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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수완 문화재청문화재전문위원

“사찰서 만나는 조형물에는 동서양 문명교류사 오롯이 담겨 있어”

사찰 입구 표시한 당간·당간지주
고대 이집트 ‘오벨리스크’서 기원
아쇼카석주는  사찰소유지 기준
인도와 직접 교류 흔적도 엿보여

주수완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은 도봉산 광륜사에서 진행한 특강을 통해 사찰에서 만나는 다양한 건축과 조형물에 담긴 교리와 문명교류의 흔적을 상세히 펼쳐보였다.
주수완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은 도봉산 광륜사에서 진행한 특강을 통해 사찰에서 만나는 다양한 건축과 조형물에 담긴 교리와 문명교류의 흔적을 상세히 펼쳐보였다.

사찰에서 접하게 되는 불상과 건축물, 그리고 다양한 불화와 조형물들을 보면서 그 속에 담긴 불교의 가르침과 의미를 잘 몰라 궁금해 하는 분들을 자주 만나곤 합니다. 대웅전, 무량수전, 극락전 등등, 각기 다른 사찰 전각 이름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지,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비로자나불은 어떻게 다른 부처님들이고 무엇을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는지 질문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또 다양한 조형물, 불화들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으며 왜 저런 형태를 보이는지 도 궁금하죠. 오늘 강의에서는 사찰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 사찰에서 만나는 다양한 조형물 속에는 어떤 가르침이 담겨있는지 알아보고, 이를 통해 불교의 역사까지도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찰에 들어서기 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조형물이 바로 당 혹은 당간지주입니다. 당간은 철이나 나무 등으로 만든 기둥을 뜻하는데 현재 우리나라 사찰 입구에는 당간은 사라지고 기둥을 지지하기 위해 돌로 만들었던 당간지주만 남아있는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원래 당간은 ‘이곳부터가 절 땅이다’라고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당간의 역사는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서원이나 향교의 경우에는 ‘여기서부터 서원 혹은 향교에 속한 땅입니다’를 알리기 위해 기둥을 세우는 전통이 없었습니다. 유독 불교 사찰에서만 소유지의 경계를 보여주는 당간이 등장합니다. 이는 당간, 혹은 당간지주가 불교의 전래와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부로부터 유래된 전통이라는 추론을 가능케 합니다. 

그런데 이런 전통은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에서도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인도의 전통종교인 브라만교나 힌두교 사원 입구에서는 기둥을 세워 사찰 소유지임을 표시하는 사례는 보이지 않습니다. 기둥 표식을 세우는 것은 인도에서도 유독 불교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 같은 독특한 불교 전통의 기원을 찾기 위해 잠시 이집트로 시선을 옮겨보겠습니다. 고대 이집트왕국에서는 오벨리스크로 불리는 돌기둥을 조성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이집트 왕인 파라오가 전공이나 업적을 세우면 오벨리스크를 세워 그 표면에 파라오의 업적을 기록했습니다. 이집트문화는 고대 그리스로 이어져 오늘날 유럽문화의 기원이 됐습니다. 그리고 다시 로마로 이어졌습니다. 로마에서도 이집트와 마찬가지로 돌기둥을 세워 황제의 업적을 기리는 모습이 나타나는 이유입니다. 이집트에서 시작된 돌기둥의 문화는 대제국을 세운 그리스의 알렉산더대왕에 이르러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로까지 전해집니다.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을 통해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는 동방으로 전해졌습니다. 불교 또한 그 과정에서 다양한 문화적 영향을 받습니다. 동방은 기후와 문화 모든 면에서 알렉산더가 정복했던 이전의 모든 지역과는 전혀 다른 나라였습니다. 알렉산더는 인더스강 유역의 험난한 지형과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기후, 그리고 코끼리부대와 같이 생전 처음 보는 동물들을 앞세운 인도의 반격에 막힙니다. 결국 알렉산더는 인도를 점령하지 못한 채 풍토병에 걸려 사망합니다. 알렉산더 사망 후 그를 따라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지역까지 진출했던 그리스인들 상당수는 이 지역에 정착해 독자적인 왕국을 세우면서 인더스강 유역으로 그리스문화가 폭넓게 전해지게 됩니다. 

이 시기 인도는 여러 나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알렉산더대왕의 침입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인도에도 강력한 세력, 외세에 대적하는 인도인이라는 민족적 자각이 일어나고 이는 곧 통일왕조의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바로 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마우리아왕조의 탄생입니다. 마우리아왕조를 대표하는 왕은 경전에 자주 등장하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아쇼카대왕입니다. 

아쇼카는 인도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그리스인들과도 치열하게 대립하지만 그리스문화에 대해서는 매우 우호적 인물이었습니다. 아마도 마우리아왕조를 세운 아쇼카왕 집안이 비교적 낮은 카스트에 속했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철저한 계급제 사회였던 인도에서는 사제계급인 브라흐만, 귀족과 왕족이 속한 크샤트리아, 그리고 평민인 바이샤, 노예인 수드라 계급의 구분과 계급에 따른 차별이 매우 심했습니다. 낮은 계급에 속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아쇼카는 카스트에 기반한 인도의 전통보다는 계급적으로 비교적 자유로웠던 그리스문화, 그리고 타고난 신분보다는 모든 생명의 평등을 주장했던 불교에 매우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적극적으로 수용합니다. 바로 이 과정에서 아쇼카석주라는 기둥이 인도에도 출연하게 됩니다.

