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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과 선학원, 왜 한뿌리인가] 3. 선학원 정관으로 본 관계 변화

  • 특별기획
  • 입력 2020.01.20 10:44
  • 수정 2020.01.21 14:51
  • 호수 1521
  • 댓글 2

1970년대도 조계종이 선원장 임명…1978년 정관 개정 후 탈종단 수순

임원 자격 분원장으로 변경·창건주 사제상승 영구보장도
조계종, 1981년 비로소 문제해결 논의…양측간 갈등 심화
2002년 합의했으나 ‘법인법’ 제정 이후 선학원 일방 파기

1978년 선학원 정관에서 ‘조계종’ 명칭이 삭제된 이후 지속된 갈등은 2002년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 스님과 선학원 이사장 정일 스님이 합의안에 서명하면서 일시적으로 평화를 찾았다. 법보신문 자료사진.
1978년 선학원 정관에서 ‘조계종’ 명칭이 삭제된 이후 지속된 갈등은 2002년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 스님과 선학원 이사장 정일 스님이 합의안에 서명하면서 일시적으로 평화를 찾았다. 법보신문 자료사진.

조계종과 선학원의 관계가 공식적으로 어긋나기 시작한 시점은 1978년 2월23일, 선학원 이사회가 정관을 개정하면서부터다. 선학원 이사회는 이날 정관에 명시된 ‘대한불교조계종’의 명칭을 모두 삭제했다. ‘이사와 감사는 이사회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승려 중 덕망이 후한 자로 선출해 문공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 취임한다’는 조항도, ‘임원은 이사회에서 본 법인의 분원장 중 덕망이 높은 스님(비구, 비구니)을 투표로 선출한다’고 개정했다. 이는 그간 조금씩 삐걱대던 조계종과 선학원간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결정적인 계기로 평가된다.

당시 선학원 이사장 범행 스님은 ‘선원지 78호’ 인터뷰를 통해 “(정관 개정은)재단에 재산을 등록한 분원장만 임원을 할 수 있도록 해 책임을 강조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범행 스님의 발언에서 이전과는 다른 극명한 인식 변화를 유추할 수 있다. 선학원이 ‘조계종 소속’과 ‘재단 소속’을 구분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다. 1934년 최초정관부터 일관되게 명시한 ‘창립이사 명단(이사장 만공, 부이사장 한암, 상임이사 적음, 이사 성월·남전, 감사 서호·탄옹 스님)’도 이때 처음으로 삭제됐다.

1934년 선학원이 재단법인으로 출범한 이후 조계종은 그 명칭을 수차례 바꾸는 등 격변의 시기를 지나왔다. 그렇더라도 선학원은 조계종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조계종 교구본사를 대표하는 큰스님들이 선학원을 만들었고 이후 한국불교 변화를 주도하는 과정에서 선학원은 그 역사의 중심에서 함께 호흡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1978년 정관 개정 사건’은 조계종과 선학원의 관계에서 핵심적인 전환점으로 꼽힌다.

이때 ‘창건자의 사제상승 영구보장 및 선원장 파면·유고시 이사장이 겸직한다’는 조항도 신설됐다. 그동안 법인에 재산을 출연한 선원의 관리 및 지원에서 한발 더나아가 선원장에 대한 본격적 관리를 시작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창건자의 재산을 후임에게 영구보전해 줌으로써 종단 혼란으로 불안한 스님들의 재산 등록을 유도하는 의도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정관 개정으로 인한 파급력은 즉각 드러나지 않았다. 조계종은 당시 조계사파와 개운사파로 극심한 갈등을 빚은데 이어, 1980년 10·27법난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조계종은 1981년 4월 제65회 중앙종회에서 비로소 이 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논의를 시작한다.

