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 출가자의 품격-상

기자명 정원 스님

“계 받고 승복 입었다고 진정한 출가자는 아니죠”

정식출가자 되는 근거는 율장
불법 전승 책임은 비구·비구니
면허 따도 운전 못할 수 있듯
진실된 수행자 양육 조건 필요

스님! 오랜만에 소식 닿아 무척 반가웠습니다. 산문에 들어선 때가 10여년 전인데 아직도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는 심정 이해됩니다. 도반들도 가끔씩 하던 이야기니까요. 무엇보다 ‘출가자의 품격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스님의 질문은 제가 긴 시간 고민하던 주제라서 글로 답해볼까 합니다.

‘영봉종론’에 ‘좋은 사람(好人)’과 ‘수도하는 사람(道人)’의 차이가 나옵니다. 좋은 사람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하고, 수도하는 사람은 계학(戒學)을 근본으로 정(定)과 혜(慧)를 고르게 수습(修習)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제대로 수도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좋은 사람이 됩니다. 사람들은 어떤 스님이 설법을 잘하거나, 경전에 대한 이해가 깊거나, 마음이 따듯해서, 말을 잘해서, 심지어는 잘 생겨서 가까이 하고 따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가까워진 거리만큼 자세히 보이는 결점에 실망하곤 합니다. 나는 스님의 질문을 특정 인물의 인품에서 추출하는 방법이 아니라 승단과 출가자라는 근원적 관점에서 출발해 보고 싶습니다.

아! 그전에 2013년 인도 바이샬리에서 개최된 세계여성불자대회에 참석했던 경험을 하나 이야기 해볼까요. 마침 보름이 겹쳐서 비구니스님들이 한 장소에서 포살을 하게 되었죠. 포살 전에 참회를 하라는데 우리는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니 무슨 말인지조차 몰랐습니다. 당황하면서 곁눈질로 보니까 남방가사를 입은 비구니 스님들과 대만에서 온 스님들이 두 사람씩 마주 보고 무슨 말인가를 하더라고요. 우리도 그들을 따라 두 사람씩 마주보기는 했지만 뭘 해야 할지 몰라 무척 어색했습니다. 그때 저는 참으로 부끄러웠어요. 부처님께서 강조하신 참회법을 누군가는 당연시 여기고 실천하는데 저는 개념조차 없다는 사실에 자괴감까지 들더군요.

포살 후 스리랑카에서 수계한 스님한테 물어보니 율장의 참회 매뉴얼을 보여주었어요. 율원에서는 사분율장 한 번 훑어보기 바빴고, 우리 불교가 사분율장의 내용과 작법갈마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풍토인지라 그런 절차가 있는지조차 몰랐던 거죠. 그때의 인연이 제가 율종도량에서 공부하도록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서설이 좀 길었지만, 네! 그렇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출가자의 품격’을 율장에서 시작하려고 해요. 수계를 받고 정식으로 출가자가 되는 근거가 바로 율장이기 때문입니다. 수계를 통해 비구가 탄생한다는 것을 승단에서는 왜 그리 중요하게 생각할까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든 이후에도 불법이 오래 세상에 머물 수 있도록 전승해야 할 책임을 비구와 비구니가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가문의 직계 자손이 끊기면 서서히 쇠하듯, 불법을 이어갈 직계제자의 탄생이 없다면 법이 머지않아 멸하게 되겠죠. 그래서 정법유지의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할 제자들에게 꼭 갖춰야 할 일종의 요건을 제시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율장 속에 있어요.

삼장 가운데 율장이 가장 먼저 결집된 것도 승단의 존속과 법의 전승이라는 측면에서 출가자가 담당해야 할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경장과 논장은 출재가 구분 없이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율장만큼은 오로지 승가구성원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여법하게 구족계를 받는 수계의식은 출가자의 탄생 절차로서 무척 중요합니다만 면허 땄다고 운전 잘하는 것은 아니듯 계를 받고 승복을 입었다고 진정한 출가자가 되는 것은 아니죠. 갓 태어난 어린 아이도 부모의 정성스런 양육과 성장과정에서 제공되는 다양한 자양분으로 몸과 정신이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하듯 수계를 받은 초학자를 건강하고 진실한 수행자로 양육시키는 환경적 조건이 필요한데 그 해답이 율장에 있다고 봅니다.

정원 스님 봉녕사 금강율학승가대학원 shamar@hanmail.net

 

[1526 / 2020년 2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