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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도선언에 담긴 교화방식

지혜 갖추면 참다운 이익·행복 얻어

많은 이들 이익과 행복위한 삶
붓다 교화목적, 제자들에 권해
지혜로서 욕망 속성 통찰하고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지도

역사에 기록된 붓다의 일생은 29세에 출가하여, 35세에 깨달음[無上正等覺]을 얻고, 8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槃涅槃]. 45년의 세월을 붓다는 교화의 삶을 산 것이다. 그렇다면 교화의 총론이 담긴 가르침이 있을 법하다. 바로 그 유명한 ‘전도선언’이다. 전도선언은 초전법륜, 즉 최초의 설법 당시 5명의 비구, 그리고 야사를 비롯한 53명의 그의 친구들이 모두 ‘아라한’이 된 후 붓다가 선포한 가르침이다. 그 내용은 ‘율장 대품(Vinaya, Mahāvagga)’에 실려 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많은 사람들의 행복과 이익을 위하여, 세상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갖고서, 천신과 사람들의 행복과 이익을 위하여 전도하라. 두 사람이 한 곳으로 가지 마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중간도 마지막도 좋은 의미와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라. 온전하고 청정한 범행[梵行, 도덕적 행위]을 알게 하라. 더러움을 적게 타고난 중생들이 있다. 법에 대해서 듣지 못한 자들도 있다. 그들이 법을 듣지 않으면 퇴보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법에 대해 듣게 되면 지혜를 갖춘 자가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나도 법을 설하기 위해서 우루엘라의 장군촌으로 갈 것이다.”

이 전도선언을 통해 붓다는 교화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많은 이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붓다는 그 스스로 교화의 삶을 산 것이고, 제자들에게 또한 그러한 삶을 권한 것이다. 교화의 방법은 ‘좋은 의미와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는 것’과 ‘온전하고 청정한 도덕적 삶의 실천’이다. 전자는 좋은 의미를 논리를 갖추어 말을 하라는 것이고, 후자는 언행의 일치를 통해 완벽한 도덕적 삶을 구현할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익과 행복’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는 누구나 나름의 기준에 따라 이익을 도모하며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그것은 보통 돈, 명예, 쾌락 등을 내용으로 한다. 그래서 이것들을 갖지 못하는 것을 불행한 삶이며, 이익이 없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붓다는 ‘감각적 욕망의 경(Kāmasutta)’에서 이렇게 설하고 계신다.

“감각적 쾌락을 원하는 자, 그에게 만약 이것이 충족되면, 원하는 것을 얻어서 그 사람은 참으로 기뻐합니다.(Sn.766)” “만약 그가 감각적 욕망의 길에 들어설 때, 욕망이 일어난 사람에게 그 감각적 욕망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화살에 맞은 자처럼 괴로워합니다.(Sn.767)”

욕망이 충족되는 것을 행복이라고 하고 그 반대를 불행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행복보다는 불행을 맛볼 확률이 훨씬 크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만족할만한 욕망이 충족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욕망이 충족된다고 해도 그 만족감은 너무나 일시적일 뿐이다. 그래서 붓다는 이를 이렇게 설하고 계신다.

“황금산의 황금 모두가 두 배나 세 배가 되어도 한 사람에게조차 충분치 않네. 이렇게 알고 바르게 살아야 하리라.”(‘상윳따 니까야’1, ‘통치의 경(Rajjasutta)’)

그렇기에 붓다가 ‘전도선언’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익과 행복은 ‘지혜를 갖춘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는 욕망을 추구하는 삶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욕망을 추구하는 것과 지혜를 갖춘다는 것은 서로 다른 영역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척 흉내 낼 수는 있어도, 결코 지혜를 얻지는 못하는 것이다. 지혜를 갖춘다는 것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올바른 앎[正見]을 통해 욕망의 속성을 꿰뚫어 보고, 그 예속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을 의미한다. 

경전에서 만나게 되는 붓다의 가르침은 바로 이 점으로 귀결된다. 결국 붓다의 교화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참된 모습을 알려주고, 스스로 분명히 깨닫아, 욕망에 예속된 삶을 버리고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대자비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붓다의 전도선언은 이후 45년간의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온전히 드러낸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20호 / 2020년 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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