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매트릭스’(1999)
22.  ‘매트릭스’(1999)
  • 문학산 교수
  • 승인 2019.12.11 09:54
  • 호수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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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과학영화가 세상에 던진 종교·철학적 화두 

워쇼스키 감독의 시리즈 역작
종교적 상징 의도적으로 활용
액션영화사에 한획 그은 작품
본질의 깨달음·참나 발견으로
감각과 마음의 감옥에서 해방
워쇼스키 감독의 영화 ‘매트릭스’는 종교적 상징을 배치하고 공상과학영화의 구조를 수용했으며 여기에 중국 무협영화의 액션장면까지 가미한 범종교적 융합장르다. 사진은 스틸컷. 

한 편의 영화는 거대한 화물선과도 같다. 화물선 안에 선적된 물품이 다종다양하듯이 영화도 이야기와 무수한 문화, 철학과 종교를 싣고 관객의 바다로 항해한다. 워쇼스키 형제가 연출한 ‘매트릭스’는 공상과학영화의 장르에 신화와 문학과 종교에 철학을 적재하여 수많은 논쟁과 담론을 생산하였다. 한 편의 영화가 생산한 담론의 양은 ‘매트릭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작품이 많지 않을 것이다. ‘매트릭스’는 소재와 주제의 풍부함으로 해석의 길도 다양하게 펼쳐져있다. 

워쇼스키 감독에게 ‘이 작품은 종교적 상징을 의도적으로 사용했느냐’는 질문이 제기되었을 때 그는 즉각 ‘그렇습니다’라고 수긍하였다. 문제는 하나의 종교가 아닌 다양한 종교의 상징을 복합적으로 융합한다는 점이다. ‘매트릭스’느 특정 종교인을 부각한 종교영화가 아니라 전 세계 관객을 대상으로 한 종교적 상징을 배치하고 신화와 공상과학영화의 내러티브구조를 수용한 다음 중국의 무협영화의 액션장면을 가미하여 범종교적 융합장르를 완성하였다. 

특히 액션장면은 홍콩의 원화평 무술감독이 참여하여 와이어 액션과 360도 회전 동작과 정지동작 그리고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는 장면을 표현하여 액션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 원화평의 액션은 ‘매트릭스’ 액션 장면이라는 이름으로 후배 감독들이 앞을 다투어 모방하고 오마주하여 액션 장면의 트랜드가 생겼다. 장선우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 액션 장면도 ‘매트릭스’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우며 타란티노의 ‘킬빌’(2003)은 원화평의 액션에 대한 노골적인 오마주를 표명했다. 

‘‘매트릭스’는 액션활극영화의 외피를 뒤집어쓴 인간의식에 관한 학위논문’(리드 머서 슈셔드)이거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의 단순화된, 낭만화된 관념을 제공한 영화’(앤드류 고든)이지만 한편으로 마음의 문제를 내밀하게 담아낸 불교영화이기도 한다. 주인공 네오(키아누리브스 분)는 메타코덱 쇼프트웨어 회사에 다니는 프로그래머이지만 밤에는 해커 네오로 활동한다. 그는 택배로 전달받은 휴대폰에서 지시한 대로 흰 토끼 문신을 한 여성이 이끄는 대로 클럽에 간다. 흰 토끼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여 모험의 길로 이끄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네오는 트리니티를 만나서 그가 곧 너를 찾을 것이라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매트릭스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받게된다. 모피어스는 찾아온 네오에게 ‘이상한 나라 앨리스’에 온 기분을 묻고 매트릭스에 대해 전한다. 매트릭스는 ‘네가 TV를 볼 때, 일하러 갈 때, 종교행사에 갈 때, 세금을 내러 갈 때에 거기에 있다’고 말한다. 모피어스는 여기서 중단할 파란 알약과 계속 위험한 모험을 수행할 빨간 알약을 선택하게 하고 네오는 빨간 알약을 삼킨다. 빨간 알약은 자유와 선택의 책임성 문제라는 철학적 화두를 은유한다. 피터 베키트는 ‘빨간 알약이라는 제도는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데 필요 조건인 반면 삶을 미리 써 놓은 대본처럼 만들어 버리는 파란 알약이라는 제도는 인간다움을 쇠퇴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철학적 해석을 내렸다. 
 

‘매트릭스’의 서사에서 빨간 알약은 신호 위치를 확인시켜주는 장치이며 네오는 이후 무술 운동 프로그램을 입력받고 수련에 임한다. 전사로 태어나기 위한 수행이 시작된 것이다. 모피어스는 네오를 예언자 오라클에게 데리고 간다. 대기실에 초능력자들이 예언자에게 메시아의 인증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그곳에 대기하고 있던 동승이 숟가락을 염력으로 휜다. 그는 네오에게 ‘숟가락은 없다 내 자신이 휘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마음의 문제를 전한다. 이 문답은 중국선사의 선문답 인용으로 여겨진다. 

휘날리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제자가 하문한다. “스승님, 움직이는 것은 나뭇잎입니까 아니면 바람입니까?” 스승이 답했다.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고 오직 마음뿐이다.” 

요원들에게 쫓기던 네오와 트리니티는 탈출하고 모피어스는 끝내 납치되어 요원의 아지트에 억류된다. 네오와 트리니티는 모피어스를 구하기 위해 요원의 아지트로 진입한다. 요원의 아지트로 진입하는 전투장면과 옥상의 결투 장면은 ‘매트릭스’ 결투 장면의 백미이며 원화평의 무술 감독의 무술액션의 진가를 보여준다. 벽을 발로 딛고 360도 회전하여 쿵푸로 공격하는 격투 장면과 90도로 몸을 누여 총알을 피하는 장면 등은 이후 액션영화의 결투 장면에 적극적으로 인용된다. 모피어스를 구하고 트리니티는 현실세계로 귀환하나 네오는 가상공간에 남아서 요원과 마지막 결투를 하게 된다. 네오는 총알을 맞고 쓰러지며 트리니티는 현실세계의 시스템 안에 누워있는 네오에게 사랑을 고백하면서 입을 맞춘다. 매트릭스에서 촉감을 통한 접촉이 불가능하지만 입맞춤을 통한 촉각과 마음의 전달로 가상공간의 네오는 다시 살아난다. 살아난 네오는 총알이 날아오는 것을 마음으로 중지시키고 무력화시킨다. 모피어스는 네오와 첫 만남에서 모든 감각기관이 마비되고 예속된 노예와 같은 삶과 마음의 감옥에서 살고있다고 말한다. 네오는 감각의 지배와 마음의 감옥에서 해방된다. 그는 본질에 대한 깨달음과 참나의 발견으로 감각의 지배에서 해방되고 모든 공포와 죽음의 위협으로 부터 자유로워진다. 그 원인은 트리니티의 입맞춤이다. 이는 할리우드 대중영화의 사랑의 힘에 대한 숭배 관습과 불교의 자비 그리고 기독교의 사랑이 하나로 모이는 지점이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516호 / 2019년 12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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