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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특집] 사찰 안으로 들어온 현대미술

  • 새해특집
  • 입력 2020.01.02 16:00
  • 수정 2020.01.02 16:10
  • 호수 1519
  • 댓글 0

시대 변화·트렌드 발맞춰 후대에 전할 새 불교문화를 일구다

아이돌 이미지 전등사 무설전 보살상
스테인리스로 조성한 조계사 사천왕
전통 불교문화 새로운 소재로 재해석
서울 길상사 현대불교미술 가능성 제시
불교문화 개발 위한 사찰 갤러리 증가

한국불교의 전통 위에 현대미술을 접목시켜 새 문화를 일궈가는 사찰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해 걸그룹 이미지로 조성된 강화 전등사 무설전 보현보살상.

한국불교의 역사는 곧 우리 민족의 역사다. 1700년을 이어온 한국불교에는 불교사상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와 문화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선조들은 최고의 정성과 시대정신, 그리고 창의성을 바탕으로 후대에 전할 빛나는 불교문화를 일구었다. 이 같은 전통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1700년 역사에 새로움을 더해 찬란히 빛날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옛 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을 잃지 않는다는 뜻 그대로다. 한국불교의 전통 위에 현대미술을 접목해 새 문화를 만드는 사찰이 늘고 있다.

▶전통에 새 옷을 입히다=강화도 정족산 기슭에 있는 전등사는 현존하는 한국 사찰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다. 기록에 따르면 전등사는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에 창건됐는데,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때가 372년이다. 오랜 역사와 수많은 문화재를 가진 전등사가 2011년 건립된 ‘무설전’을 통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상은 인체의 비례를 반영해 조성한 불보살들이다. 광화문 세종대왕상을 제작한 김영원 작가가 주불인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지장·보현·문수·관세음보살상에 현대적 예술미를 가미하고 개금(改金)이 아닌 폴리우레탄을 사용해 밝고 맑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특히 젊은 세대도 거부감 없이 친근히 다가올 수 있도록 문수보살에 아이돌 이미지를, 보현보살에 걸그룹 이미지를 담아내는 등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했다. 법당 내부를 장엄하는 탱화 역시 전통 방식을 탈피해 프레스코 벽화기법으로 제작했다. 이와 함께 법당 회랑을 미술전시관으로 활용, 전등사 소장 현대미술 작품 150여점을 순환 전시하는 등 고즈넉한 산사에서 만나는 현대미술이라는 극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대한불교조계종총본산 조계사에서도 현대미술을 접목시킨 새로운 전통을 만날 수 있다. 우선 조계사의 입구를 지키는 사천왕상이다. 조계사는 목조각 상이 대부분인 기존의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사천왕상을 조성했다. 일주문 네 기둥에 각각 조성된 사천왕상은 6mm 두께의 스테인리스 강판을 여러 겹 덧붙이는 방식으로 완성됐다. 사천왕상 한 위는 총 24겹, 800여개의 스테인리스 조각이 사용됐으며, 무게가 1톤에 달한다.

관음전 외벽에는 금속판을 선형으로 가공해 부조로 조성한 양류관세음보살상이 있다. 관세음보살상 주변 초록색 버드나무가지는 ‘바람에 흔들리는 중생의 번뇌’를, 관세음보살이 들고 있는 감로수병은 ‘중생의 번뇌를 식혀 고통에서 구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또 관음전 내부에는 서칠교 작가가 진흙을 사용해 섬세하게 빚은 33분의 관세음보살 소조가 현대 설치미술을 보는 듯 탱화를 대신해 자리했다.

해인사 선문화체험관 선림원도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선림원 중앙에 모신 본존불은 불상이 아닌 수행자의 모습에 가깝다. 외국인은 물론 이웃종교인도 찾는 공간적 특징을 고려해 원인종 작가가 2년여에 걸쳐 고심한 결과물이다.
 

서울 정각사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미래탑’.
전등사는 무설전 회랑을 미술전시관으로 활용, 고즈넉한 산사에서 만나는 현대미술이라는 극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서울 관악산 길상사 마당을 장엄한 도자편 모자이크 벽화.

▶전통이란 고정관념을 깨다=서울 관악산 자락에 위치한 길상사는 최근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조성되는 사찰들의 모델로 일컬어지는 곳이다. 사찰이 관악산 남쪽 비탈길 따라 늘어선 빌라촌 맨 위 3층 건물인 까닭에 ‘길상’ 라는 현판마저 없으면 영락없이 빌라촌 구성원 중 하나다. 도자기로 빚은 물고기[도어(陶漁)]가 입을 벌리고 있는 우편함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면 도자기 조각이 모자이크처럼 박힌 벽화가 참배객을 맞이한다. 벽화는 미륵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4그루의 보리수나무와 석탑이 구름 위에 둥실 떠 있다. 변승훈 작가의 작품으로 4그루의 나무는 생로병사·고집멸도를 상징한다. 건물로 들어서는 철문은 보리수 나뭇잎과 ‘卍’자를 형상화 한 불이문이다. 불이문을 지나 3층 법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해탈교이고, 계단 이곳저곳에 물고기가 새겨진 전돌을 깔아 그 의미를 담아냈다. 2층 공간에는 목어가 헤엄치고, 3층 법당 입구에는 가루다가 날고 있다.

