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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정반왕과 백반왕

기자명 현진 스님

석가족이 쌀농사 짓던 부족임을 드러낸 용어

밥을 의미하는 ‘오다나’가
한문으로 번역된 것이 ‘반’
석가족·꼴리야족 ‘물꼬싸움’
쌀농사 귀하게 여긴 증거

아주 오래전 중학교 선생님께서 수업 중에 부처님의 부왕과 숙부들의 이름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부처님의 조부인 사자협왕에게 네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가 부처님의 부왕인 정반(śuddhodana)왕이요, 그 아래로 숙부들에 해당하는 백반(śuklodana)왕과 곡반(droṇodana)왕 및 감로반(amṛtodana)왕이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때는 그저 한문도 아니고 범어도 아닌 단순한 한글발음만 들었을 뿐이었는데, 하교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어귀 허름한 식당 여닫이문에 페인트로 쓰인 식당 메뉴문구를 보는 순간 부왕과 숙부들의 이름이 불현듯 연상되었던 기억이 있다. ‘백반정식 가능’

지금에야 이름을 범어로 살펴보면 익힌 쌀인 밥을 의미하는 오다나(odana)가 한문으로 반(飯)이라 번역된 것을 알 수 있기에 그저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때는 왕의 이름에 왜 ‘백반정식’과 비슷한 말이 들어갔는지 궁금하기도 하였고 한편으론 재미지기도 하였다. 이는 석가족이 쌀농사를 지었던 부족이었다는 역사적인 반증으로서,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석가족이 쌀농사를 짓던 부족이었다는 것은 남방경전에 나타난 석가족과 꼴리야족의 물꼬싸움의 설화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본래 두 부족은 같은 감자왕의 후손으로 멀지 않은 친족관계였다고 한다. 감자왕에겐 여러 왕비로부터 얻은 다섯 아들과 다섯 딸이 있었는데, 가장 나중에 얻은 왕비에게서 낳은 다섯 번째 아들 잔뚜(jantu)에게 왕위를 물려주고는 나머지 네 아들과 다섯 딸을 나라밖으로 추방해버렸다.

네 왕자는 각자의 어머니와 다섯 누이 및 추종하는 이들을 이끌고 북쪽으로 올라가 히말라야산 아래의 너른 들판에 정착하여 새로운 터전을 일구었다. 결혼할 나이가 된 네 왕자는 순수혈통의 유지를 위해 각기 누이들과 결혼을 올렸는데, 첫째 딸인 삐야(piyā)는 나병을 앓아 숲으로 들어가 홀로 살았다. 삐야는 숲속에서 같은 나병환자였던 바라나시의 왕 라마(rāma)를 만나 나병을 치료받고 그와 결혼해 왕국을 세우게 되었는데, 그곳엔 호랑이 피해를 막기 위해 꼴리야 나무를 성벽처럼 줄지어 심었기에 그 종족을 꼴리야(koliyā)족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편 추방한 아들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알아본 감자왕은 그들이 어엿한 왕국을 일구어 산다는 소식을 듣고는 ‘역시 나의 아들들은 능력이 있구나’라고 하였는데, 이후 ‘능력이 있는 자’라는 뜻에서 그들은 석가(釋迦, sakyā)족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같은 뿌리의 석가족과 꼴리야족이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지 5년째 되는 해 심한 가뭄으로 인해 로히니(rohiṇī)강을 사이에 두고 극심한 물꼬싸움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제 누이와 사는 짐승 같은 놈!’이라 욕하고 ‘겁이 많아 나무에나 빌붙어 사는 놈!’이라 욕하며 물길을 차지하려 급기야 전쟁까지 불사할 태세였으나 부처님의 중재로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왕들의 이름이 ‘깨끗한 밥’이요 ‘흰 밥’이며 ‘양식으로 쓸 밥’이요 ‘감로수와 같은 밥’이라 하였으니 한반도에서의 우리민족이 항상 그러했듯이 그 종족이 얼마나 쌀농사를 귀하게 여겼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겠다.

우리 문화의 한 근간을 이루는 신라에서 왕족을 중심으로 근친혼이 있었다는 사실, 그러한 신라가 터전을 잡았던 지역에 근자에까지 나병이 심심찮게 있었던 사실, 그리고 우리민족이 유독 쌀농사에 애착을 가지고 있어서 만주의 간도 등지로 일부가 옮겨간 후에도 쌀농사의 북방한계선을 훨씬 넘겨가며 추운지역에까지 기어코 쌀농사를 일궈내었다는 사실, 그리고 예전의 농촌에서 봄철 가뭄과 함께 항상 있어왔던 물꼬싸움 등을 통해 우리민족에게 있어서 이러한 석가족의 이야기들은 단순히 먼 인도 어느 부족의 아련한 옛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 것 같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515호 / 2019년 12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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