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안중식 ‘탑원도소회지도(塔園屠蘇會之圖)’
22. 안중식 ‘탑원도소회지도(塔園屠蘇會之圖)’
  • 손태호
  • 승인 2020.01.14 14:31
  • 호수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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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잃은 지식인들의 쓸쓸한 새해 풍경

마지막 궁중화원 안중식 작품
전통회화와 다른 새로운 화풍
1912년 오세창의 도소회 묘사
도소회는 도소주 마시는 모임
작가, 3·1운동 후 내란죄 수감
안중식 作 ‘탑원도소회지도’, 종이에 담채, 1912년, 간송미술관.
안중식 作 ‘탑원도소회지도’, 종이에 담채, 1912년, 간송미술관.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소망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옛 그림이 한 점 있습니다. 조선회화의 마지막 거장이자 근대회화의 선구자인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의 ‘탑원도소회지도(塔園屠蘇會之圖)’입니다.

어스름한 달밤에 누각 마루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 술병을 앞에 두고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탁자 앞에 모여 앉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왠지 차분한 분위기입니다. 그 중 한 인물은 누각 너머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합니다. 주변을 보니 누각 옆으로 무성한 나무가 있고 뒤쪽으로는 수풀이 스잔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그 너머에 하얀 탑 하나가 서 있습니다. 탑의 모습은 상륜부가 보이지 않고 탑신과 지붕돌만 그려져 있습니다. 누각 주위는 안개가 몰려와 마치 호숫가에 정자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즐겁고 흥겨운 모임을 표현했다기보다는 왠지 쓸쓸하고 조용한 분위기입니다. 전각 한쪽을 진한 농묵으로 표현한 수목이 가로막아 약간 은밀한 분위기도 느껴집니다.

이 그림은 2019년 3·1운동 100주년 기념으로 여러 전시회에서 공개된 작품입니다. 이 그림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조선후기 전통 화풍과는 전혀 다른 신선하면서도 새로운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회화와 비교해서 크게 낯설지 않은 화풍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통 원근법과는 조금 다른 서양식 원근법을 사용했으나 앞에는 농묵, 뒤쪽으로 갈수록 담묵을 사용한 점, 여백을 잘 활용하여 조선 회화의 아름다운 여백의 미를 잘 살린 점은 여전히 전통적 기법과 미감들입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이 작품을 그린 화가는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새로운 근대적 화풍을 잘 결합시킬 수 있는 뛰어난 기량을 가진 화가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누구일까요? 그 해답은 좌측 화제에 적혀 있습니다. 그림의 좌측 여백에 고졸한 예서체로 ‘탑원도소회지도(塔園屠蘇會之圖)’라고 화제(畵題)를 적은 후에 그 뒤로 간략하게 누구를 위하여 어떤 장면을 그린 그림인지 적어놓았습니다.

백문방형의 인장으로 마무리한 화제의 내용으로 보면 1912년 정월초하루 밤에 위창 오세창의 집에서 열린 도소회 모임을 묘사한 그림으로 안중식 화가가 위창 선생을 위해 붓을 든 그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도소회’라는 다소 생소한 명칭이 나오는데 ‘도소회’란 산초(山椒), 방풍(防風), 백출(白朮) 등의 한약재로 빚은 도소주(屠蘇酒)를 마시는 모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도소주는 중국 후한시대 전설의 명의인 화타가 만들었다고도 전해지지만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도소주를 새해 첫날에 마시는 풍습은 한대부터 내려온 중국의 오랜 세시풍속으로 당나라 이후에는 새해에 도소주를 마셔야만 새해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고 장수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광범위하게 퍼졌습니다. 이런 풍습은 우리나라에도 이어져 고려말기 문인들의 시에서도 언급되었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정월편에도 세주(歲酒)의 기원으로 도소주를 언급하고 있을 만큼 조선후기 문사들에게도 잘 알려진 풍습이었습니다.

화가 심전 안중식은 자신도 함께했던 도소회를 기념해 집주인인 위창 오세창 선생을 위해 그렸을 것입니다. 안중식은 조선 화가 3대 천재로 일컬어지는 오원 장승업에게 그림을 사사받은 소림 조석진과 더불어 조선의 마지막 궁중화원입니다. 

집주인인 위창 오세창 선생은 당대 최고의 서화 감식안을 갖춘 예원의 으뜸이었습니다. 그러한 감식안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고서화 인명사전인 불세출의 역작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과 ‘근역서휘(槿域書彙)’ 등을 편찬한 위대한 예술가입니다. 또 뛰어난 수집가로 간송 전형필을 지도하여 간송 미술품을 수집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 대문화인입니다. 그는 종로에 살고 있었는데 지인들은 그의 집을 현재 탑골공원에 세워져있는 원각사탑이 가까이 보여 ‘탑원’이라 하였습니다. 그림의 현장은 위창의 집, 바로 그 탑원에서 도소회가 열린 것입니다. 

도소회에 참석한 인물들은 누구일까요? 먼저 집주인 오세창과 그림을 그린 안중식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세창과 가장 가까웠던 인물들 손병희, 권동진과 최린, 그리고 평생 그림 벗인 조석진과 김응원, 무척 아끼던 후배 고희동 등이 참석했을 것입니다. 그 중 손병희, 오세창, 권동진, 최린 이 네 사람은 1918년 12월에 다음해 3·1독립선언을 처음으로 기획했던 주인공들입니다. 따라서 1919년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독립선언은 7년 전 바로 탑이 보이는 탑원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림 전체에서 풍기는 까닭모를 쓸쓸함도 이해가 됩니다. 

1910년 경술년, 일본과의 강제병합을 선언한 8월29일 조선은 이날로 운명을 다하였습니다. 그 후 조선의 많은 유생들과 백성들은 합병의 무효를 선언하며 자결과 시위로 저항했으나 이미 꺼져버린 조선의 운명을 되살릴 수는 없었습니다. 1910~1911년 그런 혼란과 치욕의 시기를 보내고 다시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나라 잃은 지식인들이 모였으니 새해가 되었다고 기쁘기보다는 울분과 한탄이 먼저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희망을 잃지 말자고 다독이며 언젠가 때가 되면 함께 크게 싸워보자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거사를 진행했으며 대다수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안중식 역시 1919년 3·1독립선언을 주도한 이들과 친하다는 이유로 3·1만세운동 직후인 4월에 내란죄로 수감되었고, 결국 심한 문초로 얻은 병으로 그 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가 죽자 평생 지우였던 조석진도 매우 슬퍼하다가 6개월 후 눈을 감습니다.

달빛 어스름한 정월 초하룻날 저녁, 어느 집 누각 마루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시대를 아파하며 자신들의 무능을 곱씹었던 지식인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누각 아래 수풀이 자욱한 곳을 애잔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그의 시선 너머에는 숲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흰색 탑 하나가 몸도 성치 않게 서있습니다. 그저 평범하기 그지없는 산수화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묻어나는 먹먹한 애잔함은 이 그림이 평범한 산수화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심전 안중식의 ‘탑원도소회지도’. 일본의 징용노동자 문제와 무역보복으로 나라가 떠들썩했던 2019년. 어느 해보다도 일본문제로 치열했던 한 해를 보내고 2020년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에 다시는 힘이 없어 외세에 고통받는 역사를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하는 서늘한 그림입니다.

손태호 동양미술작가, 인더스투어 대표 thson68@hanmail.net

 

[1520호 / 2020년 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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