법당은 흰색과 가사색을 사용해 조화롭게 구성했다. 중앙에는 채도를 달리한 흰색 도자편을 이용해 수미산을 표현했고, 그 앞 상단에는 삼매에 든 15분의 부처님이 좌정해 있다. 불단 옆 좌우 눈높이에는 비천상 조각을 배치해 참배객의 시선을 불단으로 집중시킨다. 신중단과 영가단 탱화마저 전체적인 법당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도록 가사색 바탕에 금색 선만을 사용해 조성했다. 다만 불단 위 천장은 하늘색 유리를 통해 자연 채광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답답함을 지우고 따뜻함을 더했다. 전통사찰의 가람 배치와 의미를 3층 건물에 현대적 감각으로 빠짐없이 녹여낸 셈이다.

서울 정각사 대웅전 앞마당에는 직육면체 형태의 대형 유리 구조물이 서 있다. 정각사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미래탑’이다. 가로·세로 2.4m, 높이 5.1m의 미래탑 외벽은 투명한 유리인데 중간에 금속으로 층을 만들고 꼭대기엔 지붕을 씌웠다. 유리벽 안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납작한 불상 455분이 층층이 봉안돼 있다. 불상은 똑같은 형태가 하나도 없다. 두툼한 철판을 잘라 만든 불상의 배와 등엔 금·은·동 등으로 온갖 문양을 새겨 넣었다. 유리로 된 벽에는 내부와 외부가 수없이 교차해 비친다. 우주만유 일체의 사물이 서로 무한한 관계를 가지고 얽히고설켜 일체화되는 중중무진(重重無盡)의 표현이다. 탑의 밑바닥엔 촛불을 켜놓은 듯 광섬유 2028개가 24시간 불을 밝히고 있다.

고양 금륜사는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불화로 사찰을 장엄했다. 1층 법당 전체를 장엄한 탱화는 부처님이 수화로 ‘법구경’을 설하는 모습이다. 수화하는 부처님 불화가 금륜사 탱화로 모셔진 데는 주지 본각 스님의 법보신문 연재가 계기가 됐다. 본각 스님은 2008년부터 100회에 걸쳐 본지에 ‘세상의 부처와 진리의 말씀-천불만다라’라는 주제로 ‘법구경 강설’을 연재했고, 이때 이호신 화백이 그 내용을 수화로 설하는 부처님 그림 10컷으로 정리해 함께 실었다. 이렇게 조성된 천불이 금륜사에 안치돼 법당을 장엄하는 한편, 청각장애인들에게 수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조계사 스테인리스 사천왕상 중 광목천왕.
부처님이 수화로 ‘법구경’을 설하는 모습으로 장엄된 고양 금륜사.
김해 동림선원 갤러리 전경.

▶불교미술 미래를 준비하다=최근 불교계에는 새로운 불교문화의 개발과 대중화를 위해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기성 작가들에게 활동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갤러리 등 별도의 공간을 운영하는 사찰들도 증가하고 있다. 송광사 서울분원 법련사가 원조격이다. 법련사는 1996년 개산 당시부터 불교전문 전시공간인 불일미술관을 열어 불교관련 전시뿐 아니라 다양한 전통·현대 미술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2006년 서울 홍은동에 문을 연 비로자나국제선원도 건물 1층에 갤러리 까루나를 운영하고 있다. 갤러리 까루나는 불자예술인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이를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창구로서 역할을 수행 중이다. 특히 신진작가들을 중심으로 불교회화는 물론 카툰, 설치미술 등 다양한 실험적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스테인드글라스 ‘수월관음도’, 현대서양화 ‘반야심경도’ 등 차별화된 구성으로 널리 알려진 광주 무각사도 로터스갤러리를 통해 지역 불교와 예술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밖에 부산 쿠무다, 부산 여래선원, 김해 동림선원도 사찰 내에 북카페 겸 갤러리를 운영하며 전시회뿐 아니라 작가를 초대해 불교미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강좌를 열고 있다.

불교계의 최근 이 같은 시도에 대해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불교미술은 깨달음과 아름다움이라는 양자의 조화를 담아내야 한다”며 “부처님 가르침도 예술이라는 그릇에 담아 전달하면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고, 그 전제 조건은 시대의 언어, 시대의 감각으로 조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관장은 이어 “앞서 소개된 사찰들의 공통점은 후대에 전할 이 시대의 문화를 개발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실천으로 옮긴 것”이라며 “과거의 문화만을 좇던 관습에서 벗어나 우리 시대의 정신을 담아낼 때 현재의 불교도 새롭게 거듭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519호 / 2020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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