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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

SF액션 영화 이면에 숨겨진 ‘금강경’ 가르침

장선우 감독의 상업적인 실패작
들여다보면 ‘영화적 불립문자’
‘금강경’ 세계 영화적으로 승화 
게임·현실 오가며 나타난 나비
장자의 호접지몽 드러내기도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금강경’ 가르침을 영화적으로 구현한 불교영화다. 위 사진은 영화 스틸컷. 

장선우 감독은 신명의 카메라를 주창하면서 필명을 얻었으며 그 후 감독으로 입문하여 ‘우묵배미의 사랑’ ‘경마장 가는 길’을 거쳐서 ‘거짓말’과 ‘화엄경’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작을 연출하여 코리안 뉴웨이브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는 2002년 한편의 작품을 끝으로 충무로에서 멀어져 제주도 바닷가의 물고기 카페를 운영하면서 다음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 작품이 바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며 상업적 실패와 비평적 수모를 감당해야했다. 그가 운영하는 카페의 이름이 ‘물고기’인 것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서 고등어 총을 연상하게 한다. 또 바닷가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하 ‘성소’로 약칭)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와 성소가 아이를 낳고 바닷가에서 반짝이는 햇빛을 받으면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이미지와 겹쳐진다.

10여년 전 조계사에서 불교영화관련 학술대회가 열렸는데 그 자리에 장선우 감독이 토론자로 참석해, 청중의 절반 이상이 스님으로 채워진 자리에서 불교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드러냈다. 그리고 발언의 말미에 “내 영화 ‘성소’는 ‘금강경’을 풀어낸 것”이라고 실토했다. 처음 극장의 시사회에서 ‘성소’를 관람한 후 머릿속에 장자와 불교 경전의 한 구절로 여겨진 자막이 또렷하게 남아서 해석의 실마리로 던져졌다. 그 자막은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씨네 21’에 게재했던 ‘성소’에 대한 전설적인 악평을 탐독하며 ‘금강경’의 구절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장선우 지지자였던 정성일은 ‘성소’의 영화평 제목을 ‘얻을 것도 설할 것도 없다’로 내세우고 “성냥팔이 소녀가 재림하는 게임 안에서 아주 후진 수준으로 카피한 할리우드 영화 ‘매트릭스’ ‘툼 레이더’ ‘와호장룡’과 ‘저패니메이션’을 떠올리느라 ‘금강경’과 호접몽을 잊으시면 게임오버”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할리우드 영화와 일본 애니메이션을 상호텍스트성으로 인용하였지만, 핵심 사상은 장자의 호접지몽과 ‘금강경’의 설법이라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여겨진다. 

‘성소’는 겉보기에는 액션영화이지만 비주얼은 SF 영화의 간판을 달고 있다.  인물의 서사는 주와 성소의 사랑으로 채워진 멜로영화이지만 게임의 장으로 접어들 때 등장하는 나비, 성소가 자유롭게 벗어날 때 총으로 쏘는 나비는 장자의 호접지몽과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본다면 여래를 볼 것이니라)의 ‘금강경’ 구절은 불교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나비의 이미지는 ‘금강경’에서 “유위의 법은 모두 꿈이나 환영 같고 물거품이나 그림자 같으며 이슬 같고 번개 같으니 부처님을 배우는 사람은 항상함이 없음을 관찰해야 한다”(김진무, 유화송 역, 도해 금강경)고 설법하신 꿈에 가까우며 ‘금강경’의 세계를 영화적으로 승화한 불교영화 장르를 감추고 있다. 

‘성소’는 게임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구분되다가 다시 합일된다. 중국집 배달부 주(김성현 분)는 게임에 관심이 많으며 오락실에서 근무하는 희미(임은경 분)를 좋아한다. 그는 성냥팔이 소녀로부터 라이터를 얻게 되고 라이터에 적힌 전화번호를 통해 성소 재림 사이트에 접속한다. 그곳의 음성이 이후 영화의 서사를 예견해준다. 성소가 얼어 죽기 전 그녀가 꿈꾸는 환상 속으로 들어가 성소의 사랑을 얻고 행복한 세상으로 가는 것이 게임의 구성이며 영화의 두 번째 버전이다.
 

위 사진은 영화 스틸컷.

장선우 감독은 인터뷰에서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를 게임 속에서 재현해 원작처럼 얼어 죽는 대신 게임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하게 할 생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겠다고 연출의도를 언급했으며 이를 위해 버전 1과 버전 2를 동시에 편집해 영화를 완성하였다. 이에 대해 영화평론가 이효인은 ‘장선우의 이야기는 버전 1인데, 버전 2에서 열반의 세계를 그리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슬프지만 희망을 갖자는 얘기’로 평가한다. 장선우 감독은 비극적인 곳에서 극락세계로 떠난 그들을 그리며 측은한 성소의 삶을 동정하고 관객들에게 세상에 대한 희망을 설파했다. 이효인 선생의 해석은 설득력 있다. 불교영화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조금 더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장선우의 ‘성소’에서 총알이 날아가는 것을 슬로모션과 정지화면으로 보여주는 것, 또 허리를 꺾어 총알을 피하는 모습이나 와이어 액션 등은 시각적 이미지로 ‘매트릭스’를 인용하였다. 정신적 이면에 ‘매트릭스’의 세계관과 ‘성소’의 세계는 불교의 교리를 담고있다는 점에서 내밀하게 연계된다. ‘매트릭스’는 마음을 강조한다. ‘성소’에서도 추풍낙엽은 주에게 마음으로 고기를 낚게 하며 고등어라는 무기를 제공한다. 고등어는 108개의 빔을 쏠 수 있다. 네오의 훈련과 주의 훈련도 마음 수련이라는 점에서 닮았으며 그들은 임무 완수 후에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해탈)에서 강한 불교적 색채가 드러난다. 주는 게임의 시스템으로부터, 영화 속 세상으로부터 벗어나 배를 타고 갔는지 차원을 이동했는지 알 수 없는 곳에 당도한다. 

그곳은 시간이 흐르지 않고 이름이 없는 곳이다. 주는 상이 상이 아님을 보고 게임과 현실이 경계 없음을 깨닫고 성소의 이름이 지워진 곳에서 산다. 불교의 깨달음이 성소의 마지막 장면에 영화적 이미지로 보여진다. 장선우는 불립문자대신 이미지와 보이스 오버나래이션을 선택한다. 이 장면은 영화적 불립문자에 가깝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514호 / 2019년 11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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