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내 노년의 삶과 수행 ① - 진광 스님
23. 내 노년의 삶과 수행 ① - 진광 스님
  • 진광 스님
  • 승인 2019.12.03 11:16
  • 호수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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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보시게! 그 안의 나와 예전의 나는 같은가?”

방장 원담 스님, 은사 법장 스님
시봉하며 친아버님처럼 느껴져

남은 생에 세가지 하고 싶은 일
수행공동체 위한 사회적 기업가
바닷가·산골 구멍가게 사장님
죽는 날까지 여행자로 사는 것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나이를 먹어 가는지 머리칼은 물론 눈썹이며 수염까지 서리나 눈을 맞은듯 하얗게 변해간다. 게다가 기억은 가물가물해져 뭔가 물건을 자꾸 잃어버리고 치매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말년처럼 전 세계의 산 이름을 100여개 정도 매일 외워볼까도 싶다.

그러고 보면 젊다는 것만으로도 청춘은 무한한 가능성이자 찬란한 봄날이 아닌가 싶다. 만약에 다시금 그 시절로 되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헛된 상상을 하곤 한다. 그러나 지나간 세월을 누가 되돌릴 수가 있으며 한번 쏟아버린 물을 그릇에 다시 담을 수가 있겠는가. 다만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해 현재를 살아갈 뿐이다.

문득 어떻게 하면 아름답고 찬란하게 늙어갈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필자의 조부께서는 한학에 조예가 깊은 분으로, 고향에 작은 서당을 차려 훈장 노릇을 하셨다. 한학은 물론 천문, 지리, 의학 등에도 두루 밝으셔서 동네의 어른으로 존경과 경외를 한 몸에 받으셨다. 어릴 적에 찾아뵈면 항상 봉담배를 사 가지고 갔는데 곰방대에 꾹꾹 눌러 피우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기만 하다. 한미한 가문의 지식인이 느끼는 고뇌와 함께 큰 뜻을 펴지 못한 채 늙어가는 심정을 어렴풋이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형형한 눈빛이며 고집스러운 입술과 자유로운 영혼은 고스란히 손주인 내게 전해졌다고 믿는다. 

둘째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고향을 떠나 낯선 타향에서 고생하시며 일가를 이루신 부친 또한 불우하기는 매 한가지였다. 만약 그 당시 중·고등학교를 나왔더라면 뭐가 되어도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수성가하시어 슬하에 4남매를 훌륭히 키웠으니 참으로 대단한 분이시다. 어머님 또한 굴곡진 삶 속에서도 사랑과 자애로써 남을 위해 베푸는 삶을 사셨으니 세상 그 누구보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내 안에는 조부와 부친과 모친의 녹록치 않은 삶과 정신이 오롯하게 피로써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당신들처럼 살고 싶지 않아 출가를 했건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천형(天刑)처럼 내 몸과 핏줄기속에 더불어 함께하고 있으시다.

출가 후에는 당시 방장이신 원담 노스님을 3년간 시봉하였다. 고희가 넘어서도 잔주름 하나 없는 천진불과 같으셨다. 세 살 적에 부친을 잃고 9살인가 동진 출가하시어 당대의 선지식인 만공 큰스님을 시봉하며 도를 이루신 분이다. 마치 불보살님을 시봉하는 듯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스승 ‘경허’를 위해서는 허벅지 살을 베어서라도 공양을 드리겠다”고 하신 만공 스님처럼, 나도 스님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버릴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만약에 스님처럼 삶과 수행을 할 수만 있다면 몇 생이라도 그렇게 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은사이신 법장 스님도 3년여를 시봉하였는데 마치 친아버님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 너른 솥뚜껑 같은 손과 가슴에 안겨 그 모습과 염불청과 세세한 모든 것을 본받고 싶었다. 스님과 함께하면서 당신처럼 살 수만 있으면 몇 겁이라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다만 이른 시기에 입적하시어 곁을 떠나셨지만 그 모습과 혼은 항상 나와 더불어 함께 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덕숭총림 초대 방장으로 100세를 넘게 사신 혜암 큰스님처럼 살 수야 없겠지만 삼수갑산으로 입전수수 하시어 이름 없이 천화한 경허 큰스님이나 해방을 보고 무궁화 꽃잎에 먹을 묻혀 ‘세계일화(世界一花)’라 휘호 하시고는 뒤에 ‘자영찬(自影讚)’까지 직접 쓰신 후 입적하신 만공 스님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아니면 어느 날인가 전월사에서 정진하다가 소신공양하듯이 입적하신 연산 노스님처럼, 혹은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산 속으로 들어가 마지막 시신마저 들짐승에게 보시한 채 그렇게 천화(遷化)하고 싶다.

죽음 말고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써야하니 나는 어찌 늙어가며 노년의 삶과 수행을 어떻게 할까를 생각해 본다. 우선 소임을 놓으면 지중해 연안 국가나 아프리카 중 동부로 한 일년간 배낭여행을 다녀올 생각이다. 10년여 종단에서 소임을 보았으니 내 자신에게 한 일년간 휴가 겸 재충전의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 그리고 귀국한 후에는 한 3년여 선방에 들어 치열하게 용맹정진을 할 것이다.

그 뒤로는 남은 생애 동안 세 가지 일을 해보고 싶다. 첫째로는 스님들이 맘 놓고 휴식과 재충전을 할 수 있는 주거 공간과 짐 보관소 그리고 수행공동체 건설을 위한 일종의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가’가 되고 싶다. 또한 아쇼카(ASHOKA)나 키바(KIVA)와 같은 사회적 기업을 운영해보고 싶다. 

둘째로 강원도 산골이나 바닷가 마을에 작은 구멍가게를 인수해 운영하면서 그 동네의 이장을 하고 싶다. 아울러 그 동네에 농촌재생사업이나 도농연계사업을 통해 새로운 삶의 모델을 추진하고 실현시키고 싶다.

셋째로는 죽는 날까지 선방 수좌이자 배낭 여행자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봉암사 선원에서 뵈었던 지옹(智翁) 노스님처럼 죽기 전까지 정진방에서 용맹정진하다가 죽는 것은 수좌로서 가장 큰 복일 것이다. 그게 힘들면 출가 본사인 덕숭총림 수덕사 큰절에서 여하튼 대중을 여의지 않고 더불어 수행정진 하다가 마침내 덕숭산 자락에서 다비를 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그러한 가운데 해제철이면 걸망을 매고 전 세계를 떠돌며 만행을 하고 싶다. 고희가 지나도 배낭을 둘러맨 채 언제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의 ‘떠돌이 별’이자 배낭 여행자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다 마침내 히말라야 설산이나 인도 갠지즈강에서 내 생을 마감한 채, 그 곳에서 다비를 하여 이내 흩뿌려져 무화(無化)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아! 그럴 수만 있다면 다시 더 그 무엇을 더 바랄까? 만약 정히 그럴 수만 있다면 내 삶과 수행이 결코 헛되지만은 않으리라 믿는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저만 안 늙고 안 죽는다는 얼굴들이다. 그러나 어김없이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어느 누구라도 늙고 죽기 마련이다. 

그대여 고개 들어 거울을 한번 보시게나. 그 안의 나와 예전의 내가 같은가, 혹은 다른가? 이러한 때에 누가 너이고 누가 나이런고? 알 수 없고 또한 알 수가 없음이여, 한 줄기 종소리가 이미 도를 얻어 갔음이로다. 쯧쯧쯧(咄咄咄).

진광 스님 조계종 교육부장 vivachejk@hanmail.net

 

[1515호 / 2019년 12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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