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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소임자 스님들 ‘한국 간화선 정체성을 묻다’

  • 교계
  • 입력 2019.12.26 21:01
  • 수정 2019.12.27 09:51
  • 호수 1519
  • 댓글 10

가야산 해인사 첫 ‘담선 차담’
소임자 스님 등 10여명 참여
주지 현응스님 제안으로 마련

선원장·학장스님이 주로 대화
민감한 주제도 격의 없이 토론
“해인사 변화시킬 씨앗 되길”

12월21일 해인사 주지스님을 비롯해 선원장, 승가대학장, 총무국장, 기획국장, 교무국장 스님 등 10여명이 법계당에 모여 수행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12월21일 해인사 주지스님을 비롯해 선원장, 승가대학장, 총무국장, 기획국장, 교무국장 스님 등 10여명이 법계당에 모여 수행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12월21일 오후 6시30분, 가야산 해인사 법계당에서 이색적인 차담이 열렸다. 소임자 스님들이 차를 마시며 선을 주제로 의견을 나누는 담선(談禪)의 자리였다. 교구본사에서 다양한 직무를 맡고 있는 스님들이 모여 업무가 아닌 수행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흔한 풍경은 아니다. 근래 해인사가 예불·사시기도·천도재 등 의식을 모두 한글화하고, 매월 대적광전에서 산내 암자 스님들까지 동참해 한글 경전을 함께 독송하는 ‘팔만대장경 읽기 법회’를 여는 등 법보종찰 해인사의 새로운 변화와 맞닿아있는 듯했다.

이번 ‘담선(談禪) 차담’도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며칠 전 몇몇 스님들이 저녁공양 때 나왔던 선에 대한 얘기를 진전시키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고 곧바로 차담 날짜를 잡았다.

저녁예불을 마치고 법계당에 모인 스님들은 현응 스님을 비롯해 선원장 효담, 승가대학장 무애, 총무국장 진각, 율원장 겸 기획국장 서봉, 교무국장 일엄 스님이었다. 여기에 승가대학 학인 현사·혜륜·성일 스님도 학장스님의 권유로 참여했다.

‘차담’이라 이름 붙인 소박한 자리였지만 참석자 면면의 안목은 예사롭지 않았다. 현응 스님은 10여년간 조계종 교육원장을 맡아 전통에 갇혀있던 승가교육을 대대적으로 혁신함으로써 한국불교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한 당사자이며, 선원장 효담 스님은 해인사 승가대학을 졸업한 뒤 봉암사, 각화사, 동화사, 통도사, 범어사 등 제방 선원에서 정진했던 중진 수좌다. 승가대학장 무애 스님도 선과 교에 대한 혜안을 두루 갖췄다. 중국불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스님은 전통과 현대의 학문을 아우르며 해인총림 학인들을 이끌고 있다. 진각, 서봉, 일엄 스님도 선승의 길을 걸었기에 선에 대한 견해는 분명했다.

진행을 맡은 현응 스님은 “이 자리는 찬반이나 우열, 옳고 그름을 다투는 게 아니라 다양한 관점을 드러내 불교와 선을 보다 풍성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말로 차담을 시작했다. 효담 스님과 무애 스님을 중심으로 선·간화선·깨달음을 각각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선수행에는 교리나 지식의 습득을 전제하는지, 선적인 깨달음은 윤리적 삶을 살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선수행을 통한 깨달음은 어느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며, 사회의 개선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지 등을 두고 다양한 대화가 오갔다.

효담 스님과 무애 스님의 견해는 때때로 같은 방향을 직시했지만 견해 차이가 더 두드러졌다. 효담 스님은 선의 본령을 당송시대에 두었기에 남송시대 대혜 스님이 창안한 간화선에는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반면 무애 스님은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행해지는 간화선을 긍정하고 그 속에서 가치를 찾아내려는 입장이었다.

