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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노년의 삶, 늙어간다는 것에 대하여  ② - 동은 스님

기자명 동은 스님

“이웃집 소풍가듯 몸 바꾸는 삶이 우리네 인생이다”

수행공동체 지도하는 스님께
수행하시는 이유 여쭈었더니
“잘 죽기 위해서 수행합니다”
​​​​​​​
맑고 가난한 수행자야 말로 
그 산중의 가장 아름다운 꽃
미련 없이 떨어지는 꽃 꿈꿔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삶이 진행되는 동안은 삶의 의미를 확정할 수 없기에 죽음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탈리아 영화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가 한 말이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더욱 소중하다는 것을 극명하게 나타낸 말이다. 산다는 것은 결국 늙어가는 것이다. 며칠 전 신도님이 와서 상담을 청했다. 홀로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는데 몇 년 전 치매가 왔다고 하셨다. 나름 봉양을 한다고 애를 썼지만 생계를 유지하며 틈틈이 간병하기에는 너무 힘에 부쳐 하는 수 없이 지역에 있는 요양원에 모셨다. 그런데 그날부터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몸은 좀 편해졌지만 왠지 어머니를 요양원에 버려두고 온 것 같은 죄책감에 잠을 잘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동안 고민하다가 아무리 힘들어도 집에서 시봉하는 것이 맘 편할 것 같아 다시 모셔왔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 분을 보니 몸과 마음도 지치고 힘들어 점점 병이 들어가고 있었다.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인륜과 나도 어쩔 수 없이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이기심 가운데서 갈등하며 고통 받고 있었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신도님의 말씀을 다 듣고 난 후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보살님, 얼마나 힘이 드세요? 말씀을 듣고 나니 보살님은 어머니께 하실 만큼 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보살님의 삶까지 포기할 순 없지 않습니까? 이제 그만 요양원으로 다시 모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요즘 요양원도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보살님께서 모시는 것 보다 더 잘 모실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어머니께서도 그리 해주길 바랄지도 모릅니다.”
“정말 그리해도 될까요?” 

그 분은 눈물을 닦으며 말씀하셨다. 

“네, 그리하십시오. 그리고 어머니가 여생을 편하게 보낼 수 있도록 자주 찾아뵙고 잘 챙겨드리면 되지요.” 

겨우 기운을 차리고 산을 내려가는 뒷모습이 휘청거렸다. 산그늘 내리는 동짓달 차가운 바람이 도량을 한 바퀴 휩쓸고 지나갔다. 

가까운 곳에 수행하는 공동체가 있다. 그곳은 사부대중이 모여서 수행을 하는데 언젠가 지도하는 스님께 수행의 목적을 여쭌 적이 있었다. 스님의 대답은 간단했다. 

“잘 죽기 위해서 수행합니다.” 

‘깨달음’이니 ‘중생구제’니 거창한 대답을 기대했던 나는 내심 놀랐다. 잘 죽기 위해서 수행한다니···.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니 정말 맞는 말씀이었다.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 잘 살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하는 전제가 있는 것이다. 수행자가 먼저 건강하고 행복해야 그 가르침을 신도들께도 전할 수 있지 않겠는가? 평소 엉망으로 사는 사람이 잘 늙고 잘 죽을 수는 없다. 어찌 보면 우리 인생은 어떻게 하면 ‘잘 죽을까?’ 하고 아등바등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 같은 장수시대에 병원 침대에 누워 여기저기 호스를 꽂고 자기가 살아있는 줄도 모르고 기계로 숨만 쉬고 있다면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산지옥일 수 있다. 어르신들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저녁 잘 먹고 잠자듯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다. 누구나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조사 어록에 보면 한 소식 한 도인들이나 앉아서 죽고 서서 가기도 하지만 범부들에게 늙음과 죽음이란 두려움의 대상인 것은 분명하다. 왜 두려운가? 삶에 집착하여 늙기를 싫어하고 병들어 죽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이 늙고 죽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마 세상은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 죽음을 ‘선물’로 생각하고 삶을 살아 갈 때 비로소 늙어감도 아름답게 받아 들일 수가 있는 것이다. 

일전에 가까운 곳에 도자기를 구우며 사는 지인이 있어 찻잔도 살 겸해서 갔었다. 트럭에 살림살이를 싣고 유목민처럼 떠돌다가 그곳에 정착을 하셨다고 했다. 새댁 같은 부인은 얼굴이 창백하여 환자처럼 보였는데 그런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스님! 제가 아프게 보이지요? 사실 전 언제 죽을지 몰라요. 그래서 제가 죽으면 화장해서 이 화단에 꽃들의 거름으로 뿌려달라고 해놓았어요. 꽃밭이 참 예쁘지요?”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사람 하나 누울 정도의 작은 꽃밭에는 채송화며 봉숭아, 과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다. 꽃잎을 만지며 웃는 그 보살님의 얼굴에도 환하게 꽃이 피고 있었다. 잠시 가슴이 먹먹했다. 이렇게 아름답게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분도 있구나 싶었다. 고든 리빙스턴이 쓴 ‘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 버린’ 책 가운데 ‘나이 들어서야 늦게 깨닫게 되는 우리 인생의 30가지 진실’이라는 글이 있다. 그 스물일곱 번째 진실은 “인생의 마지막 의무는 아름다운 노년을 준비하는 것이다. 외로운 노년을 자식에게 기대려는 것은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한다. 노년의 상실감을 품위와 의지로 견뎌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마지막으로 용감해질 수 있는 기회다”라고 했다. 늙음은 피할 수 없다. 주름살과 흰머리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늙어도 아름답게 잘 늙어가야 된다. 

생사를 초월한 듯이 사는 스님들도 인간의 몸을 받은 이상 늙고 병들어 죽는다. 초학시절 노스님들이 병에 걸려 고생하는 것을 본적 있다. 그 모습을 처음 봤을 때는 충격을 받았다. “아니, 스님들이 어떻게 아플 수가 있지? 성불은 못하더라도 앉아서 열반에 들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했었다. 참으로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스님들도 이슬이 아닌 밥을 먹어야 살 수 있었다. 평소에도 시원찮은 몸으로 병치레가 잦은 나는 나이가 들고 아픈 곳이 자꾸 늘어나면서 더욱 육신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었다. ‘좌탈입망(坐脫立亡)’은 고사하고 잘 늙어가기도 힘겨운 그냥 ‘사람’이었던 것이다. 

우리 산하에는 아름답고 고결하게 늙어가는 수행자가 많이 있다. 천은사에 봄가을 두 번 만행 오는 팔순 노스님이 계신다. 정선 토굴에서 아직도 장작으로 군불 때며 걸망 메고 걸어 다니시는데 얼굴에 핀 주름 꽃이 그리 곱다. 평생을 맑고 가난하게 살아오신 수행자야 말로 그 산중에 핀 가장 아름다운 꽃이다. 꽃처럼 늙어가는 삶, 져야 할 때 미련없이 떨어져 주는 꽃잎 같은 삶, 그리하여 이웃집 소풍가듯이 몸을 바꾸는 삶이 우리네 인생이다.

동은 스님 삼척 천은사 주지 dosol33@hanmail.net

 

[1516호 / 2019년 12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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