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이제설의 전개양상 ③
93. 이제설의 전개양상 ③
  • 김재권 교수
  • 승인 2019.12.09 17:41
  • 호수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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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학파, 일체법무자성은 문자 그대로 의미 아닌 밀의

각 학파 이제설의 다양한 견해
옳다 그르다의 문제는 결코 아냐
인식·존재·수행 따른 견해 반영
같은 학파 내부에서 이견 발생

이제설은 일상적인 진실(=세속제)과 궁극적인 진실(=승의제)로 구분되는데, 붓다의 자내증의 경지인 궁극적인 깨달음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즉 맛지마 니카야의 ‘연기를 보는 자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 연기를 본다’라는 경구는 존재의 실상을 꿰뚫어 보는 여실지견에 대한 붓다의 진의가 제시된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붓다의 깨달음의 내용인 연기의 이법(=법)은 궁극적인 진실로서, 연기의 이치가 적용된 현상(=연생법)은 세속적인 진실로서 확립된 것으로 이해된다. 

초기경전에서 제시된 연기와 법에 대한 이해방식은 일의적이지 않고 매우 다양하다. 예컨대 유부와 용수의 이제설, 유식학파의 이제설 등은 연기와 법에 대한 붓다의 입장을 계승하는 한편, 학파적인 입장에 따라 그 이해방식의 차이를 명확히 보여주기도 한다. 이때 유부의 실체론적인 법의 이해방식을 둘러싼 용수와 유식학파 등의 비판적인 견해는 ‘반야경’의 ‘일체법무자성’이라는 공사상에 근거한다. 사실 유부와 용수, 그리고 유식학파의 이제설에 나타난 견해 차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론이나 인식론, 그리고 수행론적인 입장 등에 따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친의 저작인 ‘석궤론’은 유식학파의 이제설이 수행론적인 맥락에서 설명된다. 즉 “업과 이숙이란 세속으로서는 실유이고, 승의로서는 무이다. 세간지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승의란 출세간지이고, 그의 대상이기 때문에 승의이다. 이 둘(=업과 이숙)의 자상은 출세간지의 대상은 아니다. 그것(=출세간지)의 대상은 불가언의 공상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세간지 혹은 출세간지는 인식근거(=量)인가? 출세간지는 전면적으로 인식근거이다. 세간지에는 구별이 있다. 출세간지의 뒤에 얻는 세간지(=청정세간지)는 인식근거이지만, 그것 이외의 세간지는 인식근거는 아니다.”

유식학파의 이제설은 인식과 존재, 수행론적인 맥락에서 설명된다. 즉 유식학파의 이제설은 유부가 승의와 동일시한 실유를 세속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이때 실유에 해당하는 업과 이숙 등은 자상을 가진 존재로서 청정세간지의 대상으로 설명된다. 또한 용수 등이 세속적인 차원에서 언설과 일체법을 거의 동일한 것으로 간주할 때, 유식학파는 언설적인 표현(=假有)과 그 기체인 일체법(=實有)을 세분한다. 이러한 유식학파의 비판적인 입장은 ‘석궤론’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즉 “어떤 대승의 사람은 ‘일체는 자상으로서는 무이지만, 세속으로서는 제법은 유라고 세존은 설했다’라는 식으로 ‘일체법무자성’이라는 교설을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지닌 것(=了意)이라고 설한다. (중략) 

세속이란 언어표현이고, 그것이 잡염과 상응하면 삿된 설로, 청정과 상응하면 잘된 설(善說)로 표현된다면, 세속이 언어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선설 혹은 삿된 설이 될 것인가! 세속이더라도 어떤 것은 반드시 실체로서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째서 세속으로서 존재한다고 설하겠는가! 세속이 언어표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잡염과 청정의 일체를 손감하고, (중략) 또한 스스로 자설과 모순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아무 것도 말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체법무자성’이라는 교설이 해석의 여지가 있는 것(=密意)이라면, 이와 같은 오류에 떨어지는 일은 없게 된다.”

결국 유식학파는 ‘반야경’의 ‘일체법무자성’이라는 교설을 해석의 여지가 있는 밀의로 보아, 중관학파의 입장을 비판한다. 이와 달리 중관학파는 그것을 요의로 보는 점에서 그 차이를 드러낸다. 그리고 사실 중관학파 내부에서도 이제설은 요의를 비롯한 다양한 관점에 따른 차이를 드러낸다. 

김재권 능인대학원대 교수 marineco43@hanmail.net

 

[1516호 / 2019년 12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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