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기법 중 하나인 옻칠을 차용해 회화 작업의 폭을 넓혀온 김정은 작가의 개인전 ‘물들다(absorb)’가 열린다.
12월18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계속되는 이 자리에는 옻칠회화 작품 10여점이 전시된다. 옻칠화는 기원전부터 활용됐던 옻칠역사에서 파생된 새로운 화종으로, 전통공예의 고정관념을 깨고 한발 더 나아가 순수회화에 접목시킨 혁신적인 장르다. 옻칠은 화학물감과 달리 생명력을 지닌 천연물질로서 그냥 마르지 않기 때문에 작품으로 다루고 표현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뛰어난 역량이 요구된다.
그림을 그린 후 칠장에서 적정 습도와 적정 온도를 유지하면서 섬세하고 까다롭게 작품을 말려야 하고, 색을 얹을 때는 앞서 말린 옻칠을 사포질해야 새로운 색을 결합시킬 수 있다. 때문에 수차례, 많게는 수십 차례 이상 말리고 갈아내고 덧칠하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옻칠의 까다로운 제작기법과 옻빛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김 작가는 작품을 완성하기까지의 인고의 시간을 고행이 아닌 수행으로 삼는다.
“수행으로 삼으며 거친 면을 갈아내고 마음의 소리를 따라 색을 더하며 그려낸 작품은 일반적인 프레임에서 벗어나 마음 속에 담아온 이미지와 기억을 새롭게 보여준다. 문득 하늘을 올려보다 미세먼지로 가득한 대기에서 하얗게 빛나는 태양을 보았던 날, 하나의 물성이 보는 이와 보는 이가 서있는 자리와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서 태양을 향한 붓을 들었다. 나에게서부터, 나의 의식으로부터 나왔으나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순간을 붓끝으로 흘려내 찰나의 단면으로 표현하기에 나의 작품 활동은 삶의 중도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김 작가는 2년여간 매월 2회 이상 전국 각지의 사찰을 찾아다니며 도량을 거닐었다. 그는 스님과 차담을 나누고 산사의 공기를 느끼며 자신의 삶과 사람을 대하는 방식, 삶을 대하는 방식의 폭이 달라졌다고 전한다. 그것이 이번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표현이 녹아있는 그의 작품은 운문사 명성 스님의 구순을 기념해 제작된 애니메이션의 마지막 부분을 장식하기도 했다.
그는 선입견을 주지 않고 함께 대화 나누기를 원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다양성이 있음을 생각하고, 그 어떤 것으로도 규정짓지 않고자 한다. 감상 또한 마찬가지다. 감상자 모두 표준화된 관념의 틀을 깨고 마음으로 자신의 느낌을 받아들이기를 바라기에 미리 작품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시간, 공기, 사람에 따라 떠오른 다양한 감상이 오감으로 연기되기를 바랄 뿐이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515호 / 2019년 12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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