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부산 범어사 비로전 목조비로자나삼존불상
42. 부산 범어사 비로전 목조비로자나삼존불상
  • 이숙희
  • 승인 2019.12.03 11:14
  • 호수 15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638년 비로전 중창하며 불상 조성
본존불 좌우에 문수·보현보살 배치

본존불은 비교적 안정감 있고
단정함 보여주나 인상 무표정
협시보살, 몸 비해 머리 큰 편
조선후기 보살상 전형적 모습
범어사 목조비로자나삼존불상, 1638년, 높이 124.6㎝. ‘비로자나불상’ 하(영축산 법성사, 2017).
범어사 목조비로자나삼존불상, 1638년, 높이 124.6㎝. ‘비로자나불상’ 하(영축산 법성사, 2017).

부산 금정구 범어사(梵魚寺)의 창건에 대한 내용은 ‘삼국유사’권4에 나와 있다. 기록에 의하면, 의상 대사가 678년에 창건한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화엄종 10찰 중 하나라고 한다. 범어사는 해인사, 통도사와 함께 경남지역의 3대사찰로 유명하다. 

범어사 비로전(毘盧殿)에는 목조비로자나삼존불상이 안치되어 있다(사진). ‘범어사지(梵魚寺誌)’와 ‘범어사비로삼존중수도금기’에 의하면, 1638년(숙종 9)에 해민 스님이 비로전을 중창하면서 불상을 조성하였으며, 이후 1722년 3월에서 6월에 걸쳐 진열(進悅), 관성(寬性), 옥총(玉聰), 청우(淸愚), 청휘(淸輝) 등이 중수, 개금하였다고 한다. 그중 진열과 청휘는 범어사 관음전에 안치된 목조관음보살좌상을 조성하는 데에도 참여했던 조각승이다. 특히 진열은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에 활동했으며 경기도, 전라도, 경상도 등에 그의 작품이 많이 남아 있다.  

목조비로자나삼존불상은 중앙에 비로자나불좌상을 두고 좌우에 문수와 보현보살상을 배치한 삼존불 형식이다. 최근에 보수하면서 새로 두껍게 금을 입혔는데, 원래의 모습에서 약간 변형되어 생경한 느낌을 준다. 

본존불인 비로자나불좌상은 고개를 앞으로 약간 숙인 자세로 머리가 몸에 비해 다소 큰 편이지만 다리의 폭이 넓어 비교적 안정감 있는 모습으로 앉아 있다. 머리 위에는 큼직한 육계가 놓여 있는데, 구분이 뚜렷하지 않고 중앙 계주와 정상 계주가 장식되었다. 얼굴은 네모난 편으로 오뚝한 코와 긴 인중, 가늘고 얇은 입술 등에서 단정함을 보여주나 무표정한 인상이다.

몸에는 양쪽 어깨를 덮은 통견(通肩)의 법의를 입었으며, 오른쪽 어깨에서 길게 내려온 옷자락이 손목에서 한번 접힌 후 내의 속으로 들어간 형태이다. 다리 사이에는 넓은 띠 모양의 옷주름이 흘러내린 듯이 자연스럽게 펼쳐져 있고, 옷 안자락의 끝단은 S자형으로 마무리되었다. 가슴 위에는 수평으로 입은 내의가 보인다. 두 손은 오른손 손바닥을 밖으로 향한 채 둘째손가락을 세우고, 왼손으로 감싼 형태인데 손의 위치가 일반적인 지권인과는 좌우가 바꿔 있다. 이러한 비로자나불상은 8세기 중엽부터 조성된 전형적인 불상 형식이지만, 조선시대에는 특히 17세기 초반에서 전반까지 집중적으로 제작되었다.  

협시보살인 문수와 보현보살상도 비로자나불상과 마찬가지로 몸에 비해 머리가 큰 편이다. 무표정한 인상, 입고 있는 옷의 착의법, 옷주름 표현 등에서도 유사한 특징을 보여준다.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을 쓰고 여래식의 옷을 입었으며, 손에는 연꽃가지를 비스듬히 받쳐 들고 있다. 이는 조선 후기 보살상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범어사 목조비로자나삼존불상은 최근에 개금되었지만 중수도금기를 통하여 불상의 존명과 조성시기, 조각승을 정확하게 알 수 있어 조선 후기의 비로자나불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shlee1423@naver.com

 

[1515호 / 2019년 12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