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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월산 기림사 설담원 운성 스님

“이 땅에 선 나를 스쳐가는 그 모든 존재가 부처님”

열 살 때 동진출가
은사는 월산 스님

창원 대광사 세운 후
어린이·청소년 포교

‘궁극의 비움’ 상태에서
마주하는 삼매가 ‘내 꿈’

수지독송 경전 택하고
가르침 실천 몸부림쳐야

​​​​​​​“흔적 없이 살다가
생명 살리는 거름되길”

“흔적없이 살다 가고 싶다”는 운성 스님은 “다만 소리 없이 썩어지는 거름이 땅을 거름지게 하여 뭇 생명에게 영양소를 제공하듯이, 나 또한 그러고 싶다”고 했다.

‘한수의 시를 적어서/ 사람들 가슴을 적시고 싶다. … 행여 내 노래가/ 감동을 주지 못하고/ 영혼을 일깨우지 못하면/ 바로 붓을 꺾어/ 입을 닫을지라도/ 오늘은 혼신으로 노래를 지어/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다.’(‘한수의 시’ 중에서) ‘설담원 이야기’는 시집이다. 책 끝에 적힌 ‘한일여고 교사 김선홍’ 씨의 글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분의 수줍은 고백이 담긴 한 수 한 수를 시집으로 모았습니다.’ 책 편집 초기부터 저자의 허락을 얻어 출간한 건 아닌 듯하다. ‘그저 따스한 시선과 마음으로 읽고 또 읽으며 위로받고 공감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하는 저희들의 욕심으로 이 시집을 냅니다.’ 시를 위한 시가 아니라는 의미일까? 저자는 ‘시’의 자리에 ‘글’을 앉혔다. 하여 ‘설담원 이야기’ 표지에는 ‘글·사진 운성(雲成)’이 새겨졌다.

10살의 어린 나이에 산문에 들어 선 운성 스님은 1980년 지금의 창원 대광사(大廣寺)를 세우며 포교에 나섰다. 1984년 대광 유치원을 설립해 부처님의 가르침과 자비를 생활과 놀이를 통해 배워가도록 하며 어린이들의 바른 심성을 키워주었다. 2007년 5학급 총 144명으로 인가·증설되었다. 어린이 포교 지도자를 전문으로 양성하는 사단법인 동련의 이사인 운성 스님은 창립(1986) 초기부터 지금까지 궤를 함께 하며 동행하고 있다. 어린이·청소년 포교를 향한 실심(悉心)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1997년에는 대광 불교대학을 운영해 초급반 1기 70명을 배출했고, 2001년 조계종 포교원으로부터 정식 불교 대학으로 인가 받았다. 대광사 사부대중은 회주 운성 스님의 포교 원력을 되새기며 지금도 차근차근 하나씩 하나씩 실현해 가고 있다.

9년 전, 함월산(含月山) 기림사 골짜기에 토담집 하나, 정자 하나 짓고 설담원(雪潭院)·설향정(雪香亭)이라 했다. 눈 덮인 연못에서 피어 오른 눈꽃 향을 마주할 수 있는 도량이니 움푹 파인 연못을 찾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도량 자체가 고요와 평온을 품은 하얀 연못일 터다. 운성 스님은 이곳에서 ‘혼신으로 노래를 지어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은색 다관에 담겼던 붉은 색감을 띤 따듯한 차가 하얀 유리 다완에 떨어진다. 설담이라 한 연유를 여쭈었다.

“제 은사 스님이신 월산 큰스님께서 내려주신 법호가 설담(雪潭)입니다.”

법호에 담긴 상징을 함월산 자락에 풀어 놓았음이다.

“욕심을 다 내려놓아 더는 괴로움당할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고요한 삼매. 그것은 제가 꿈꾸는 경계입니다. 이곳 설경에서 니르바나를 들여다보려 합니다. 눈 덮인 연못은 순백의 호수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눈 덮인 호수는 하얗게 멈춰진 호수로 보이지만 얼음 아래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펄떡이며 봄을 만들고 있습니다. 제 가슴도 호수처럼 끊임없이 내일을 준비하는 약동처(躍動處)이고자 합니다.”

