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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피천득의 감성적인 삶

기자명 김정빈

“쇼팽 클래식과 낭만적인 시, 소설 사랑한 수필가”

금아 피천득, 영문학자이자 시인
일제강점기 당시 투쟁 안했지만
조선총독부 원고 청탁 거부하고 
우리말 탄압하자 강원도로 은신
​​​​​​​
수필집서 산호와 진주 노래하고
조촐하고 고운삶 꿈꾸듯 그려내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영문학자이자 시인인 금아(琴兒) 피천득(皮千得, 1910~2007)은 수필가로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현대문학’을 통해 수필가가 된 뒤에 필자는 선생께 편지를 보냈었다. 얼마 후 필자가 근무하던 ‘한국문학’으로 선생이 오셨다. 그러고는 롯데호텔 커피숍으로 데리고 가서는 차를 대접해 주셨다.

그런데 차를 시켜놓고 나서 선생이 차를 마시지 않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체질이 매우 민감해서 커피만 마셔도 잠을 주무시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술을 못 마시는 거야 당연지사. 선생의 수필에 선생이 동료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양주 시켜놓고 고운 빛깔만을 감상하며 마시지는 않는 것을 보고는 한 기생이 이상히 여기더라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까지는 체질 문제지만 감성 면에서도 선생은 매우 섬세한 바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사물의 아름다움을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풍부하게 느끼신 것 같다. 선생의 ‘나의 사랑하는 생활’이라는 수필을 보면 선생이 사랑한 작고 조촐한 것들이 수십 가지나 망라되어 있다.

그것들은 용돈, 목욕, 딸과 아내에게 선물해주기, 친구들을 초청해 식사 대접하기, 여유로운 시간, 잔디 밟기, 고무창 댄 구두를 신고 아스팔트 걷기, 아가의 머리칼 만지기, 새로 나온 나뭇잎 만지기, 고운 화롯불의 재 만지기, 수달피 목도리 만지기, 아름다운 얼굴, 웃는 아름다운 얼굴, 수수한 얼굴이 웃는 모습, 아내가 자기 아이들을 바라보며 웃는 얼굴, 아는 여인들이 인사 대신으로 웃는 웃음, 금강산 만폭동의 찬란한 단풍, 유치원 선생님이 주시던 색종이 같은 빨강·보라·자주·초록 같은 황홀한 색깔들, 우리나라 가을 하늘, 진주빛과 비둘기빛, 오래된 마호가니 빛깔, 늙어가는 학자의 희끗희끗한 머리칼, 이른 아침 종달새 소리, 꾀꼬리 소리, 봄 시냇물 흐르는 소리, 갈대에 부는 바람 소리, 파도 소리, 골목길에서 듣는 피아노 소리, 딸이 내 귀에 대고 하는 귓속말, 비오는 날 선술집에서 나는 불고기 냄새, 새로운 양서(洋書) 냄새, 털옷 냄새, 커피 끓는 냄새, 라일락 짙은 냄새, 국화·수선화·소나무 향기, 봄 흙 냄새, 사과, 호두, 잣, 꿀, 친구와 마시는 향기로운 차, 군밤, 아이스크림, 나의 작은 집, 정장 차림, 삼베옷, 농군들이 쓰는 허름한 모자, 태사신, 까만 운동화, 깨끗하게 씻어놓은 파란 고무신, 흙이 약간 묻은 짚신 등이다.

이런 분으로서 피 선생은 클래식 음악을 애호하였고, 특히 쇼팽을 즐겨 들으셨다. 문학의 경우에는 낭만성이 높은 영시를 사랑했고, 소설도 인간미가 풍기는 작품을 좋아하셨다.

실생활에서도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성정이 반영되었다. 피 선생이 국가나 민족을 위해 투쟁하거나 앞장선 적은 없다. 일제시대에는 민족지사들을, 민주화 시대에는 투쟁하는 영웅들을 마음으로 응원했을 뿐이다. 어느 때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왔을 때 아나운서가 선생에게 “젊은이들을 위해 한 말씀해주십시오”라고 하자 선생이 한 말은 딱 한 마디 “나는 국가와 민족이 필요할 때 용감하지 못했는데 그것이 부끄럽습니다”라는 말뿐이었다.