“선학원은 종단과 둘로 볼 수 없는 곳인데 정관을 개정하는 등 종단 영향권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이를 다시 하나로 만들 대책이 마련돼야 합니다.”(능혜 스님)
“선학원은 과거 노스님들이 출자해 수행처소로 만들었고 정화 때는 산파 역할을 한 곳입니다. 선학원을 운영하는 스님들이 조계종 스님들인데 정리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도원 스님)
“선학원의 과거 정관(1969)에 승려라면 누구나 이사가 될 수 있다고 된 것을 명맥을 유지키 위해 조계종 재적승려로 고쳐 문공부에 등록했습니다. 다시 전으로 환원시키면 될 일입니다.”(진경 스님)

종회회의록에 따르면 당시 스님들은 정관 개정을 그리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너무도 오랜 세월 ‘한몸’으로 인식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은 세월을 거슬러 ‘불교재산관리법’이 시행됐던 1962년 9월25일 선학원이 조계종 총무원장에게 보낸 ‘선원장 임명내신’ 공문에서도 확인된다.

“금번 정부의 불교단체 등록으로 선학원이 조계종과 별도로 등록하게 되는 것이나, 같은 종단 승적을 가진 스님들이 선학원 산하 선원장이 되는 고로, 당국에서 조계종정이 발행하는 임명장을 첨부해 유관성을 표시함이 좋을 듯하다 하오니 발령해주시기 바라나이다.”

행정시스템 변화로 양측이 별개 단체로 등록하게 됐지만, 정부와 선학원은 선원장 등 임명에 있어서 조계종단의 역할을 당연시 여겼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제65회 종회의 진경 스님 발언 중 ‘정관변경으로 처음 조계종이 정관에 명시’된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1969년 선학원 이사장이었던 동원 스님은 조계종과 선학원이 행정적으로 분리된 상황에서 그 명맥을 보호하기 위해 정관을 변경해 임원 자격을 조계종 승려로 제한했다. 특히 정화 이후 정부가 ‘불교재산관리법’을 제정한 것과 관련, 법적 보호를 위해 재단법인인 선학원에 사찰재정을 등록하는 스님들이 증가했고 이 과정에서 조계종이 아닌 사찰등록이 많아지자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정관을 개정했다는 분석이다.

조계종과 선학원간 갈등구도는 점차 심화 수순을 밟는다. 1985년 개최된 제84회 중앙종회에서는 선학원이 독자노선을 걷고 있다는 심각한 우려가 제기됐다.

“(조계사·개운사) 분규 전에는 선학원 원장을 조계종이 임명했지만 현재는 손도 못 대고 있다.”(천장 스님)
“범행 스님이 이사장인 선학원은 설립 때와 완전 반대가 됐다. 선원장과 분원장 이상은 당연히 조계종에서 임명해야 한다. 대책이 필요하다.”(정도 스님)
 

이 같은 문제의식에 따라 조계종 중앙종회는 이후 선학원 관련 수습대책위원회, 특별위원회 등을 구성해 선학원 정관에 ‘조계종’을 명시하는 방안을 추진하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번번이 무산된다. 1986년 제85회 중앙종회에서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 현성 스님은 ‘대한불교조계종 종지를 봉대하고’ ‘임원은 중앙종회에서 조계종 재적승려 가운데 후보로 선출해 추천한다’는 문구를 삽입하는 것으로 범행 스님의 약속을 받았다는 취지의 보고를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1994년 개혁종단 출범 이후 갈등은 더욱 본격화된다. 선학원 내부에서도 조계종과의 관계 변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기획2 참조), 1995년 6월 법등 스님을 위원장으로 한 조계종 종회 선학원대책특별위원회는 선학원 분원 160여 곳을 직접 방문해 현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 106개의 답변을 확보한다.

제117회 중앙종회 회의록에 따르면 당시 설문 결과, ‘조계종 종지를 봉대하고’를 정관 목적조항에 넣는 것에 찬성하는 비율이 49%, 반대가 18%로 집계됐다. 또 ‘명칭을 재단법인 조계종 선학원으로 변경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이 55%, 반대가 22%로 나타났다. 이는 양측 갈등이 심화된 상황에서도, 정작 상당수 분원장들은 조계종과의 관계성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유의미한 수치다.

