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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재를 시작하며

스승과 제자 선문답 집성한 ‘공안집’

문학작품 취급도 받았지만
깨침 관련한 상징들 총망라
스승‧제자의 의기투합으로
‘선’ 지평 탄탄히 다지기도

여기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선문답은 ‘공곡집(空谷集)’에 수록된 내용이다. ‘공곡집’은 일찍이 중국 조동종의 제7대 조사인 투자의청(投子義靑)이 고인의 문답 가운데 100칙[古則]을 선별하여 송(頌)을 붙였고, 거기에 제9대 조사인 단하자순(丹霞子淳)이 문답의 대의[示衆]와 간략한 코멘트[著語]를 가하였으며, 다시 제15대 조사인 임천종륜(林泉從倫)이 자세한 설명[評唱]을 곁들여 찬술한 공안집이기 때문에 세 사람에 의해 성립된 선문헌이다. ‘공곡집’의 본래 명칭은 ‘임천노인평창투자청화상송고공곡집(林泉老人評唱投子靑和尙頌古空谷集)’으로 원(元)나라 지원 22년(1285)에 간행되었다.

투자의청(投子義靑, 1032~1083)은 산동성 청주(靑州) 출신으로 이(李)씨이다. 7세에 출가하고, 15세에 득도하였다. 교학을 공부하고, 성암사(聖巖寺)의 부산법원(浮山法遠, 圓鑑)에게 참하였는데, 특히 ‘화엄경’의 교의에 뛰어났기 때문에 청화엄(靑華嚴)이라 불렸다. 부산법원은 임제종에 속하는 선사였는데, 조동종에 속하는 대양경현(大陽警玄)이 후계자가 없이 입적하였기 때문에 대양경현의 유촉을 받고 자신의 제자였던 투자의청으로 하여금 대양경현의 후계자가 되도록 하였다. 이로써 투자의청은 대양경현의 진영인 정상(頂相)과 가죽신발[皮履]과 법의(法衣)인 직철(直綴)을 대부(代付)하여 조동종의 제7대 조사가 되었다.

단하자순(丹霞子淳, 1064~1117)은 사천성 검주(劍州) 출신으로 가(賈)씨다. 27세 구족계를 받고 진여모철(眞如慕喆)·진정극문(眞淨克文)·대홍보은(大洪報恩) 등에게 참하고, 대양산(大陽山)의 부용도해(芙蓉道楷)의 법을 이었다. 이후 단하산 등에 주석하면서 조동선풍을 진작하였다.

임천종륜(林泉從倫)은 행적이 분명치 않은데 만송행수(萬松行秀, 1166~1246)의 법을 계승하고 만수사(萬壽寺)에서 출세하였다. 원나라 세조 9년(1268)에 황제에게 선법과 ‘도서(都序)’의 가르침을 설하였다.

선종의 특수한 문헌이 공안집에서 고인의 문답에 해당하는 고칙(古則)은 본칙(本則)이라고도 하는데 선문답의 핵심이다. 송(頌)은 고칙에 대하여 그 내용을 상징하는 운문형태의 시를 말한다. 시중(示衆)은 고칙의 대의에 해당하는 것으로 문답의 내용을 암시하는 짤막한 설명이다. 착어(著語)는 고칙 및 송(頌)의 각 문구에 붙이는 촌철살인과 같은 간략한 주석이다. 평창(評唱)은 고칙의 내용 및 그 배경과 관련된 자세한 해설이다. 이처럼 공안집은 그 형식으로 보면 시중과 고칙과 송과 착어와 평창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같은 공안집은 선문답을 집대성한 것이다. 선이 발전함에 따라 공안집도 수많은 종류와 다양한 형태 및 내용을 담게 되어 후대에는 일종의 문학작품으로 취급되기조차 하였다. 그만큼 공안집에는 깨침과 수행에 대한 비유와 상징 및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는 뛰어난 수완과 방식 등이 총망라되어 있다. 이로써 선문답은 선의 특징이기도 하고, 선을 특징 짓게도 하며, 선을 체험하고, 선을 체험하게 하며, 선을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유지시키고, 선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단순한 의미 이외에 보다 중요한 요소가 깃들어 있다. 그것은 선문답을 통하여 스승과 제자가 의기투합되기도 하고, 선문답을 통하여 선이 그 지평을 넓히고 저변을 탄탄하게 해 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선이 있는 곳에 선문답이 있다고 말하기보다도 오히려 선문답이 있는 곳에 선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이다. 왜냐하면 선문답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발생된 시대에는 언제나 선이 활발하게 발달하였을 뿐만 아니라, 선문답이 사라지고 논의되지 못했던 시대에는 언제나 선이 쇠퇴의 길을 걸었던 역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문답은 선의 발달과 특징을 동시에 보여주는 하나의 표준이 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선문답은 선에 대한 문답이 아니라 선의 문답이다.

김호귀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19호 / 2020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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