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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반야용선’ 닮은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끝)

기자명 김준희

고행 멈춘 고타마·청력 잃은 베토벤의 절망과 성취

가장 절망적인 순간 멈추기보다
성찰과 노력으로 성취 이뤄내
베토벤 생애 마지막 소나타에서
붓다가 이끄는 피안의 길 느껴

인도 아잔타석굴의 열반상.

흔히 우리는 역경을 딛고 목표를 성취한 한 인간의 위대함을 칭송한다. 더불어 끊임없는 내적인 욕구와의 투쟁에서 승리하는 그 과정에서 강한 인상을 받는다. 우리가 2500여년 전의 붓다, 또는 공자나 노자, 예수를 오늘날 여전히 말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성취한 결과물뿐만 아니라, 그들이 고난의 과정에서 타협하지 않았던 삶의 모습이 더욱 더 진한 감동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붓다의 삶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알 수 있다. 왕자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수행자의 삶을 택하는 순간, 고난의 길은 예견된 것이었다. 6년간의 긴 고행은 그의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 누구보다 처절한 고행을 감내했지만 그토록 염원하던 깨달음을 얻지 못했을 때, 그가 느꼈을 절망의 깊이는 엄청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절망 속에서 절규하는 대신, 차분하고 냉철하게 고행의 여정과 그동안의 삶의 궤적을 면밀하게 성찰하게 된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가장 차가워 질 수 있는 힘이 붓다를 깨달음의 길로 이끌었다. 이것이 붓다의 위대함이다.  

경전에서는 악마 마라의 등장으로 이 부분을 매우 드라마틱하게 묘사하고 있다. 욕계의 지배자이자 죽음의 신인 마라는 수행자 고타마 앞에 등장한다. 그리고 회유한다. ‘고행을 통하지 않고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가’ ‘만약 그대가 원한다면 세상의 지배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살아서 영화를 누려라’ 등 갖은 언변으로 유혹하며 때로는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깨달음에 근접한 수행자 고타마에게는 두려움도 나약함도 없었다.

음악가에게 청력은 생명과도 같다. 불멸의 작곡가 루드비히 반 베토벤이 청력을 잃어가며 느꼈을 절망 역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서른이 지나면서 청력이 점점 약해질 무렵, 젊은 베토벤은 진취적이고 당당한 음악을 추구했다. 우리가 흔히 악성 베토벤을 떠올릴 때 느껴지는 베토벤의 웅장함과 장대한 느낌을 담고 있는 ‘교향곡 제5번 C장조 Op.67’ ‘발트슈타인 소나타 Op.53’ ‘열정 소나타 Op.57’ 등이 이 시기의 작품들이다. 가혹한 운명에 맞서겠다는 젊은 베토벤의 의지가 작품 속에 녹아들어가 있다.

그가 청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작곡한 후반기 작품은 일종의 실험성을 담고 있었다. 또한 피아노라는 악기의 88개의 건반을 모두 사용하며 폭넓은 악상을 그려냈다. 

베토벤 소나타 Op.111 자필악보.

그의 마지막 소나타 C단조 Op.111을 들어본다. 첫 악장은 다른 앞의 두 작품(Op.109, Op.110)과 마찬가지로 느린 도입부를 가지고 있지만, 그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하강하는 감 7도 화음으로 시작되는 첫 두음은 무언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암시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며, 같은 c단조의 ‘비창 소나타(Op.13)’ 첫 악장과의 유사성으로도 종종 비교된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조금 더 비장하고 고통스러우며, 그것을 감내해 나갈 것이라는 각오마저 느껴진다. 마치 6년간의 고행과 절망에 놓인 수행자 고타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지속되는 그 엄숙한 분위기는, 단호하게 시작되는 대위법적인 주제로 연결되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바로크시대의 대표적인 작곡법인 ‘대위법’은 어느 한 성부에 주요 선율이 등장하는 고전시대의 작곡법과는 달리 각 성부가 동등한 중요성을 갖게 되는 형태이다. 서양음악의 정수라고도 일컬어지는 이 대위법적인 작곡법을 낭만주주의 시대를 눈앞에 둔 고전주의 시대의 마지막 무렵에 다시 꺼내 든 이유를 생각하며 고타마가 6년 동안의 정진에도 쉽게 얻을 수 없는 깨달음을 위해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반추해내는 과정에 비유해 본다.

이 주제는 첫 악장의 전체를 아우르는 중요한 요소로 시종일관 긴박감을 유지한다. 악마 마라와 마주한 수행자 고타마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비장함과 긴장감의 연속으로 돌풍과 같았던 악장의 마지막은 예상과는 반대로 짧은 코다와 함께 담담하게 마무리 된다. 이 열 세 마디의 코다는 바다의 물결을 묘사하는 듯한 16분음표의 패시지 위에 오른손의 정갈한 화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차안에서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는 반야용선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두 번째 악장은 1악장의 마지막 화음의 연장선상에서 느끼는 고요한 아리아와 같은 선율을 주제로 가진 다섯 개의 변주곡으로 이루어져있다. 일반적으로 고전 시대의 소나타는 빠른 첫 악장, 느리고 서정적인 두 번째 악장, 경쾌하고 사랑스러운 악장을 포함하여 장대한 마지막 악장까지 주로 3~4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에 반해, 이 곡은 단 두 악장 뿐이다. 1822년 이 곡이 출판되기까지 출판업자는 마지막 3악장을 보내달라고 계속 베토벤을 재촉하기까지 했다. 사라지듯 마무리되는 느린 악장으로 끝나는 이 소나타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낯설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정지한 것 같은 가운데 시작되는 주제와 첫 번째 변주는 첫 악장에서의 모든 고통과 비장함과는 전혀 무관하게, 혹은 그 모든 비장함과 고통스러움을 해결이라도 한 듯이 매우 평화롭게 유지된다. 두 번째 변주는 조금은 경쾌하고 가벼운 느낌의 산책하는 것 같은 선율로 이전 변주의 분위기를 이어간다. 세 번째 변주에서는 조금 다른 국면을 맞이하는데, 이 변주는 마치 깨달음의 서문을 알리는 듯하다. 이후의 변주에서는 그 어느 악장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왼손의 저음 5도의 반복 음형 위에 오른손 코드는 큰 악상의 변화 없이 이어나가며,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이룬 것 같은 끝맺음 하게 된다.
 

베토벤의 흉상.

이 마지막 소나타 이전의 작품에서도 베토벤은 다양한 장르적, 형식적 혁신을 보여주었지만, 특별히 이 곡에서는 모든 것이 총망라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베토벤의 시도와 실험은 수년간의 고타마의 고행과 깨달음을 추구, 그리고 입멸의 과정에 비유해 본다. 어떤 평론가는 이 두 악장을 각각 ‘물질의 세계와 정신의 세계’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러한 해석은 붓다가 깨달음을 추구해 가는 길고 긴 과정을 표현한 것으로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붓다는 그의 곁을 지키고자 모여든 제자들에게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라”는 마지막 말씀을 남겼다. 25년간 붓다를 모셨던 아난다 존자는 뜨겁게 흐느꼈다.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에서 붓다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차안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의 세계로 이끌어 가는 모습, 그리고 완전한 열반, 반열반(입멸)에 다다른 붓다를 느껴본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17호 / 2019년 12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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