하지만 그분은 최소한 대의를 위해 앞에 나서지는 않았을지라도 불의로 기울어지지는 않았다. 일제시대에는 민족지에만 글을 쓰고 총독부 기관지에서 오는 원고 청탁은 거절했고, 일제 말기에 우리말에 대한 탄압이 극심해지자 강원도의 한 사찰에 숨어 지내면서 혹독한 시대를 피했다. 우리는 그 시절 몇 년 동안에, 그동안 민족 정기를 잘 지켜오던 예술가들 몇몇이 ‘친일’ 작품을 썼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의 작품집 ‘서문’에서 이 훌륭한 수필가는 말한다.

“산호와 진주는 나의 꿈이었다. 그러나 산호와 진주는 바닷속 깊이깊이 거기에 있다. 파도는 언제나 거세고 바다 밑은 무섭다. 나는 수평선 멀리 나가지도 못하고, 잠수복을 입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나는 고작 양복바지를 말아 올리고 거닐면서 적은 모래 위에 있는 조가비와 조약돌들을 줍는다. 주웠다가 헤뜨려 버릴 것들, 그것들을 모아 두었다. 

내가 찾아서 주워 모은 것들이기에, 때로는 가엾은 생각이 나고 때로는 고운 빛을 발하는 것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산호와 진주가 나의 소원이다. 그러나 그것은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리 예쁘지 않은 애기에게 엄마가 예쁜 이름을 지어 주듯이, 나는 나의 이 조약돌과 조가비들을 ‘산호와 진주’라고 부르련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선생은 조촐하고 고운 삶을 살았다. 필자는 문학잡지사에 근무하면서 수많은 작가들을 보았지만 작품과 삶이 일치하는 점에서 선생 같은 분은 본 적이 없다. 어떤 분들은 선생을 ‘일상의 성자’라고 표현했다. 필자는 그분이 성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분이 ‘개결(介潔)한 인격을 가진 이 시대의 선비’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선생의 댁을 자주 방문하여 문학과 인생에 대해 토론하고 배우곤 했고, 선생도 가끔 필자를 찾아 주셨다. 어느 때 선생이 오셨길래 가까운 데 있는 선생의 책을 출판한 ‘일조각’에 들르자고 했더니 고개를 저으시는 것이었다. “내일 모레가 추석인데 오늘 내가 들르면 오해를 살 여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이었다.

서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강의하시던 선생은 정년을 1년 앞당겨 퇴직하셨다. 글을 군더더기 하나 없이, 보통 사람이 열다섯장 정도 쓰는 수필을 일곱장 정도로 간결하게 쓰시는 분으로서, 그분은 모든 삶을 끝이 지저분하지 않도록, 깔끔하도록 유념하며 행동하셨던 것이다.

불교는 ‘진리’를 말하고, 진리는 ‘거창’한 것이다. 하지만 삶은, 특히나 평범한 불제자로서 우리의 삶은 거창한 데라곤 없는 사소한 것들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그런 우리의 삶은 무가치한 것일까.

그에 대해 피천득은 거창한 것만이 삶의 모든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를 장식하는 것은 거창한 이들의 거창한 사건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시간의 99퍼센트는 작고 사소한 것들이며,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만 한다.

그러자면 감성이 필요하다. 불교가 말하는 공(空), 반야, 연기, 인과를 차가운 이성, 죽은 개념으로만 추구하는 관점을 잠시 접고, 그것들을 따뜻한 감동, 살아 있는 감성으로 바라보라고 모든 예술가들과 함께 피천득은 말한다. 이지적, 개념적인 진리 파악과 더불어 감성적, 경험적(직관적)인 진리 파악이 함께할 때 우리의 불교 공부는 더욱더 풍성해질 것이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516호 / 2019년 12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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