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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끝은 다시 시작을 부르고  ② - 동은 스님

기자명 동은 스님

“시작을 두려워 말라 삶은 또 그렇게 시작되느니”

어제의 인연으로 오늘 살고
오늘 지은 공덕 다시 내일로  
우리는 인연 과보 받으면서 
동시에 씨앗 뿌리고 가꾸어
산다는건 매순간 끝이고 시작 
오직 지금 순간만 존재할 뿐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삶이 끝난 듯했다. 더 이상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막다른 길에서 벽을 뒤에 두고 무섭게 쫓아오던 ‘운명’이란 놈에게 소리쳤다. 

“야! 덤벼.” 

멈추면 잡힐 것 같아서 잡히면 죽을 것 같아서 앞만 보고 달렸는데 문득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니 열심히 따라오던 운명이란 놈도 멈칫 놀라 섰다. 죽음이란 끝자락에서 삶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나니 출가수행이란 또 다른 시작이 앞에 펼쳐졌다. 

전생의 인연인가 했다. 낯선 절집생활이 차츰 적응되어 가고 마치 오랫동안 해왔던 일처럼 익숙한 나의 모습에 ‘이곳이 바로 내가 살 곳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을 곧 끝낼 것 같았던 두려움의 실체는 막상 그 끝자리에서 넘어져 이마가 깨진 후에야 알게 되었다. 떨어지면 그것으로 끝나는 줄 알고 목숨처럼 밧줄을 붙들고 있었는데 탁 놓고 나니 어머니 품 같은 대지가 나를 받쳐주고 있었던 것이다. 아픔은 견딜만했다. 종기는 터져야 새 살이 돋는 법. 툭툭 털고 일어났다. 오대산 월정사 부처님께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시작’이란 선물을 주셨다. 보조국사는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서라’고 하셨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고 홧김에 그 돌을 차 봤자 발만 아프다. 넘어진 그 자리에서 그 돌을 의지해 다시 일어서야 한다. 

시내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던 소설가 선생님께서 퇴직을 앞두고 차 한 잔 하러 오셨다. 당신의 살아오신 삶을 담담하게 이야기하시더니 이제 다시 인생을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걸어서 전국 해안도로 일주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박수를 치며 격려했다. “제가 도보로 전국일주 한다고 하니 모두 말렸는데 스님 한 분만 지지를 해주시네요. 고맙습니다”하며 좋아하셨다. 이 분이야말로 인생 2막을 제대로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신 듯 했다. 은퇴는 영어로 ‘Retire’라고 한다. 타이어를 새로 갈아 끼운다는 의미다. 고단한 인생길을 달려오면서 닳고 닳은 타이어를 다시 바꿔 끼우고 새롭게 출발하라는 것이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가끔 추억을 소환시키는 초등학교 졸업식노래를 듣는다. 까마득한 시간이 흘렀다.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이별의 슬픔에 졸업식 노래도 제대로 부르지 못하고 훌쩍였는데 이젠 친구들 얼굴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중학교에 가는 것이 뭐라고···. 졸업은 곧 입학으로 이어지고 또 다시 졸업과 입학이다. 졸업식을 보통 ‘Graduation’이라고 하지만 ‘Commencement’라고도 한다. ‘시작, 처음’이라는 뜻이다. 졸업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끝과 시작을 반복하면서 아이는 어른이 되고 또 그렇게 늙어간다. 

젊은 날, 서울에서 ‘월간 해인’지의 편집장을 맡아 수도승(首都僧) 노릇을 한 적이 있었다. 깜냥도 안 되었지만 그 달치 원고 마감과 무섭게 다음 달 주제선정과 필자 섭외, 원고 청탁까지 도대체 쉴 시간이 없었다.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월간지도 이 정도인데 매일 찍어내는 신문사는 도대체 어떨까 싶었다. 어느 날 문득 이렇게 하다가는 내가 지쳐 일을 더 이상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시작도 끝도 없이 돌아가는 삶이지만 한 걸음, 한 호흡씩 쉬어가며 정리할 마디가 필요했다. 그래서 꾀를 냈다. ‘끝냄’과 ‘시작’을 구분지어 줄 나름의 방법을 찾았다. 편집실에 마감 원고를 넘기고 나면 바로 서해바다를 보러 갔다. 일이 일찍 끝났을 때는 강화 보문사까지 갔다. 그 곳에서 노을을 보며 차 한 잔을 해야 비로소 한 호흡이 끝난 것이었다. 들이쉰 숨 내쉬지 못하면 죽는다. ‘인생호흡’의 시작과 끝나는 마디를 놓치면 안 된다. 대나무도 마디가 촘촘해야 튼튼하다. 살을 에는 찬바람과 영혼을 뒤흔드는 상처들이 결국 내 인생을 넉넉하게 해주는 마디가 된다. 

불교의 여러 가르침 가운데 윤회사상이 있다. 살아가면서 지은 선악의 정도에 따라 다음 생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인(因)이 곧 연(緣)이 되고 연이 다시 인이 된다. 윤회라는 것이 별건가?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락(苦樂)을 반복하다가 여기에서 인연이 다하면 다른 인연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어제의 인연으로 오늘을 살고, 오늘 지은 공덕이 내일로 연결된다. 인연과보를 지금 받으면서 동시에 씨앗을 심고 있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매 순간 끝이면서 시작이니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대 지금, 삶이 힘들고 고단하신가?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서 절망하고 있진 않으신가? 절망의 끝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지 말라. 마주 오는 역풍도 돌아서면 순풍이다. 저녁노을이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지만 아침노을은 더욱 찬란하다. 눈서리를 견딘 매화향기가 코를 찌르듯이, 삶의 간난(艱難)이란 마디가 하나씩 늘어 날 때마다 ‘그대’라는 꽃은 더욱 향기롭게 피어날 것이다. 꽃이 진다고 설워마라. 꽃이 져야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떨어져야 다시 새싹이 돋는다. 

티베트 속담에 ‘걱정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할 일이 없겠네’라는 말이 있다. 처음 이 연재를 제의 받았을 땐 자신이 없어 거절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주제를 미리 받아쓰는 것이 내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연이란 묘하다. 때론 발을 뺄 수가 없다. 난 살아가면서 주어지는 일들을 부처님 일이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였다. 그렇게 어설프게 시작한 연재가 드디어 이번이 마지막이다. 걱정하는 마음이 앞서 연재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끝낼 일도 없었을 것이다. 시작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삶은 또 그렇게 흘러간다. 

이제 곧 이 해가 저물고 새해가 온다. 묵은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라는 게송은 큰스님들께서 하는 말씀이다. 어쨌거나 그래도 새해는 새해다. 달력을 새로 걸지 않았는가? 새해가 시작되면 머지않아 꽃피는 봄도 올 거다. 살아가면서 참 듣기 좋은 말 몇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다시 시작’이다. 절망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아픔의 끝에서 절망하는 이와 망설이다 내딛는 서투른 걸음의 당신에게 이 아침, 따뜻한 차 한 잔 건넨다. 그렇게 다시 시작이다.

동은 스님 삼척 천은사 주지 dosol33@hanmail.net

 

[1518 / 2019년 12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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