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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안도현의 ‘공양’

기자명 김형중

기존에 통용되는 공양의 의미 확대
우주만물 인간 위한 공양불사 읊어

산벌 날갯소리·매미 울음소리
무게단위 표현한 놀라운 발상
선가 화두처럼 깊은 사유·논리
격외초월이라야 이해할 파격

싸리꽃을 애무하는 산(山)벌의 날갯짓소리 일곱 근
몰래 숨어 퍼뜨리는 칡꽃 향기 육십 평
꽃잎 열기 이틀 전 백도라지 줄기의 슬픈 미동(微動) 두 치 반
외딴집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의 오랏줄 칠만 구천 발
한 차례 숨죽였다가 다시 우는 매미울음 서른 근

공양(供養)이란 불가에서 불법승 삼보에게 공경하는 마음을 다하여 음식, 재물, 향, 등, 차(茶), 꽃, 과일, 쌀 등을 바치는 공덕으로 불보살의 가피(加被)를 기원한다. 일반용어로는 부모나 웃어른을 모시고 정성스럽게 음식과 이바지를 올린다는 뜻으로 공양을 올린다고 한다.

공양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정성을 다하여 재물을 바치는 공경의 의미가 있다. 부처님께 바치는 공양을 불공(佛供)이라 한다.

안도현(1961~현재) 시인은 ‘공양’의 시에서 기존의 공양 의미를 확대하여 산천초목 우주자연 그리고 미물 곤충들이 인간을 위하여 온 힘을 다하여 공양을 올리는 불사(佛事)를 하고 있음을 읊고 있다.

‘공양’의 시는 초여름 꽃이 피고 소낙비가 내리는 어느 외딴집에서 막걸리 한 잔을 마시면서 자연의 신비에 도취하여 쓴 시이다. 인간들이 가진 자와 가난한 자, 노동자와 사용자가 서로 싸우지 않고 서로 공경하며 공양을 올리며 산다면 ‘공양’의 시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운 화엄연화의 세계가 될 것이다.

이 시에서 놀라운 발상은 ‘산벌의 날갯소리 일곱 근’ ‘칡꽃 향기 육십 평’ ‘백도라지 줄기의 슬픈 미동 두 치 반’ ‘소낙비의 오랏줄 칠만 구천 발’ ‘매미울음 서른 근’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산벌의 날갯소리와 매미울음소리를 무게의 단위인 ‘일곱 근, 서른 근’으로 나타냈다. 선가의 화두처럼 깊은 사유와 언어 논리의 격외초월(格外超越)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선언어(禪言語)의 파격이다.

송나라 소동파는 상총(常總) 선사로부터 무정(無情)설법을 듣고 “시냇물소리가 곧 부처님의 설법이요, 산림의 푸른빛이 청정한 부처의 몸이네”라는 오도송을 남겼다. 무정(無情)설법은 사람이 아닌 무정물이 진리의 법을 설한다는 뜻이다. 

안도현 시인은 ‘공양’의 시에서 소동파의 무정설법을 무정(無情) 공양(供養)으로 환골탈태하여 읊고 있다. 산천초목의 무정물(無情物)이 인간부처를 위하여 공양을 올리고 있다고 하였다.

소동파가 자신이 불법을 공부한 경지를 인정받고 싶어, 승호(承皓) 선사를 찾아가 자신의 성씨가 천하의 선지식의 법력을 저울질하는 “나의 성은 저울 칭(秤)이요”하였다. 승호 선사는 갑자기 “악!” 하고 벽력같은 고함(할)을 지르며, “이 소리는 몇 근이요”하였다. 소동파는 말문이 막히고 아상이 무너져 깨달음을 얻은 일화가 있다.

‘공양’에서 시인이 산벌의 날개짓소리나 매미울음소리를 무게를 다는 단위인 ‘근’으로 표기한 것은 소동파의 일화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일곱 근’이라 했을까? ‘벽암록’에 실린 당나라 조주선사의 화두에 “승복 한 벌을 만드는데, 그 무게가 일곱 근이다”가 있다. 물론 조주선사의 ‘승복의 무게가 일곱 근’에서 ‘일곱 근’의 수치는 의미가 없다. 사람들은 수치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그것을 통해 비교분별하고 판단한다. 피타고라스의 말대로 수(數)가 만물의 척도로써 세상을 지배한다. 비교하고 분별하는 사고는 주관적인 관념에 의해서 사물을 바르게 정견을 할 수가 없다. 

안도현은 자연을 관찰하는 깊은 반야의 눈이 있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길을 제시해주는 아름다운 시를 쓰는 우리 시단의 중견이다. 

김형중 문학박사·문학평론가 ililsihoil1026@hanmail.net

 

[1516호 / 2019년 12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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