신 곁의 사람이 부처님이라고 한다면 피식 웃을 것이다. 내 영혼 속에 잠자고 있는 부처의 씨앗이 싹트지 않으면 설사 내 앞에 부처님이 나타나신다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신라 자장율사가 나이가 들어 정선에 정암사를 짓고 문수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기도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죽은 강아지를 망태기에 메고 거지차림으로 온 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생각하고 만나주지 않았다. 그러자 거지는 문수보살로 화하여 “아상(我相)을 가진 자가 어찌 나를 볼 수 있으리오” 하면서 망태기를 뒤집자 강아지가 푸른 사자보좌로 변하였고, 보살은 그 보좌에 앉아 빛을 발하면서 사라졌다. 자장율사가 급히 따라갔지만 이미 문수보살은 사라진 뒤였다. 

영화 ‘어바웃타임’을 보면 행복을 위한 공식이 두 가지 나온다. 첫 번째는 일단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거의 똑 같이 하루를 사는 것이다. 처음에는 긴장과 걱정 때문에 볼 수 없었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두 번째 살면서는 느끼면서 말이다. 사실 우리는 오늘을 살기위해 미래로부터 시간여행을 한 것이다. 미래에 살다가 문득 지난 날 아쉬웠던 순간들을 다시 살아보기 위해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바쁘다고 나도 먹고 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도움 청하는 사람들은 내 알바 아니라면서 내쳤던 사람들이 지금 생각하니까 결국 나를 살리기 위해서 찾아온 부처님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 때 그 쓴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했던 것이다. 그 때 적선을 해서 공덕을 지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먼 훗날 후회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다시는 실수를 안 하면 되는 것이다.  

부처님이 그윽한 산사 법당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하철 계단에서 구걸하는 거지가 오늘 내게 공덕을 짓게 하는 부처로 화현해서 나타났을 수도 있다. 출근길에 인사한 모든 사람이 부처님이고, 퇴근길에 무심히 스쳐간 일상이 부처 아님이 없다. 만유불성(萬有佛性)이라 했다. 중생공양이 제불공양이다. 부처, 멀리서 찾지 말라. 지금 내 곁에 있는 그 사람이 바로 부처님이다.

동은 스님 삼척 천은사 주지 dosol33@hanmail.net

 

[1514호 / 2019년 11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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