적요·활발, 성성(惺惺)·적적(寂寂)이 빚어낸 듯한 ‘고요한 출렁임’이 명징하게 전해져 온다.

이곳에 발길이 닿은 사연을 여쭈니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오고가는 것”이라며 차 한 잔 건넨다. 그 흔한 담도 없는 설담원에서의 일상이란 예불과 독송이 전부다. 최근에는 ‘아함경’을 곁에 두고 있지만 ‘금강경’, ‘관음경’, 그리고 ‘아미타경’만은 매일 독송한다고 했다. 어려서, 젊어서는 ‘경은 그냥 읽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켜켜이 더해가는 법랍 속에서 독송의 중요성을 불현듯 알게 됐다고 한다. ‘읽음’과 ‘독송’ 사이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다.

처음부터 쓰다 버릴 것이 아니라 내 신체의 일부라 생각하면 “다완도 생명체”라고 했다.

“이 다관을 보세요. 처음부터 ‘쓰다 버릴 것’이라 생각하면 소모품에 지나지 않지만, 내 신체의 일부라 생각하면 생명체나 다름없습니다. 저 경전을 보세요. 잠깐 읽다가 덮는 정도의 책이라 생각하면 교양서에 지나지 않지만. 생생한 법음에 귀 기울이는 것이라 생각하면 부처님의 다름 아닙니다.”

경전을 대하는 마음가짐부터 달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눈으로만 읽으면 이해 수준에 머물게 됩니다. 반면 일구 하나라도 계속 되새기는 독송은 사유의 폭을 넓혀주고 수행으로 이끕니다. 불자라면 누구나 수지독송(受持讀誦) 할 경전 하나는 택해야 합니다. ‘수지’는 경전이나 계율을 받아 항상 잊지 않고 새기는 것이니,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삶을 그 가르침에 맞춰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매일 거르지 않고 입에 익히고 마음에 새기고 뜻을 깊이 깨닫다 보면 니르바나에 이를 것입니다.”

설담원 이야기’는 시집이다.
설담원 이야기’는 시집이다.

 

운성 스님은 말로 하는 종교는 ‘죽은 종교’라고 단언했다.

“경전이 전하는 가르침을 내 생활 속에서 실천해 보려 몸부림쳐야 합니다. ‘무주상 보시’를 올곧이 실천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나누려는 노력은 최대한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매일 성찰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좀 더 품격 높은 인격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운성 스님이 전하고자 하는 뜻을 읽어낼 수 있겠다. 최소한 경전 하나는 수지독송 하라. 그 속에 깃든 가르침을 지금 실행하라. 그리고 돌아보라!

‘금강경’의 한 구절을 청했다. “어제의 금강경과 오늘의 금강경이 다르다”는 운성 스님은 ‘불취어상(不取於相) 여여부동(如如不動)’을 전했다.

산스크리트어 원문에서는 ‘어떻게 남을 위해 이 가르침(사구게)을 말하여 들려줄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말하여 들려주려 하지 말라! 그래야 비로소 말하여 들려준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구마라집은 대답 부분을 ‘상을 취하려 하지 말라.(不取於相) 있는 그대로 움직이지 말라!(如如不動)’고 번역했다. 니까야 원문에는 ‘보여줌이 없이 보여 주어야 한다. 그래야 바르게 보여준 것이다!’ 라고 새겨져 있다.

“‘말 있는 곳에서 말없는 곳’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는 일구입니다. 말 없는 세계로 안내하는 말이라면 그 말은 참으로 진실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짧은 법문 한 토막이라도 깊은 사유 속에서 건져 올린 것이라야 합니다. 또한 그 법을 대중에게 전해도 되는지 자신에게 투영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남에게 받아들이라 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아상·아만이 전제된 말은 결국 힘을 잃습니다.”

