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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원묘국사 요세와 진정국사 천책의 발원

기자명 고명석

“청빈한 삶, 수행에만 전념하니 왕실도 천민도 귀의”

원묘국사 요세, 무신의 난 이후 불교 타락 극심해지자 백련결사
진정국사 천책, 원묘국사 백련결사운동과 청빈한 삶 실천 주도 
매일 예경하고 육근참회하며 좌선·독송·진언천번 등 정진 수행

고려가 몽골 침입의 외환을 겪자 스님들은 백련결사의 힘으로 나라를 구하고자 했다. 그 중심에는 강진 백련사 제4대 사주 진정국사 천책 스님이 있었다. 사진은 백련사 전경
고려가 몽골 침입의 외환을 겪자 스님들은 백련결사의 힘으로 나라를 구하고자 했다. 그 중심에는 강진 백련사 제4대 사주 진정국사 천책 스님이 있었다. 사진은 백련사 전경

우리나라 역사상 신행결사의 대표적인 모습은 보조국사 지눌의 수선결사와 원묘국사 요세의 백련결사라 할 것이다. 고려후기 13세기를 전후하여 시작된 이 두 신행결사는 불교 내적으론 불교 개혁운동으로, 불교 외적으론 사회 통합과 국난 극복으로 작용한다. 특히 강진 백련사를 중심으로 전개된 백련결사운동이 그렇다.

원묘국사(圓妙國師) 요세(了世, 1163~1245)는 속성이 서(徐)씨로 1163년(의종 17) 경남 의령에서 태어났다. 12세에 합천 천락사로 출가하고 23세에 승과에 합격한다. 그는 지눌과 마찬가지로 승과 합격의 보상으로 국가에서 주는 주요 사찰의 승직을 마다하고 10여 명의 도반들과 함께 전국의 이름난 사찰을 찾아다니며 탁마한다. 뭔가 새로운 불교만이 무신의 난 이후 개경의 타락한 불교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여기며 그는 지눌의 정혜결사에 동참한다. 

그의 명성이 점점 세상에 퍼진다. 그 결과 요세는 남원 실상사 인근 귀정사(歸正寺) 주지의 초청으로 그곳에서 중국 천태종의 고승 사명지례(四明知禮, 960∼1028)의 ‘관무량수경묘종초(妙宗抄)’를 강의하면서 내면의 힘을 기른다. 이후 그는 월출산 약사암에서 당 시대의 불교를 쇄신하는 길은 정토와 결합된 천태사상과 그 실천에 있음을 확신하다.  

특히 요세는 참회를 매우 중요시했다. 불교의 타락상과 시대의 아픔, 그리고 탐욕에 눈먼 인간 죄업에 대한 참회 없이 깨달음이나 구원은 요원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맹렬하게 참회 행을 닦아 날마다 참회의 주불인 53불을 12편 예경했으며 극심한 추위나 더위에도 쉬는 일이 없었다. 어찌나 참회 행을 일과로 삼았던지 당시 참선하는 사람들이 그를 비꼬아 ‘서참회(徐懺悔)’라 불렀다고 할 정도다. 그는 매우 청빈한 생활을 하였다. 좌선 중에도 방석 위에 앉지 않았다. 보시가 들어오면 모두 빈궁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산에서 은둔한 뒤 50년 동안 수도 개경 땅은 밟지도 않았다.

어느 날 강진의 지방 세력가 최표·최홍·이인천 등이 그를 찾아와 만덕산 옛 절터로 옮겨와 수행할 것을 청하였고 1216년(고종 3) 가을 만덕사 80여 칸의 절이 완성되자 백련결사운동의 터전을 마련한다. 만덕사는 백련사(白蓮社)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이후 백련결사운동은 남원으로, 그리고 그의 문도들에 의해 상주로, 완도와 제주로, 개경을 비롯한 중앙으로 확산되어 나가기에 이른다. 결사운동에는 토착 귀족이나 서민들, 그리고 유생들, 나아가서는 왕실까지 참여하게 된 것이다.

결사에 직접 참여하여 ‘법화경’을 외운 사람들이 요세 스님 당시 1000명에 이르렀으며 결사에 참여는 안했지만 결사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벼슬아치들이 이름을 써서 그와 우의를 맺을 뿐만 아니라 소치는 아이와 말 끄는 더벅머리까지도 고개를 쳐들어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사모하였다고 전한다. 

