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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최승희의 ‘보살춤’

기자명 정혜진

진리 향한 인간의 구도·믿음이 그려낸 극락 모습

전통·서양춤 접목한 ‘신무용’ 장르 개척 원조 한류 1세대 무용가
미국·유럽 순회공연…‘동양의 진주’  극찬 속 10대 무용가 꼽혀
2011년 탄생 100주년 맞아 북한과 일본서 각종 기념행사 열려

광주시립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최승희 보살춤 사진. 하정우 컬렉션
광주시립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최승희 보살춤 사진. 하정우 컬렉션

피카소, 앙리 마티스, 찰리 채플린을 팬으로 둔 여자. 동양을 대표하는 월드 스타, 모던걸.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1911~1969)를 수식하는 말들이다.

최승희는 원조 한류 1세대라 할 수 있는 예술가로 1920년대에 일본으로 무용유학을 떠나 귀국 후, 조선의 여러 지역을 다니며 기방이나 지방춤꾼으로부터 전통춤을 익히고 서양근대춤과의 접목을 시도하여 ‘신무용’이라는 하나의 장르로 발전시킨 한국 무용분야의 입지적 인물이다. 또한 불교무용의 선구자이기도 했는데 그녀가 새롭게 만든 수많은 무용작품 중에는 ‘승무’ ‘보살춤’ ‘석왕사의 아침’ ‘석굴암의 벽조’ ‘바라춤’ 등과 같이 불교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 적지 않다.

그중 ‘보살춤’은 당시 서양예술기법으로 표현한 동양춤 창작에 매진하던 최승희의 대표적인 작품 중의 하나로 최승희의 무용 중에서 대중적인 인기도가 높은 춤이었다. 

최승희의 제자이자 동서인 한국 신무용계의 대모 고 김백봉에 따르면 최승희의 보살춤은 “조선시대의 명화 보현보살(普賢菩薩)을 무용화한 것이며, 동양의 불교예술에 표현된 조형적인 여성의 미를 그린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최근 보살춤의 무용음악은 최승희의 음악적 동반자이자 전속 악사로 불린 목포 출신의 박성옥(朴成玉)이 만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하였다.

길지 않은 최승희의 ‘보살춤’ 영상을 보면 진흙 가운데 나서 청정한 꽃을 피우듯, 세간에 머무르면서도 번뇌에 오염되지 않는 청정무구의 불성(佛性)을 상징하는 연화대좌(蓮花臺座) 위에 보살로 분한 최승희가 오롯이 서 있다. 잠시 후 엄지와 검지가 맞물린 부드러운 움직임이 수인을 그리고 불상에서 보여지는 여러 동작이 유려한 움직임으로 풀고 맺기를 반복하면서 보현보살을 형상화하고 있다. 뒤에서 비추는 조명으로 후광처럼 처리한 무대연출은 보살의 환영적인 효과를 더해주고, 역광을 통한 신체의 실루엣으로 그 신비로움을 극대화한다. 요란하지 않고 부드러우며 상징적인 몇 개의 움직임만으로 보살의 여성스러움과 자비의 이미지를 간결하게 전달한 것이다.

최승희의 ‘보살춤’에 관한 비교적 구체적인 묘사는 1940년 흑룡강성 목단강시에서 최승희의 공연을 관람했던 연변구연가협회 고문인 최수봉의 회고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막이 열리면 집중광이 무용조형을 내리 비쳤는데 무용수는 조형을 세우고 까딱하지 않았다. 이윽고 무용수는 머리부터 움직이다가 서서히 몸을 움직였는데 그 움직임이 보일락 말락 아주 미세하면서도 세밀하여 매우 큰 감흥을 자아냈고 그 우아한 맛은 극치에 이르렀다. 전반 무용은 정(靜)으로부터 동(動)을, 또 동(動)으로부터 더욱 강한 동(動)으로 넘어갔다.” 