운성 스님은 ‘느낌이 있거나 없거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불성이 있다’고 하신 부처님 말씀을 귀담아 들어보라 했다.

“내가 존재하는 순간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순간입니다. 이 땅에서 나를 스치는 모든 존재는 부처님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내 앞에 놓인 그 모든 게 진리이고 해탈법입니다. 임제 스님께서도 짚은 바 있습니다. ‘눈앞의 모든 것이 다 부처다, 따로 부처를 찾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내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나를 부처의 길로 인도하고, 나를 깨달음에 이르게 할 그들은 바로 내 이웃이고 내 가족이며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집 앞의 눈을 부지런히 치우는 일, 화단에 물을 뿌려 주는 일, 미소로 상대로 대하는 일 모두가 불사입니다. 부처님께 에결(恚結) 드리는 것 못지않은 중요한 일이며 살아 있는 부처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눈 내린 설향정.

동진 출가한 스님에게 ‘출가’ 의미를 여쭈었더니 파안미소와 함께 “출가는 비움”이라고 했다.

“비움 없는 출가는 진정한 출가가 아닙니다. 비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나, 비우는 연습은 출가인이라면 가장 소중하게 여기면서 끝없이 노력하고 실천해야 할 요목입니다. 버리고 버려도 비워지지 않는 서랍장, 주머니, 옷장을 저도 갖고 있습니다. 돌아서면 쌓이고, 돌아서면 재어지는 그것들을 대할 때마다 부끄러움의 한숨이 터지곤 합니다.”

불자들에게 전할 일구를 청하자 원오 (圓悟) 선사의 심요(心要) 한 구절을 전했다.

‘잠시라도 (법에 대한) 생각(정신)이 떠나면 죽은 시체와 같다(暫時不在如同死人).’

설담원 앞 30여 그루의 매화가 벌써 꽃망울을 맺으려 한다. 뼈에 사무친 추위를 뚫고 나오는 매화향 가득할 즈음이면 운성 스님은 자신의 시 ‘새벽빛’처럼 ‘아침마다/ 꽃가지 사이를/ 휘청 휘청 걸어서/ 잎새마다 번지는/ 새벽빛’을 담을 터다. 운성 스님의 글이 올라가는 ‘설담원 카페’ 메인 화면을 장식한 글이 새삼 떠오른다.

‘존재감 없는 존재, 아무에게도 기억에 남지 않는 존재, 육신이 사라진 뒤에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런 존재로 살다 가고 싶다. 다만 소리 없이 썩어지는 거름이 땅을 기름지게 하여 뭇 생명에게 영양소를 제공하듯이, 나 또한 그러고 싶다.’

허공을 나는 새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했던가. 흔적 없이 살다 가고픈 운수납자는 오늘도 설향정에 오른다.

‘… 걸레질 정갈히 해서/ 자리 마련해 두었다가/ 멀리서 벗 오시면/ 마음 담은 따신 차/ 정담 나누며 대접하리라.’ (시 ‘설향정’ 중에서)

그 흔한 담도 둘러쳐 있지 않은 설담원.
설담원 전경.

설담원에는 눈향·매화향보다 더 깊은 향이 배어 있는 듯하다. ‘아함경’이 말하는 향이다.

‘다가라향이나 전단향, 우발라향이나 말리향. 이와 같은 모든 향에 비하면 계향이 제일이라. 전단 등의 모든 향, 그 향기 풍기는 범위 좁지만 계덕의 향기 퍼지고 퍼져 하늘에까지 오르노라. 청정한 계향은 함부로 굴거나 게으르지 않게 하고, 삼매에 들게 하며, 바른 지혜로 완전히 해탈케 하여 마도가 침입할 수 없게 하노라.’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운성 스님
- 1958년 출가
- 1967년 득도
현재 경주 기림사 설담원에 주석하고 있다.

 

[1522호 / 2020년 1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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