아쇼카왕은 신분제보다는 평등을 주 장했던 부처님의 가르침에 심취했습니다. 말년에 이르러서는 왕위를 넘기고 부처님유적을 따라 성지순례를 하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인도성지를 순례할 때 만나게 되는 룸비니, 보드가야, 사르나트, 쿠시나가르 등을 가장 먼저 순례했던 인물, 오늘날 인도불적순례의 효시를 이룬 인물이 바로 아쇼카대왕입니다. 

아쇼카는 부처님 열반 후 100여년 경에 태어난 인물입니다. 하지만 아쇼카가 불교성지를 순례했을 당시 이미 인도에서는 부처님의 탄생지, 성도지, 열반지 등에 대한 기록이나 기억이 희미해져 있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아쇼카는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 당시 남아있던 부처님의 흔적을 찾아내고 기록을 취합해 나갑니다. 그렇게 확인된 부처님의 발자취를 정비하고 그 자리에 돌기둥을 세워 이곳이 불적지임을 밝히며 후세에 이르러서도 잘 관리될 수 있도록 돌기둥에 새겨 기록으로 남깁니다. 또 불적지 주변의 토지에서 나오는 소출물을 불적지 관리비용에 사용케 합니다. 즉 아쇼카왕이 세운 기둥은 그 석주를 중심으로 일정거리 내의 토지가 불적지에 귀속돼 있음을 알리는 표식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아쇼카석주는 사찰소유지의 경계를 표시한 우리나라의 당간지주와 그 성격이 매우 비슷합니다. 

이집트에서 시작된 오벨리스크 문화는 로마로 전해졌고 기둥을 세우는 문화가 아쇼카왕 시대에 인도로 전해진 후 불적지임을 알리고 사찰의 영역을 표시하는 기능이 추가됩니다. 이후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전해지며 당간의 형태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당간을 잘 세우지 않았습니다. 중국 또한 불교가 전래되며 인도의 영향을 받았지만 중국에서는 주로 왕의 무덤 앞에 세워졌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정확하게 사찰의 영역을 표시하는 용도로 기둥을 세웠습니다. 우리나라의 불교가 중국의 영향만 받은 것이 아니라 인도와의 직접 교류도 활발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돌기둥 위에 조성하는 동물입니다. 인도에서는 돌기둥 위에 주로 사자를 조각했습니다. 사자 형상은 부처님의 좌대에 많이 등장합니다. 그러다보니 용맹한 사자가 부처님을 호위하는 모습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전에 사자가 부처님을 보호했다는 일화가 등장해야 합니다. 하지만 경전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부처님은 그런 보호가 필요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경전에서는 부처님을 해치려는 외도들의 시도가 종종 있었지만 부처님에게는 어떤 위해도 가하지 못했다는 기록들이 다수 등장합니다. 그러니 사자가 부처님을 보호하는 호위병의 역할을 할 필요는 없었던 것입니다. 

불교에서 사자는 부처님 음성을 상징합니다. 부처님 말씀을 종종 ‘사자후’라 표현하는데 이는 부처님이 말씀, 그리고 가르침을 사자의 우렁찬 포효에 비유한 것입니다. 사자가 포효할 때 다른 동물들이 감히 어떤 소리도 내지 못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즉 부처님이 가르침을 펴시면 그 어떤 반론이나 대론도 불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석주 위에 등장하는 사자의 조형은 바로 부처님의 음성과 가르침 그 자체를 상징하는 동시에 이곳이 부처님의 설법이 이뤄진, 지금까지도 부처님의 가르침이 울리고 있는 불교의 땅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아쇼카 석주 위에 사자가 있듯이 우리나라 당간지주 위에는 용이 표현돼 있습니다. 아시아권에서 용은 전통적으로 왕의 상징이었습니다. 사자 또한 인도와 페르시아 지역에서는 왕의 상징이었습니다. 사자에서 용으로 대상이 바뀌었지만 각 지역에서 왕을 상징하는 동물을 기둥 위에 조성했다는 점은 놀랍도록 일치하고 있습니다. 왕은 곧 부처님을 뜻하고 있습니다. 

당간지주 하나를 통해서도 이처럼 인류문명의 거대한 흐름을 엿볼 수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문화가 그리스를 거쳐 인도로 전해지고 그곳에서 다시 불교와 만난 뒤 중국과 우리나라로 이어졌습니다. 불교는 단순한 종교를 넘어 세계의 문화를 포괄하며 인류문명의 발전을 견인한 세계문화의 총체입니다. 사찰에서 보이는 소소한 조형과 조각물, 그림 속에는 불교의 역사와 인류문화의 흐름이 담겨 있습니다. 이 귀중한 역사와 문화를 보호하고 전승하는 일에 불자들 모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이 강의는 서울 도봉산 광륜사(주지 성적 스님)·청화불교대학이 11월23일 개최한 초청특강에서 불교예술사학자 주수완 교수가 ‘사찰에서 배우는 재미있는 불교’를 주제로 강연한 내용의 일부를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1515호 / 2019년 12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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