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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와 신념의 공사구분

국무총리가 종교·체육·유흥시설 등 다중이용시설의 운영을 잠정적으로 중단해줄 것을 강력히 권고하는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집단감염의 근거지가 되는 시설에 대해서 폐쇄나 차단이라는 강력한 법적인 조치나 명령을 내리는 대신 강력한 권고의 방식으로 자제해줄 것을 당부함과 동시에 이를 무시하고 집단감염의 사회적 폐해를 낳는 경우에는 강력히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코로나유행병에 대한 대응과 조치를 보면 통째로 공항을 폐쇄하거나 특정지역을 격리하는 등 과격한 대처방식이 아니라, 철저한 대응을 못한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유연하게 과학적으로 대응하려 노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완벽한 방역 또는 전체의 이익을 명분으로 내걸고 개인이나 단체의 일상적인 삶에 대한 강력한 통제를 당연한 듯이 시행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런데 최근 관심의 중심으로 다가오는 종교의 문제에 대해서는 필요한 통제도 하지 않고 통제의 원칙조차 마련하지 않은 채 방임하는 것 같은 우리의 현실과 미래가 크게 염려가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종교의 자유는 필수적인 것이고 개인은 종교적 신념이나 행위에 있어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종교적 신념은 내면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할 일이 아니지만, 종교적 행위는 그것이 사회적으로 표출되는 것이기 때문에 행위의 보편적인 원칙을 따라야 한다. 그것은 칸트가 말한 “네 행위의 준칙이 동시에 모든 사람의 준칙이 되도록 행동하라”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 행위의 제일원칙이자 황금률이다. 법도 이 원칙에 입각해서 제정되는 것이며 이를 어기면 당연히 법적인 제재의 대상이 된다. 우리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에 대해서는 이를 규율하는 법이 마련되어 시행되고 있는데, 종교적 행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율이 없다. 그러다 보니 종교 안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나 폭력 및 온갖 비리행위 내지는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공적인 질서와 이익의 심각한 침해 등에 대해서도 공적인 적극적인 대처가 없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미래 우리사회의 가장 강력한 위험요소로 종교를 꼽기도 한다. 

미국의 3대 대통령 제퍼슨은 공적인 영역에서 사적인 종교행위가 끼어들어 공적인 질서를 교란하는 것을 금지하는 종교의 자유에 관한 법을 만들었다. 이 법에 따르면 지하철과 같은 공적인 공간에서 폭력적 선교행위를 하거나 학교와 같은 공공영역에서 특정 종교와 관련된 교육을 강제하고 종교적으로 차별하는 인사를 하는 것 등은 당연히 규제의 대상이 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권익을 침해하거나 갈등이나 증오를 일으키면서 사회의 질서나 이익을 해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지각없는 종교지도자는 미성숙한 개인의 일탈행위를 제어하기는커녕 부추기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종교로 인한 갈등과 대립 및 증오가 온 사회에 넘쳐나게 되어 대규모의 참극을 부르는 심각한 종교적 문제 상황이 멀지 않은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 정도가 되었다. 

일찍이 파스칼은 “사람은 종교적 신념으로부터 행동할 때 가장 진지하고 유쾌하게 악을 행한다”고 경고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서 우리는 사려 없는 종교적 행위가 얼마나 심각하게 사회의 안녕과 이익을 파괴하는가를 경험했다. 이 뼈아픈 경험을 그냥 우연적인 것으로 흘려보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 기회에 종교가 또 다시 사회적 재난을 발생시키고 나아가 사회적 참극으로 번지게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종교적 행위에 관한 보편적 법률이라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국회나 정부가 종교문제는 건드리면 표를 얻는 데 손해라고 계산해서 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위협하는 심각한 병리현상을 직시하고 그것을 치유하고 예방하는 데 적극 나서기를 촉구한다.

정영근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yunjai@seoultech.ac.kr

 

[1531호 / 2020년 4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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