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제1칙 청원계급(靑原階級)
2. 제1칙 청원계급(靑原階級)
  • 김호귀 교수
  • 승인 2020.01.14 11:02
  • 호수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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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침은 수행으로 말미암아 유지된다

돈오없는 점수 눈 없는 길 선 것
점수없는 돈오 한낱 몽상가 꿈
평상심이 그대로 깨침이고 열반

행사화상이 육조대사에게 물었다. “어떤 수행에 힘써야 분별계급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육조가 물었다. “그대는 일찍이 어떤 수행을 해왔던가.” 행사가 말했다. “깨침조차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육조가 말했다. “그렇다면 어떤 계급에 떨어지고만 꼴이다.” 행사가 말했다. “깨침도 오히려 추구한 적이 없는데 어찌 계급에 떨어졌다는 겁니까.” 육조가 말했다. “그래, 그렇다. 그대는 이후로 그와 같은 마음을 잘 유지하도록 해라. 그대에게 게송을 들려주겠다.

“마음에 모든 종자 머금으니/ 단비에 모두 싹이 피어나네/ 꽃의 마음 단번에 깨친다면/ 보리의 열매 저절로 맺히네.”

청원행사(?~740)와 육조혜능(638~713)의 문답이다. 행사는 강서성 길주(吉州) 안성(安城) 출신으로 속성은 유(劉)씨이다. 육조의 법을 계승한 후에 강서성 길주의 청원산(靑原山) 정거사(靜居寺)에서 크게 선풍을 드날렸다. 청원의 문하에서는 당나라 말기에 출현한 소위 선종오가 가운데 조동종․운문종․법안종이 출현하였으며, 길이 번성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서 문답의 요점은 수행과 깨침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돈수와 점수 및 돈오와 점오 사이의 관계는 수행과 깨침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다양한 관점을 보여준다. 행사가 질문한 계급에 떨어지지 않는 방식이란 점수에 장애되지 않는 수행이다. 그렇다고 해서 돈오만 겨냥하는 것도 아니다. 행사가 깨침조차도 추구하지 않았다고 답변한 것은 돈오조차도 초월했다는 말이다. 이처럼 진정한 수행과 깨침이란 돈오라든가 점수라든가 하는 수증(修證)의 문제와 관계없이 본래부터 완전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보리달마는 이미 정작 깨침을 터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내 좌선수행으로 일관하였다. 그 좌선수행은 다름 아닌 깨침의 실천으로서 수행과 깨침이 별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행위였다. 그러나 수행이 없는 깨침은 있을 수가 없다. 깨침은 수행으로 말미암아 유지되고 드러나며 실천되는 것이다. 때문에 행사의 그와 같은 답변에는 계급이라는 수행이 없는 것과 깨침의 추구라는 조작적인 행위가 없다는 것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그런 모습에 대하여 혜능은 퍽이나 만족해하였다.

‘공곡집’의 100칙에서 제1칙으로 수행과 깨침의 관계를 제시한 것은 투자의청 자신이 ‘화엄경’에 정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발심의 순간에 정각을 성취한다는 돈오적인 입장과, 또한 삼아승지겁의 수행을 쌓은 연후에야 비로소 깨침을 터득한다는 점수적인 입장을 행사와 육조를 통하여 교묘하게 보여주고 있다. 초발심의 찰나가 깨침의 완성이라는 것은, 수행은 진정한 깨침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고 깨침은 수행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돈오가 없는 점수는 그 결과를 알 수가 없고 점수가 없는 돈오는 결코 불가능하다. 언제나 돈오의 점수이고 점수의 돈오이어야 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돈오가 없는 점수는 눈이 없는 길을 나서는 것이라면 점수가 없는 돈오는 한낱 몽상가의 꿈일 뿐이다.

‘화엄경’의 교의를 인용하여 수행과 깨침은 본래 같은 것이라는 조사선의 가풍에 대한 그럴싸한 경증(經證)으로 삼은 것이다. 당나라 시대에 형성되고 전개된 조사선이라는 명칭은 달마조사에게 연원을 두고 있는 선풍을 가리킨 것이다. 그래서 조사선에서는 달마대사가 전래했다는 최상승선의 가풍을 최대한으로 부각시켜 인간 누구에게나 깨침의 바탕이 구비되어 있고 나아가서 본래부터 수행이 완성되어 있다는 본래성불의 사상이 일반적으로 주장되었고 실제로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런 점에서 청정심이고 본래심이기도 한 평상심이야말로 그대로 깨침이고 열반이라는 말이 가능하였다. 그와 같은 평상심이 현실에서 언제나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드러나 있다는 사상이 소위 조사선이었다. 그 전형적인 주장이 곧 수행이 그대로 깨침이고 깨침이 그대로 수행으로 드러난다는 수증일여(修證一如)의 사상이다.

김호귀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20호 / 2020년 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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