이런 가운데 선학원이 1995년 11월15일 분원장 회의에서 조계종과의 결별을 선언하면서, 양측은 점점더 극단으로 치닫는다. 1996년 8월27일 일부 잠정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선학원이 내부규정 및 사찰현황에 대한 공개를 거부하면서 재차 결렬됐다. 조계종은 법주사 주지인 정일 스님이 선학원 이사장 소임을 맡고 있는 동안에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지속적인 합의를 시도했다. 2002년 당시 총무원장 정대 스님과 선학원 이사장 정일 스님이 극적으로 합의안에 서명한 것은 이 같은 노력의 결실인 셈이다.

당시 합의는 2001년 8월30일 체결한 ‘조계종·선학원 관계 정상화 합의안’을 토대로 한다. 주요 내용은 선학원 정관 개정을 통한 조계종 정체성의 명확한 기재(목적, 임원 등), 조계종은 법인 고유권한을 침해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종법에 명시하고, 선학원은 조계종 스님이 창건한 사찰을 신규로 등록받아선 안되며 조계종단에 교육분담금을 납부할 것, 합의사항을 담은 종법과 정관 개정시 사전 협의할 것 등이다.

이에 따라 선학원은 그해 4월1일 정관 목적에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지·종통을 봉대하여’를 삽입하고, 임원 자격을 ‘대한불교조계종 승려’로 한정하는 조항을 넣는 것으로 정관을 개정했다. 이는 선학원이 조계종과 하나라는 원래의 취지를 반영한 것으로 의미가 적지 않다.

그러나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2013년 4월29일, 선학원은 다시 정관 개정을 통해 ‘조계종 종지·종통을 봉지한다’는 등의 조계종 명칭을 모두 삭제한다. 임원 자격도 ‘조계종 스님’이 아닌 ‘분원장’으로 변경했다. 다시 1978년 이후 탈종단화 수순을 밟던 과거로 회귀한 것이다.

“조계종이 2013년 3월30일 종회에서 ‘법인 관리 및 지원에 관한 법(이하 법인법)’을 제정하는 등 합의를 파기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법인법'은 중앙종무기관 또는 조계종 스님이 설립하거나 사찰 재산을 출연해 세운 법인을 지원하기 위한 법이다. 이에 대해 선학원은 지금까지도 “법인의 고유권한을 침해하지 않기로 한 조항을 조계종이 먼저 어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조계종은 ‘법인법’은 법인의 재산권, 운영관리권 등 법인 고유권한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어 선학원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법인법’ 제정은 선학원뿐 아니라 모든 법인을 포괄적으로 관리·지원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법인법 제정 이전 각 법인을 대상으로 사전 협의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지만 선학원만 ‘법인법’에 대해 무조건적인 거부입장을 보여 왔다는 점에서, 선학원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시각이 많다. 일각에서는 선학원이 2001년 합의사항인 ‘조계종 스님의 사찰 등록을 받지 않겠다’는 조항을 지키지 않는 등 합의를 먼저 파기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선학원 법진 이사장과 이사 등 선학원 임원들은 급기야 2014년 6월30일 조계종 총무원에 제적원을 제출했다. 이에 조계종은 법진 이사장과 총무이사 송운, 교무이사 정덕, 이사 한북 스님에 대해 멸빈을 결정하면서 갈등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선학원 기관지 ‘불교저널’에 따르면 선학원은 한발 더 나아가 2014년 11월20일 임시이사회를 개최하고 “앞으로 선학원 승적을 가진 스님에 한해 창건주 권한을 위임토록 한다”고 결의했다. 또 2016년에는 △타종단 승적 보유자가 재단 승적을 취득한 경우 기존 종단 승적 포기 △재단 승적을 받고도 30일 내 기존종단 제적확인서를 제출하지 않을 시 선학원 승적을 자동 실효하는 내용의 ‘승려법’ 개정도 결의했다.

이는 조계종·선학원의 갈등 속에서 사실상 조계종 승적을 가진 선학원 창건주의 탈종을 강요하는 것으로, 선학원의 탈종단화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뿐만 아니라 정관 등 내부 규정을 공개하지 않은 선학원 이사회의 폐쇄적 운영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소속 창건주·분원장 스님뿐 아니라 한국불교계에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1521호 / 2020년 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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