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서라벌에 계시다
2. 서라벌에 계시다
  • 현진 스님
  • 승인 2020.01.14 10:27
  • 호수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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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가장 많이 설법한 ‘싀라와스띠’서 차용

부처님 1400회 설법 가운데
싀라와스띠서만 900회 설법
신라인 ‘복된 땅’이란 의미로 
자신들 수도를 ‘서라벌’ 명명

빠알리 경전에 근거한 부처님의 총 설법 횟수는 거의 1400회에 이른다. 나라별로 따지면 모두 16국이 되는데, 그 가운데 꼬살라국이 1000회에 이를 정도로 압도적이고, 꼬살라국 안에서도 싀라와스띠에서 설하신 횟수가 900회를 살짝 상회할 정도로 또한 압도적이다. 어림잡아 세 번 가운데 두 번의 설법이 싀라와스띠에서 이뤄진 셈인데, 그래서 신라인들은 자신들이 건국한 나라의 수도가 그 땅처럼 복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이름을 빌려와 ‘서라벌’이라 일컫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의 ‘서울’이란 이름도 서라벌에서 왔다고 하니, 신라인들의 불심은 그렇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인도의 서라벌, 특히 그 곳에 위치한 기원정사는 단지 부처님께서 설법을 많이 하신 장소일 뿐만 아니라 당신의 말년 20여년을 안정되게 머무시며 중부(中部)와 상응부(相應部) 니까야의 절반 이상을 설하시고 또한 그 가르침을 손수 정리하신 명실상부한 불국토(佛國土)이다. 대승경전 또한 이러한 니까야에 근거한 것이기에 “대부분의 대승경전이 그곳에서 설해졌다”는 표현이 그저 과장된 표현만은 아니라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경전의 첫머리엔 거의 “세존께서 서라벌에 계시며…”라는 문구가 등장하는데, 한문으로 재(在) 혹은 주(住)로 옮겨진 ‘계시다’는 말의 산스끄리뜨어는 동사 ‘viharati’이다. 단순히 머물다 혹은 살아가다는 의미로 쓰이는 평범한 단어이지만 어원을 따져보면 ‘잘(vi­) 이끌다(√hṛ)’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말이다. 세존께선 당신의 말년 20여년 동안 많은 대중을 잘 이끄시며 가르침을 펼침은 물론, 더욱이 뒤 이어올 후학들을 위해 그 가르침을 다듬고 다듬으셨으니, 우리가 성인이라 일컫는 분들 가운데 당신의 손으로 당신의 가르침을 직접 다듬으신 유일한 분이다. 그래서 싀라바스티, 즉 서라벌은 복된 땅이다.

우리는 구구단을 외우도록 가르치지만 인도는 무려 19x19단을 가르친다. 그래서 인도가 수학이 뛰어나단 말이 있는데, 19x19=361! 과연 구구단처럼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써먹히기나 할까? 실용적이 못 되더라도 아라비아 숫자의 원조국으로서 부리는 자존심의 흔적일까? 아무튼 숫자에 대한 인도인들의 특이함은 ‘금강경’에도 그 흔적이 있다. ‘비구중천이백오십인(比丘衆千二百五十人)’의 산스끄리뜨어 원문 ‘ardhatrayoda śabhirbhikṣuśataiḥ’를 글자 그대로 옮겨보면 ‘절반이 부족한 13의 곱인 비구 100인’이 된다. 여기서 절반은 하나의 반절인 0.5를 말하므로 절반이 부족한 13은 12.5가 되고, 그것에 100을 곱하면 1250이 되는 것이다. ‘금강경’은 아무래도 손길이 많이 갔을 경전이니 당연히 숫자 하나라도 문학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 그리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산스끄리뜨어로 숫자를 서술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산스끄리뜨어로의 제시는 생략한 채 숫자 서술방식을 몇 가지 예로 들어본다. 먼저, 백단위의 숫자는 ‘단단위+십단위+위에(uttara, adhika)+백단위’ 방식으로 읽으니, 153은 ‘셋 오십 위에 일백’이라고 읽는 셈이다. 천단위 5832를 읽으면 ‘둘 서른 위에 팔백 위에 오천’이 되고, 만단위 45467을 읽으면 약간 복잡해져서 ‘일곱 육십 위에 사백 위에 다섯 사십천’이 된다. 본경의 제15 지경공덕품에 긴 기간을 가리키며 ‘무량백천만억겁(無量百千萬億劫)’[나집스님譯] 혹은 ‘구지나유다백천겁(俱胝那庾多百千劫)’[현장스님譯]으로 번역된 것의 산스끄리뜨 원문은 ‘kalpa(劫)koṭi(구지=千萬)niyuta(나유타=千億)śata(百)sahasra(千)’로 되어 있으니, ‘구지・나유타・백・천 만큼의 겁’ 쯤으로 얼추 풀어볼 수 있다. 그런데 ‘구지・나유타・백・천’이 정확한 산술적인 표현이 아닐 수도 있어서 이리저리 읽는 방식이 중구난방이겠지만, 그것의 중심에는 산스끄리뜨어 숫자표현의 특이함이 자리 잡고 있다고만 말해놓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경전의 숫자 서술방식은 인도의 전통적인 표현을 따르거나 아니면 나유타나 아승기 등 10의 수십 승에 해당하는 어마무지하게 큰 숫자를 동원하여 기술하거나 간혹은 문학적으로 서술하는 방식 등이 있음을 한번 쯤은 숙지해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520호 / 2020년 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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