해인사 선원장 효담 스님
해인사 선원장 효담 스님

선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먼저 밝힌 것은 효담 스님으로 “선이란 절대 진리의 다른 표현”이라고 했다. 스님에 따르면 인간은 직립보행하면서 성대를 이용해 언어를 만들고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개념으로 구성된 언어는 인간의 의식을 속박했다. 어부가 고기를 잡으려 그물을 던졌는데 자기가 뒤집어 써버리고 갇혀버린 꼴이다. 선은 생각 이전의 자리를 드러냄으로써 그물을 벗어던지고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효담 스님은 간화선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이어갔다. 당송시대 선은 스승이 직지인심하면 제자는 견성성불 했다. 생각 이전의 자리를 수행절차 없이 곧바로 드러내면 될 뿐이었다. 그런데 선의 쇠퇴기에 이르러 만들어진 간화선은 생각을 못하도록 갑갑하게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조사와 선사들의 문답을 살펴보게 함으로써 생각이라는 분별심을 옴짝달싹 못하게 했고, 이를 통해 생각 이전의 자리에 들게 하려했다. 대혜 간화선은 그나마 조사선에 닿아 있지만 이후 무문혜개, 고봉원묘에 이르러서 간화가 ‘의심’으로 바뀌고 원나라 몽산덕이에 이르러서는 ‘어째서 무라 했는가’를 참구하라는 것처럼 억지로 의심을 만들라고 했다. 조사선과는 대단히 멀어졌다. 우리 한국선은 대혜의 간화선이 아니라 의심을 만들어내라는 몽산선이다. 효담 스님이 자신은 물론 선방에서 만난 숱한 스님들 중에서 ‘의심이 탁하고 걸린’ 경우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도 몽산선과 조사선의 차이에서 왔다는 것이다.

해인사 승가대학장 무애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장 무애 스님

이에 대해 무애 스님은 선도 무상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세상 모든 것이 변하듯 선은 시대에 따라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이고 화두를 살피거나 의심을 일으키는 간화선도 시대의 변화 속에서 탄생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예전에 자신이 (황대선원 조실) 성수 스님을 모시고 선원에서 살 때 성수 스님께서 후학들을 이끌었던 것에서나 최근 안국선원 수불 스님이 재가불자들에게 선을 지도하는 모습에서 한국 간화선은 여전히 사람들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지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무애 스님은 경전과 어록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안목이 열리지 않으면 경전과 선어록을 보아도 한자공부에 그치기 쉽다는 효담 스님과 달리 ‘치문’에서 ‘화엄’에 이르기까지 두루 익혀야 정견이 바로 설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밖에 효담 스님은 억지로 의심을 일으키려는 간화선보다 조사선을 토대로 스스로를 비춰보는 반조선이 더 효과적이라고 보았으며, 무애 스님은 오늘날 간화선의 효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능엄신주와 108배 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선이 감정에 휩쓸리거나 개인주의에 매몰되지 않게 함으로써 개인은 물론 사회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이날 차담에서는 두 스님 외에도 참석자들의 질문과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오등선원 조실 대원 스님 상좌로 참선수행을 지속하고 있는 기획국장 서봉 스님은 “8세기 말 티베트 삼예에서 벌어졌던 중국선과 인도불교의 논쟁에서 선이 완패했던 사실을 기억함으로써 오늘날 선도 현대에 맞게 부단한 재해석과 체계화가 시급하며, 선의 황금기에 그랬듯 수행자들을 점검하고 이끌어줄 스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총무국장 진각 스님은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가 대학만 졸업하고도 나라를 이끄는 것처럼 선방 수행도 4년이면 충분하다”며 “선방에 오래 다녀도 부처님 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남을 가르치지 못하고 남을 이롭게 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라고 반문했다.

오후 6시30분 시작한 담선 차담은 대중들의 호응과 열의 속에 이어졌고 9시30분이 되자 현응 스님이 마무리 지었다. 현응 스님은 “선이나 불교에 대한 관점은 스님들 숫자만큼 많고 편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오늘 차담을 통해 자기를 돌아보고 평소 생각을 가다듬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며 “여기 계신 스님들은 개인적인 공부도 깊지만 해인총림에서 특별한 직무를 맡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논의가 해인사, 나아가 한국불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씨앗이 되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스님은 이어 “앞으로도 불교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논의하고 토론하고 문답하는 자리를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합천=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519호 / 2020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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