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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황룡사 주지 황산 스님

“힘든 시기일수록 밖으로 향한 마음 안으로 돌이키는 기도 절실”

불자들이 간절히 기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계·정·혜 위한 것
서원이 기도로써 제대로 정립된다면 올바른 지혜도 갖게 돼
부처님 가르침에 맞게 생활하고 수행해 잘 판단하는게 중요

황산 스님은 “힘든 때일수록 매일 기도하고 마음수행을 해서 부처님 지혜로 난관을 헤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산 스님은 “힘든 때일수록 매일 기도하고 마음수행을 해서 부처님 지혜로 난관을 헤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음력 3월 초하루입니다. 이렇게 온라인으로 같이 법회를 보고 기도를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오늘은 기도를 오래 했으니 간단하게 ‘기도하는 이유’를 주제로 법문을 하겠습니다.

우리가 부처님 전에 기도를 올리는 것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사마타(奢摩他, Samatha)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번뇌가 많은 마음을, 밖으로 쏠려가는 마음을 안으로 돌이켜서 자신을 정신 차리게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런데 기도가 우리 삶에 좋은 효과로 나타나지 않으면 우리는 ‘영험이 없다’고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기도는 삶에 어떤 효과를 주는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물론 시험에 합격이 되고 취업이 잘되고 재산이 늘어나고 건강에 이상이 없고, 이런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것은 요행입니다. 기도하는 목적과 효과에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것은 계(戒)와 정(定)과 혜(慧)를 위해서입니다. 올바른 지혜를 가지기 위해서, 훌륭한 지혜를 위해서, 늘 행복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행복하려면 일상생활 속에서 마음을 잘 정리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선정(禪定)을 뜻하는 기도는 마음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리만 한다고 다 될까요? 버릴 것은 버리고, 고칠 것은 고치고, 쓸건 써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정리하는 것이 효과적으로 잘 되어서 지혜로운 길이 될까, 이것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기도는 마치 자동차 운전대를 잡고 지혜를 위해서 가속장치를 밟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 상황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가 중요합니다. 방향 없이 아무렇게나 가면 논두렁으로 갈 수도 있고 절벽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라고 할 때 기도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방향을 잘 잡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계율(戒律)입니다.

계율은 어떤 것이 정의로운 것일까 생각하게 합니다. 정의란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것에 대한 고민입니다. 사회적인 표현으로 도덕성입니다. 우리는 도덕성이 좋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요즘 계속 뉴스에 나오는 텔레그램 박사방이라는 이야기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고, 올바르지 않은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누구나 타당하게 정말 좋다, 훌륭하다, 인격적이다, 교양적이다, 이런 것에서 더 나아가 기도를 통해 그 부분을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중요한 도덕성으로 손꼽는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생명을 사랑하라’입니다. 모든 생명을 사랑하라, 나의 생명과 남의 생명은 똑같다, 살아있는 모든 사람은 모두 똑같은 무게의 생명을 갖고 있다, 대통령이나 돈 많은 사람이나, 황산 스님이나, 여러분이나 모든 생명이 존귀하다, 더 나아가서 동물들도, 나무들도, 풀들도, 생명은 다 존귀하다, 이렇게 모든 생명을 사랑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존귀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예경을 올리고 기도하고 다라니를 독송하고 수행(修行)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존귀하게 여기는 생각이 성장해서 흔들리지 않는 생명존중 사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모든 것을 베풀어라’입니다. 돈을 버는 이유, 건강한 이유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 것입니다. 나의 능력이 하나라도 있으면, 예를 들어 영어를 잘하면 누군가에게 영어로 전달하기 위해서, 통역을 위해서, 가르쳐주기 위해서, 이렇게 자신의 재능을 타인들을 위해 쓰는 것입니다. 재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자인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누어주면 좋습니다. 이번에 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 되니까 대통령부터 장·차관, 고위 공직자들이 월급을 30%에서 50%까지 반납한다고 합니다. 이것도 나누는 하나의 형태가 되겠습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서로 나누는 것에 대해 싫어할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평소 도덕적이다, 훌륭하다, 교양적이다고 하는 것은 잘 나누는 사람을 지칭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알긴 알지만 잘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쌀이라도 한 되 올리는 이유가, 우리 마음이 무엇인가를 잘 내어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도 부처님 전이라면 내어놓게 됩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내어놓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부처님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을 위해서까지 늘 보시 공덕을 지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게 청정함, 지킬 것은 지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는 남녀 관계를 들 수 있습니다. 남녀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을 할 때 서로의 마음을 소중하게 여기면 바람을 피울 수가 없습니다.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너의 마음이 소중하니까, 너의 마음을 소중하게 여겨서 다치게 하고 싶지 않고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나는 너의 마음을 정말 사랑해’ 이것이 남녀 간의 사랑입니다. 개인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진짜 계율이라고 그것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 앞으로 진실만을 말하리라, 이간질하지 않으리라, 두 가지 말을 하지 않으리라, 괜히 사람들이 나의 말을 듣고 오해하지 않게 만들고, 진실만 말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진실을 말한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왕이면 사람을 돕는 진실을 이야기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또 칭찬은 하되 아부성의 말들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욕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신념도 필요합니다. 욕을 절대 쓰지 않기로 부처님 전에 서약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라니를 독송하면서, 나는 절대 욕을 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발원하고 또 진실만을 말하고 이간질, 두 가지 말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불자들이 가져야 할 도덕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불자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할 도덕성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는 ‘헛된 욕심을 품지 않겠다’입니다. 헛된 욕심은 어떤 것일까요? 예를 들면, ‘로또에 당첨될 것이다’ 이런 생각에 반복적으로 로또를 사는 것입니다. 장난삼아 로또 사는 분들도 있는데 로또를 살 때는 기분이 좋고, 발표하는 날에는 기분이 나빠지는 상황을 반복하는 건 너무 큰 욕심입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것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건강에 만족하고 내가 가진 집에 만족하고 설사 마이너스 통장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만족을 하게 되면 욕심이 덜 납니다. 이런 기본적인 도덕성이 있고, 이 도덕성을 기르기 위해서 우리는 다라니 기도를 하고 부처님 전에 불공을 올리는 것입니다. 

