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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명 작가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상

기자명 유응오

어머니 세대가 겪었던 불평등 서사

제1회 버프툰 장려상 수상작
‘빼앗긴 들’은 여성인권 상징
윤회·업 등 불교사상에 기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한 장면.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한 장면.

공명 작가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 엔씨소프트가 공동주최한 ‘제1회 NC 버프툰 글로벌 웹툰스타 오디션’에서 장려상을 받은 작품이다. 현재 버프툰에 연재중인 이 작품은 이상화 시인의 시 제목을 그대로 제목으로 차용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상화 시인의 시에서 ‘빼앗긴 들’이 국토와 민족혼이라면, 공명 작가의 웹툰에서 ‘빼앗긴 들’은 여성의 인권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아래의 글로 시작한다.

‘스님을 찾아가 나는 아이를 갖고 싶다고 말하였다. 스님은 작은 불상을 하나 건네주시며 지그시 웃으셨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현실 같은 꿈 하나를 꾸었다.’

꿈속에서 권례는 스님에게서 한 아이를 소개받는다. 스님은 “이 아이는 해송이라고 합니다. 과거에 큰 죄를 지었었죠, 하지만 저와 함께 한 긴 수행 끝에 마침내 속죄를 끝냈습니다. 권례님이 저 대신 해송이를 데려가서 돌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라고 덧붙인다.

선몽(禪夢)을 꾼 사실을 털어놓자 예전에 작은 불상을 준 스님이 이렇게 강조한다.

“명심하십시오. 첫째 아이 이름은 해송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태어난 아이가 여자인 것을 알고서 권례의 시댁에서는 아이에게 해송이가 아닌 숙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해송이라는 이름은 몇 년 뒤 태어난 아들, 즉 숙이의 남동생의 것이 되었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숙이는 해송이라는 태명마저도 빼앗긴 것이다. 기본적인 설정에서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여성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남성 중심적인 가족 구조에서 비롯되는 여성을 억압하는 젠더(gender)의 불평등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주인공도 이 시대에 청년기를 맞이한 여성이 아니라 1970년대 즈음에 청소년기를 보낸 여성으로 설정돼 있다. 이 작품의 장점이자 단점은 복고적이라는 데 있다. 지금의 여성이 겪는 사회적 불평등이 아닌 어머니 세대가 겪었던 가부장제적인 불평등이 서사의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여성주의의 젠더 문제를 다뤄서인지 폭력적인 가부장제와 희생을 강요당하는 여성이라는 선악구도를 따르고 있다.

주인공인 숙이의 가족은 2명의 남성과 3명의 여성으로 구성돼 있다. 고등학교 영어 교사인 아버지는 무엇보다도 자기체면을 중시하고, 해송이라는 이름을 빼앗아간 남동생은 할머니가 싸고도는 까닭에 나날이 이기적으로 변해간다. 그런가 하면, 할머니는 아들과 손자밖에 모르는 남성중심사회의 가장 적극적인 숭배자이고, 어머니는 시어머니와 남편의 모진 핍박 속에서 딸을 보호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남성중심사회의 최고 희생자이다. 그리고 숙이는 ‘지옥불’과 같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숙이의 친구들도 비록 경제적 층위는 다를지라도 남성중심사회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림을 잘 그리는 미자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오빠와 달리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으로 간다. 공장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늘에 찔려서 팔에 시퍼렇게 멍이 든 미자는 길에서 만난 숙이에게 “뭘 그렇게 잘못해서 이렇게 살아야 할까?”라고 묻는다. 부유한 가정 출신인 지민도 해외유학을 간 오빠와 달리 집의 테두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작품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아야 했던 어머니들의 이야기이며, 여전히 차별받고 있는 누이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유응오 소설가 arche442@hanmail.net

 

[1524호 / 2020년 2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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