최승희는 ‘보살춤’이 만들어진 1937년 12월, 3년 일정으로 미국·유럽·남아메리카 순회공연을 떠났다. 이어 1941년에는 일본과 중국 순회공연을 연이어 떠났는데 그 해외공연에서  ‘동양의 이사도라 덩컨’ ‘반도의 무희’ ‘동양의 진주’ 등의 별칭을 받으며 세계 10대 무용가로 꼽히는 등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보살춤으로 호평을 받았는데 프랑스의 유력언론인 ‘피가로’지는 1939년 파리에서 있었던 최승희의 공연 리뷰를 통해 “선이 아주 환상적인 동양 최고의 무희”라며 “그녀의 보살춤은 선이 환상적이었다”고 격찬하였다. 네덜란드 신문 ‘레시덴터보드’는 1939년 4월18일자에서 “특히 손동작 표현에서 최승희의 무용은 인도에 뒤지지 않는다. 최승희는 종교적인 무용작품에서 선보였듯이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우아한 손가락 선을 사용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고 언급하며 ‘보살춤’에 대한 평을 남기기도 하였다.

동양적 아름다움으로 서양무대를 공략한 작품인 보살춤은 이후 많은 무용가에 영향을 주었고, 자기화한 보살춤으로 재창작되며 공연되어왔다. 한국에서는 고(故) 김백봉이 공의 마음가짐과 선한 삶의 자세를 군무로 대형화하여 불심의 세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한 ‘만다라(1997)’를 창작하였다. 최승희의 ‘보살춤’이 보현보살을 묘사한 것이라면 김백봉의 ‘만다라’는 관음보살상을 표현하고 있어 자비스러움을 작품 전반에 더 강하게 부각시킨 것이다. 특히 진리를 향한 인간의 구도와 믿음이 그려내는 천상극락의 모습과 부처와 그것을 추구하는 보살, 그리고 그들의 무수한 권속이 모여 장엄한 도량을 이루며 우주의 척도를 이루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그리고 재일동포 무용가 백향주는 긴 장삼을 활용해 보살무와 비천무를 결합한 형식의 ‘관음보살춤(1998)’을 발표하기도 하였으며, 재일예술단인 금강산가극단에서는 안무가 강수내가 북측의 작곡가에게 음악을 의뢰하여 ‘보리살타(2008)’를 창작하여 무대에 올리기도 하였다.

한편, 북에서는 최승희의 ‘석굴암의 벽조’의 대등제목으로 보이는 ‘석굴암의 보살’과 ‘바라춤’이 각각 1950년과 1955년까지는 공연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특히 ‘바라춤’은 최승희 무용단이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있었던 제5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여 독무로 춘 춤으로 참가한 여러 종목중에 가장 우수한 성적을 받으며 수상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다 2003년 최승희의 유해가 애국열사릉에 안치되고 최승희가 복권이 되면서 최승희 춤을 복원하려는 움직임도 시도되었다. 그 일환으로 2011년 최승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11월24일~26일 평양에서 대대적으로 열렸고, 그 행사와 동반하여 일본에서도 크고 작은 기념행사들이 도쿄와 히로시마 등에서 열렸다. 그 행사를 위해 현 만수대예술단 소속의 안무가인 백환영이 최승희의 여러 보살춤을 모티브로 원작과 비슷한 동작들을 새로운 음악에 맞춰 ‘보살춤’을 재창작하였다. 음악은 북한 작곡가들의 집체로 창작한 것이며 재일의 금강산가극단의 무용부장을 역임한 공훈배우 박선미가 전수를 받아 일본에서 초연하며 최승희의 보살춤은 다시 부활하였다.

화향백리(花香百里), 주향천리(酒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라. “꽃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술의 향기는 천리를 가고,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라는 말처럼 최승희의 보살춤은 “불향만리”(佛香萬里)하여 그녀의 불심을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혜진 예연재 대표 yeyeonjae@gmail.com

 

[1525 / 2020년 2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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