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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테웨이 감독의 ‘피리 부는 목동’(1963)

소 찾는 목동 이야기…‘십우도’ 접목한 불교영화

동물·인간 등장하는 중국 애니
기술적 완성도 높은 불교영화
산수화·수묵 등 중국 기법 활용
애니메이션의 중국화 이뤄내

소 찾아 다스리고 귀가하는 여정
피리 소리로 청각적 즐거움 전해
목동 피리에 숲 속 동물 모여
‘심우’부터 ‘기우귀’까지 표현해

테웨이 감독의 피리 부는 목동‘은 중국 초창기 애니메이션으로 수묵화와 산수화 등 중국 기법을 활용한 불교영화다. 사진은 ‘피리 부는 목동’ 스틸컷.<br>
테웨이 감독의 피리 부는 목동‘은 중국 초창기 애니메이션으로 수묵화와 산수화 등 중국 기법을 활용한 불교영화다. 사진은 ‘피리 부는 목동’ 스틸컷.

북경의 청화대 교정에 소 조각상이 놓여있다. 강인한 돌로 된 조각상의 옆면에 크게 새겨진 네 글자는 유자일우(孺子一牛)이다. 이 구절은 노신의 시 ‘자조(自嘲)’를 인용하면서 한자를 첨언한 글이다. ‘부수감위유자우’(감히 달게 머리를 숙여 백성을 위하는 어린 소같은 일꾼이 되고자하네)에서 소는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중국 혁명을 이끌었던 모택동도 민중을 위한 일꾼인 유자우의 자세를 거듭 강조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소는 국가의 근간인 민중을 표상한다. 노자가 등장하는 그림에는 늘 소를 타고 있거나 옆에 소가 누워있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노자는 소를 타고 함곡관을 지나갔다고 한다. 노신의 시는 소가 민중을 위해 일하는 깨어있는 자로 의미망이 형성되고 노자의 삶과 철학으로 관련되며 결국 불교의 십우도에서 소는 참 나이자 마음이며 법으로 넓어진다. 중국 문화에서 소는 의미의 깊이가 바다 만큼 깊고, 하늘만큼 넓다. 중국의 초창기 애니메이션은 동물과 인간이 함께 등장한다. 테웨이의 ‘피리 부는 목동’(1963)은 소와 소년이 주인공이다.  

테웨이의 ‘피리 부는 목동’은 두 가지에서 혁신을 이루었다. 첫 번째는 애니메이션 기법의 중국화를 이룬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의 기법면에서 디즈니 방식의 단선 평면식 피사체 구성에서 벗어나  화선지에 번지는 먹물의 번짐과 수묵의 농담을 살려내는 수묵화 기법을 수용한 수묵 애니메이션으로 완성하였다. 중국은 중국화의 기치로 문화 전반에서 자국의 전통 문화를 근간으로 하여 서양의 문화를 수용하는 중체서용의 방식을 채택했다. 애니메이션 부분도 초기에 러시아 애니메이션 방식을 수용했지만 1957년 상해미술영화공작소가 설립되면서 수묵화를 중국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창신하여 그 성과를 거두었다. ‘피리 부는 목동’은 수묵 애니메이션이며 공작소의 초대 소장이 바로 테웨이 감독이다. 

두 번째는 오락성과 의미있는 주제의 균형을 통해 관객층을 확장하였다. 애니메이션은 어린이를 위한 영화 장르이지만 주제적 깊이를 통해 관객층을 확대해갔다. ‘피리 부는 목동’은 목동이 소를 타고 가서 낮잠을 자고 그가 꾸는 꿈속에서 소를 찾는 이야기다. 목동이 소를 타고 숲으로 가는 이야기가 어린이 관객을 위한 서사적 장치라면 꿈속에서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서 음악을 통해 소를 찾는 과정은 불교의 ‘십우도’의 주제와 보이지 않게 접목된다. 물론 화면구성은 중국의 산수화와 제백석(齊白石)의 화조도를 적극 수용하여 중국화와 애니메이션을 접맥하여 전통 산수화 관객층을 흡수하였다. 이 영화는 어린이 관객에게는 목동이 소를 타고 가서 나무 위에서 소를 찾는 꿈을 꾸고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이지만 성인 관객에게는 중국의 수묵화의 풍경 속에 인물들이 움직이면서 자신과 닮은 소를 찾고 다스리고 귀가하는 십우도의 의미가 스며든다. 청각적 즐거움은 대나무 잎처럼 시원한 피리소리를 통해 얻을 수 있으며 눈 맛은 제백석이 즐겨 그린 새와 물고기가 스크린 위에서 살아서 움직이는 풍경으로 얻게 된다. 불교영화의 입장에서는 십우도의 한 두 장이 피리 부는 목동과 소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 수묵 산수화 속에 담겨있는 절경으로 여겨진다.

