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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접어둘 수 없는 시작

기자명 효탄 스님

우리는 끝없이 성장한다. 신체적 성장은 어느 시점에 가서 정지하지만 정신적 성장은 끝이 없다. 그래서 평생교육이란 말이 나왔다. 그렇기에 우리는 삶의 질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부단한 자기 노력과 개발을 해야한다. 그에 못지않게 유아·청소년기를 어떻게 보내느냐, 교육을 어떻게 하는가 또한 크게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나는 기독교재단이 설립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집 근처에는 교회가 있어 일요일이면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런 내가 천운으로 부처님 법을 만나 출가한 이후 소정의 종단교육을 받고 다시 대학을 졸업한 후 제일 먼저 시급히 한 일은 선원에 방부를 들이는 일이 아니라 유치원을 세우는 일이었다. 그리고 어린이 법회를 여는 일이었다. 어릴 적의 성장 환경과 출가 후의 사찰 환경 사이의 괴리감에서 오는 반성에서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어렸을 적부터 익혀온 것을 자기의 것으로 삼고 쉽게 바꾸려하지 않는다. 종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정말 불법 만나기가 ‘백천만겁난조우’, ‘맹구우목’이라 하지 않는가? 그렇다고 그냥 팔짱끼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린이들에게 불교적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출가 선배가 해야할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시작한 일은 내가 한국불교사에 천착하는 동안에도 끊이지 않는 화두였다. 

내가 머물고 있는 사찰 뒤 백련산에는 ‘서울시립소년원’이 있다. 이곳은 ‘가난한 아이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소 알로시오 신부가 세운 곳으로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하고 있다. 다큐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 이태석 신부는 그의 저서 ‘친구가 되어줄께’에서 소 알로시오 신부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에 관해서는 2016년 다큐 ‘오 마이 파파’로도 제작되었고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이곳 사찰에 처음 왔을 때 소 알로시오 신부와 마리아수녀회의 존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편, 우리 지역만 해도 삼천사에서 운영하는 복지법인 ‘인덕원’이 있고, 이사장인 성원 스님께서는 조계종 포교대상도 받으셨다. 진관사도 얼마 전 복지법인 ‘무애원’을 설립해 다각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 참으로 뿌듯한 일이다.

그러나 늦었다고, 남들이 다 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만 둘 수는 없었다. 2015년 출자금을 내어 사단법인을 설립했고, 이후 어린이집 3곳과 키움센터 1곳을 위탁받았다. 물론 어린이집이나 키움센터는 국공립으로 법인이 위탁받아 운영하는 형식이다. 특히 요즘 뜨고 있는 초등학생 대상 키움센타는 돌봄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지역 사회가 중심이 되어 틈새 돌봄 공동체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이렇게 초등학생을 돌봐주는 키움센터는 앞으로도 그 숫자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지금은 세월이 변해 국공립이 대세고 어린이집에서부터 공교육이 시작된다. 위탁을 받으니 사찰에서 세운 것만큼의 자율성이나 종교적 색채를 띄우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지금은 개개사찰이 이런 시설을 세울 수 있는 형편도, 시대도 아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한편,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그래도 이런저런 시도도 해보지만 지방의 사정은 결코 녹록치 않다. 지방에 가보니 개개 사찰에서 설립한 어린이집, 유치원 등이 출산율 감소로 폐쇄를 고민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출산율 저하로 생긴 이런 현상들로 지방 사찰의 대사회적 활동이 위축되긴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우리는 불교가 한국에서 어떻게 그 종교성을 유지하면서 포교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인가를 다각도로 고민하고 그 가능성을 꾸준히 모색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은 인과 연에 의해 그 과가 얻어진다. 좀 더 지혜와 자비를 갖고 중생이 힘들어하는 부분을 함께 보듬으며 틈새를 넓혀가려는 원력이 있어야할 것이다.

효탄 스님 조계종 성보문화재위원 hyotan55@hanmail.net

 

[1530호 / 2020년 3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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