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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옷을 입고 발우를 지니고서

기자명 현진 스님

공양, 지역 위해 헌신한 브라만 존경 표시서 유래

숲에서 정진하는 브라만에게
한차례 식사 제공한데서 비롯
상대를 인정하는 의미가 담겨

“옷 입으시고 발우 지니시고 사위성으로 들어가시어~” 하루 한 번 있는 탁발의 모습이다. 구마라집 스님에 비해 현장 스님은 좀 더 산스끄리뜨 원문에 가깝게 “치마옷[裳服]을 가지런히 하시고 가사와 발우를 지닌 채~”라고 자세히 옮겨놓았는데, 원문에 “의복[nivās]을 가지런히 하시고 가사와 발우를 갖춘 채~”라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뒤에 정착된 가사예법에 따르면, 평소 때는 5조인 안타회(antarvāsas)를 입고, 예배와 청강 및 포살 때는 7조인 울다라승(uttarāsaṁga)을 입으며, 탁발이나 왕궁에 들어갈 때는 9조 이상인 승가리(saṁghāṭī)를 입는다고 되어있다. 이 삼의(三衣)는 언뜻 보아 지금 한국불교의 승복・장삼・가사에 해당된다고 봐도 될 듯싶다. 최소한 부처님 당시에도 평상복 외에 지금의 ‘가사’에 해당하는 예복인 겉옷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구마라집 스님의 너무 간결한 번역에 불만을 느끼고 인도까지 가서 경전을 가져와 다시 번역한 현장 스님의 ‘치마옷’이란 표현은 오늘날 티벳 스님들의 치마옷과도 연결되는 것 같아, 현장 스님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탁발은 해방 후에 개혁종단이 들어서며 승가가 사회에 끼치는 불편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폐지되었는데, 그 역사는 사문(沙門)이라 불리던 신흥종교가들의 발흥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불교 이전 브라만교의 사제계급인 브라만들은 공부하는 학생기(學生期)와 결혼하여 집안과 지역을 돌보는 가주기(家住期)를 거친 후에라야만 모든 것을 내려놓은 무소유의 상태로 숲으로 들어가 수행하는 산림기(山林期)를 시작할 수 있는데, 불교의 출가도 이에 해당한다.

산림기에 숲에서 수행 정진하는 브라만들을 위해 하루 한 차례의 식사가 마을사람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제공되는데, 수행자에 제공되는 이러한 공양(供養)의 전통은 불교 이전부터 지금까지 인도에서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공양’은 가주기 동안 지역을 위해 헌신한 브라만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기도 하다. 불교를 막론하고 우리네 일상생활에서 “밥 한 끼 같이 하시죠! 제가 대접해드리겠습니다”라는 표현에는 이미 상대에 대한 존경이나 최소한 상대를 인정하는 마음이 담겨있는데, 불교의 공양전통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래선지 어쩌면 지키지 않아도 가장 욕을 덜 먹는 느슨한 약속이 식사 한 번 같이 하자는 말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약속으로 이미 상대를 인정한 셈이니…

탁발과 공양을 마치고 발을 씻으신 뒤에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라고 간단히 표현된 것 또한 현장 스님은 “평소와 같은 자리를 펴고 가부좌를 맺은 채 단정한 몸에 서원을 바루고 대면하는 생각[對面念]으로 머무셨다”라 하여, 마치 지금도 우리들이 법문에 앞서 잠시나마 선정에 들고자 하여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 부분의 산스끄리뜨 원문은 현장 스님의 그것과 크게 차이나지 않으면서도 근래 한국불교의 새로운 영역으로 자리 잡은 남방불교의 수행에서 흔히 언급되는 내용도 포함되어 ‘두 발을 씻으시고, 마련된 바로 그 자리에 가부좌(paryaṅka)를 틀고 몸을 꼿꼿하게 곧추 세우시고 대면하는(pratimukha) 알아차림(smṛti)을 확립하고 앉으셨다’라고 되어있다. 산스끄리뜨어의 스므릐띠(smṛti)는 빠알리어의 사띠(sati)와 같은 말이다.

대면념(對面念)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자세를 바로 한 뒤에 마음을 화두나 염불에 집중하여 선정에 드는 것을 말하는데, ‘대비바사론’에도 ‘대면념’에 대해 “대(對)란 드러나게 하여 자세히 봄이요 면(面)이란 선정의 대상이니, 대면(對面)은 선정의 대상을 드러나게 하여 자세히 살펴보는 것을 말한다”라고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매번 ‘금강경’을 독송하면서도 어쩌면 별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라 여겨 흘려버릴 수도 있는 법회인유분의 뒷부분에 수행의 주요 개념 가운데 하나인 ‘대면념’이 부처님의 몸짓을 통해 자연스럽게 서술되어 있다. 국내에 가장 널리 보급된 구마라집 스님 번역본에는 없는 내용이다. 이것이 우리가 경전을 공부할 때 다른 판본도 살펴보고, 혹은 원전이라 할 수 있는 산스끄리뜨본도 살펴봐야 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521호 / 2020년 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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