곽암의 십우도에서 소는 자신이거나 마음 그리고 법 등 다채로운 의미망을 형성하지만 구체적으로 적시하지는 않았다. 첫 장의 심우에서 소를 찾아 나서는 자세가 새겨져있다. 심우(尋牛)는 “아득히 펼쳐진 수풀을 헤치고 소를 찾아나서니/물 넓고 산 먼데 길이 더욱 깊구나/힘 빠지고 정신 피로해 소 찾을 길 없는데/ 단지 들리는 건 늦가을 나뭇가지 매미 울음뿐”이다. ‘피리 부는 목동’에서 목동은 검은 소를 타고 늘어진 버드나무 사이를 지나 물을 건넨다. 물은 주역에서 이섭대천(利涉大川)이라는 어구에서 천을 건너는 것은 어려운 일과 장애를 이겨내는 일을 함의한다. 목동은 소를 타고 물을 건너가서 숲으로 향한다. 목동은 피리를 불며 소 등을 타고 물을 건너고 숲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여행길에 접어드는 것이면서  검은 소를 타고 자신의 내면으로 향한다. 목동이 들어선 숲 속은 대나무 위에서 새가 울고 자연의 소리로 시원하다. 목동은 그물 침대처럼 살짝 구부러진 나무 가지에 매달려 잠을 청한다.

자연의 소리 대신 새소리처럼 청아한 음악이 들려오고 나뭇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면서 두 마리 귀여운 나비로 변한다. 노랑나비는 장자의 장주지몽을 연상시켜준다. 꿈속에서 목동은 소를 찾아 나서고 소는 이미 나뭇잎이 변한 노랑 나비와 즐겁게 놀고 있다. 목동은 길가에서 놀고 있는 소년들에게 소의 행방을 묻고 나뭇단을 지고 가는 시골 아이들에게도 소의 행적을 묻는다. 목동은 소를 찾아가는 득우로 접어든다. 십우도의 득우의 장은 “오랫동안 야외에 숨어 있더니/오늘에야 비로소 그댈 만났네. …고집 센 마음 여전히 날뛰니/야성이 아직도 남아 있구나”이다. 목동은 자연과 하나가되어 앉아있는 소에게 다가간다. 소는 목동에게 처음에 반발하지만 이내 곧 목동에게 다가온다. 소는 다시 다른 길로 접어들고 목동은 대나무 가지를 잘라내어 피리를 만들어 연주를 시작한다. 목동의 연주에 소가 돌아온다. 목동은 소를 찾고 꿈속에서 깨어난다. 목동의 꿈을 통해 심우와 득우의 과정이 수묵 애니메이션에 동양화의 두루마리 그림으로 담겼다.  

꿈에서 깨어난 목동은 소를 찾지만 자취가 없다. 그는 피리를 부르면서 소를 부른다. 목동의 피리소리에 감응하여 가느다란 다리의 학과 부리가 매서운 독수리와 작은 새들이 모두 날아온다. 목동의 연주에 숲속의 모든 동물이 음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연주회장으로 모여든 관객처럼 피리소리를 따라 모여든다. 음악은 숲 속의 모든 새들의 마음을 모으게 한다. 목동의 피리소리 길을 따라 소는 목동의 곁으로 돌아온다. 목동은 소의 등을 타고 집으로 되돌아간다. 십우도의 여섯 번째 그림인 기우귀가(騎牛歸家)의 재현이다. “나무꾼은 소박한 소리 흥얼거리며/시골아이의 풀피리를 불어보노라”의 풍경이 수묵화로 펼쳐진다. ‘피리 부는 목동’은 기술적 완성도 높은 수묵 애니메이션이자 십우도의 사상이 스며든 불교영화이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520호 / 2020년 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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