이러한 백련결사운동을 대중화 하는데 크게 기여한 사람이 바로 진정국사(眞靜國師) 천책(天頙 1206~미상)이다. 그의 속명은 신극정(申克貞)으로 백련사의 제4대 사주였으며 옛 상주(지금의 문경) 공덕산 미면사에서 전개된 동백련사의 사주가 되기도 한다. 그는 명 문장가였으며 과거에 합격하여 국자감에 근무했던 유학자였다. 그는 현실정치와 유학의 한계를 체감하고 23세 때 불문에 귀의한다. 백련사 2대 사주 천인(天因, 1205~1248), 허유 등 국자감 유생들과 더불어 그는 요세가 머물고 있는 백련사로 가서 출가하여 본격적으로 결사에 동참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들의 동참으로 물 만난 용처럼 힘을 얻은 요세는 1232년(고종 19) 4월8일 처음으로 백련사에 보현도량(普賢道場)을 결성하고 천책으로 하여금 ‘보현도량시기소(普賢道場起始疏 : 보현도량이 열리게 되었음을 알리는 글)’를 짓게 하였으며 1236년에 ‘백련결사문(白蓮結社文)’을 지어 공포케 함으로써 백련결사를 세상에 널리 알린다. 안타깝게도 이 결사문의 전모를 알 수 없고 그 편린만 전할 뿐이다. 대신 ‘보현도량시기소’에는 백련결사의 성격을 잘 일러주는 내용이 담겨 있어 이를 소개해 본다. 이 글은 일종의 발원문이라 할 수 있다. 이 글 중 백미라 생각되는 구절을 읽어보자.

“독경 소리 밝고 밝아 울려오는 소리마다 대자연의 바람소리요 선정 향기 울울하여 퍼져가는 향 내음은 세상 덮는 비 같아라. / 산 짐승과 혼령들도 눈물 흘려 기뻐하며 모여들고 용과 신들 모두 함께 다가와서 환희하여 듣는도다. / 육근들이 반드시 청정하리니 구경각과 가까워져 그와 멀지 않도다. / 이 마음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오니 이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로세. / 부처님 말씀 한 구절 듣는 사람도 보리(菩提) 이룰 언약 받건마는 하물며 삼매 닦으면 찰나에 단박 이룸〔頓成〕을 어찌 알리오. / 나무 만난 눈먼 거북과 같이, 다행히 오백년 뒤에 올 묘한 법을 만나 / 여섯 상아 코끼리 타신 보현보살 큰 성인이 21일 가운데 오시오면 / 이미 저에게 이른 것이오니 번거롭게 말할 필요 없겠나이다.(‘호산록’)” 

백련결사의 하루 일과는 요세가 사명지례의 청규를 사모하여 매일 6번 2시간씩 5가지 수행항목에 따라 기도하는 것에 따른다. 그 주된 목적은 보현도량을 세워 정신을 깨우고 아미타부처님의 정토를 기약하는 것이었다. 보현도량은 ‘법화경’에 등장하는 보현보살을 주존으로 삼는 도량으로, ‘법화삼매(法華三昧)’ ‘법화참법(法華懺法)’ ‘정토에 태어남(求生淨土)’을 골격으로 한다. 그래서 매일 예경과 육근 참회는 물론이거니와 행선, 좌선, 법화경 독송, 준제진언 천번, 아미타불 만번을 소리 내어 외우는 기도 수행을 일과로 삼았다. 위 발원문에서 보듯이 그 경전 독송소리나 염불소리는 매우 유려하여 모든 생명들을 깨우고 삼매를 체험케 해 3·7일 기도로, 보현보살 친견으로 이끈다. 나아가 훗날 미타정토에 왕생하여 깨달음을 완성하고자 한다. 정토에 왕생하려는 까닭은 그곳에는 모든 것이 원만하게 잘 갖추어져 곧장 위없는 불도를 이루어 악한 길에 빠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고려가 몽골 침입의 외환을 겪게 되자 백련결사의 힘으로 나라를 구하고자 조정의 대신이나 왕족들이 결사에 참여하고 그 힘을 얻고자 한다. 거기서 주축을 담당했던 인물은 천책 스님으로 그가 백련사 제4대 사주로 있을 때였다. 백련사, 그 겨울의 붉은 동백이 뚝뚝 떨어지는 그곳에서 백련결사의 정신을 오늘날 다시 새겨 보길 권해본다. 죄업에 대한 참회와 자기 헌신의 기도가 맺어주는 맑은 삼매의 체험을.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523호 / 2020년 2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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