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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 조영숙 (49, 승묘락)-상

기자명 법보

사춘기 방황 아들 잘대하려고
호스피스 교육 받고 목욕봉사
대입 아들 위해서 3000배 참회
이후 생각지도 못했던 집 장만

49, 승묘락

결혼 전에는 어머니를 따라 한두번 절에 간 기억이 전부였다. 결혼 후는 시어머님께서 다니시는 절을 따라가게 된 이후 초하루마다 동행하게 되었고, 절이 집에서 다니기에는 다소 먼 곳으로 이전했음에도 어머니와 함께 15년 정도 신행 생활을 지속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늘 부족함을 느꼈다. 사찰의 규모가 작다 보니 개인 기도를 하기에는 좋았고 그래서 기도하는 힘도 많이 길러졌지만 법문이나 불교 공부를 체계적으로 배우기에는 갈증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시간이 나면 집 근처의 다른 사찰에서 사경을 했다. 처음 다니던 절의 스님께서 숙제처럼 내주셨던 ‘금강경’ 사경만큼은 지속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아는 보살님을 통해 사춘기인 아들을 대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나에게 “부모가 바뀌어야 자녀도 바뀌게 된다”며 관음사에서 호스피스 교육을 받아보라는 권유를 받게 되었다. 부산 사하구 승학산 자락, 당리동에 있는 관음사에 올라 곧바로 호스피스 교육을 신청해서 들었다. 교육이 끝난 이후에는 요양원에서 6개월 동안 목욕 봉사에도 동참했다. 이 과정에서 나에게 호스피스 봉사를 권해주신 보살님의 말씀이 어떤 의미였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욕심을 내려놓고 내면에 귀를 기울이며 삶의 긍정적인 변화를 찾는 데 노력해 보라’는 조언이었던 셈이다. 이후에도 봉사하는 삶을 발원했다. 허리가 불편한 관계로 목욕 봉사는 더 하지 못하고 다른 봉사를 찾다가 경로당 배달 봉사와 복지관 설거지 봉사를 하는 동안 어느덧 아들은 고3이 되었다. 이 시기 늘 염원해오던 새벽 기도를 관음사에서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첫 새벽기도의 경험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남편은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시간강사를 하고 있었다. 첫아들을 낳고 터울이 있을 즈음 어머니께서 어디서 듣고 오셨는지 둘째는 딸보다 아들이 좋다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꼭 딸을 낳고 싶었다. 마침 이웃집 언니에게 듣고는 처음으로 100일 동안 새벽기도를 다녔다. 복이 있는 딸이면 남편도 잘 풀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 부처님 전에 복 많고 건강한 딸을 낳게 해주시고 남편도 하루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직장에 다니던 나는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는 불교방송을 틀고 금강경 독송 기도를 했다. 100일의 기도에 정성을 다한 덕분일까. 발원대로 예쁜 딸을 얻었고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할 때에는 남편도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후에도 부처님을 향한 믿음을 갖고 나만의 기도를 하며 지냈다. 서면 불지사에서 3000배 참회 기도에 동참한 이후 생각지도 못했던 집을 장만하기도 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부처님의 가피라 여기며 항상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겠노라는 다짐을 거듭 새겼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들이 고3 수험생이 되었으니, 아들이 희망하는 대학에 합격하기를 기원하며 다시 새벽기도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선 것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큰 장애가 있었다. 시어머니께서는 기도를 무척 열심히 하시는 분이셨다. 하지만 남편이 보는 관점에서는 시어머니의 기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그 생각의 뿌리가 깊어지면서 남편은 나의 기도에 반감을 갖게 되었고 결국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을 보내는 동안 새벽기도를 발원하는 나를 심하게 반대했다. 남편은 기도를 집에서 해도 될 것인데 꼭 절에 가야 하느냐는 입장이었다. 남편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새벽기도만큼은 꼭 절에서 하고 싶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간절함에도 남편은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무조건 새벽기도를 다니기 시작했다. 불편한 상태에서 계속 기도를 이어나갔다.

아들의 수능시험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재수를 하면서 방황도 많이 했다. 공부는 손을 놓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수시로 싸우고 부딪쳤다. 수능을 치는 전날까지 매일 매일 전쟁을 치르다시피 했다. 삶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이 시련은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한 일이었음에도 성숙하지 못한 우리 부부에게는 참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그런데 큰 기대가 없던 상황에서 아들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지옥처럼 느껴지던 고통의 시간이 온몸에서 식은땀이 되어 흘러나가는 느낌이었다. 오직 부처님의 가피라는 생각만 들었다.

 

[1520호 / 2020년 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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