덧붙여서 기도하다 보면 축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축원하는 이 시간에 대해 불자님들은 ‘나는 축원을 올리지 않았으니까 가야지.’ ‘나의 축원만 듣고 가야지.’ 이런 생각보다는, ‘나의 축원과 다른 사람의 축원이 똑같다’라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이름이 불리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름도 부처님 앞에서 불리는 것은 참 훌륭한 일이야. 100명이 불리고 1000명이 불리고 1만명이 불리고, 정말 불자들이 많구나. 저 불제자들이 지성으로 공양을 올리는데 나의 이름은 불리지 않아도 좋다’ 하는 마음도 기도의 한 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수경'을 열심히 하고 다라니를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름이 불리면 그 사람이 정말 잘 되기를, 소원을 이루기를, 발보리심 해서 깨달음에 이르기를 기원하는 것이 불자들이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 중 하나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도덕성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하나가 ‘화를 내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절대 화를 내지 않겠다’라고 서원을 세워 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화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화를 내서 효과를 보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화를 내면 상대방이 더 화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를 내었을 때 상대방이 굴복하고 인정하는 경우는 10퍼센트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10%가 바로 나라는 것은 착각입니다. 화를 내면 무조건 불리하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화를 내는 것과 당당하게 말하는 것은 다릅니다. 어떤 불만이 있을 때, 그것을 지적하고 개선해야지 화내면서 요구하면 안 됩니다. “제가 생각할 때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이렇게 편안한 목소리이지만 당당하게 이 사항을 개선해달라, 잘못된 부분을 고쳐달라, 요구하면 됩니다. 물론 잘못된 부분을 지적했을 때 개선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개선되지 않았다고 실망하는 것보다 화를 내지 않겠다, 짜증을 내지 않겠다고 서원을 세우고 그런 것이 기도로 잘 정립이 되면 올바른 지혜를 갖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요즘 힘든 사람이 많습니다. 이럴 때는 세상일과 나의 삶을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이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한가, 이것이라고 봅니다. 자유롭고 행복하려면 주위의 상황에 끌려가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더 잃어버리는 것 같고 그런 생각이 커지면 삶 자체는 마이너스가 되기 쉽습니다. 좁아지는 인간관계, 점점 줄어드는 재화에 신경 쓰게 되면 외부의 상황에 의해 더 우울해집니다. 

그래서 지혜가 필요한 시대라고 합니다. 누구를 따라 해선 되지 않습니다. 투자할 때도, 정치도, 어디가 옳은 것이고 어디가 맞지 않은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정치와 경제적인 것은 물론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이상한 구설을 이야기하면 내가 그 사람을 믿어야 할지에 대해 혼란이 생기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어디로 어떻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 공부하고 지혜를 길러서 스스로 잘 판단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매일 기도를 하고 마음 수행을 해서 부처님의 지혜로 난관을 헤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법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3월24일 울산 황룡사에서 봉행된 ‘음력 3월 초하루 법회’에서 황룡사 주지 황산 스님이 ‘기도하는 이유’를 주제로 경내 법당과 유튜브를 통해서 설한 법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1531호 / 2020년 4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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