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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실천하는 아름다움, 하이든의 피아노 작품

기자명 김준희

요제프 하이든의 음악과 ‘보현행원품’의 접점

슈테판 성당 부속 합창단 학교에서 교육 받고 무난한 20대 보내
C.P.E 바흐의 영향으로 독특한 정취 담은 피아노 소나타 작곡
수행과 이타가 겸비된 행의 실천은 영원히 지속될 불법의 원동력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보물 제752호).

음악은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즉각적으로 전달하는 예술이다. 연주자는 무대에 올린 작곡가의 작품으로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표현하면서 청중과 감정을 교류한다. 음악은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고 때로는 기쁨을, 때로는 즐거움을 선사하며 마치 언어와 같은 소통의 도구 역할을 한다. 클래식 음악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과 보편성 덕분이다. 요제프 하이든의 음악과 실천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보현행원품’에서 그 접점을 찾아본다.

‘파파하이든’이라는 온화한 느낌의 별명처럼 하이든의 음악과 일생은 다른 음악가들에 비해 드라마틱한 서사가 적은 편이다. 태어날 때부터 남다른 천재였던 모차르트는 그 이름의 무게로 항상 피곤하고 불안한 삶을 살아야 했고, 베토벤은 언제나 운명에 도전하고 고통에 맞서는 버거운 인생을 버텨야 했다. 그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하이든은 그들과 사뭇 달랐다. 여섯 살 때부터 슈테판 성당 부속 합창단 학교에서 수준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졸업 후에도 작곡과 연주로 그럭저럭 무난한 20대를 보낼 수 있었다. 

하이든이 음악가로서의 활동을 하면서 인정받기 시작한 시기는 다른 천재적인 작곡가들과는 달리 20대 후반부터이지만, 서른 살 무렵부터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음악가로 일하며 평생을 안정된 직장에서 작품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물론 위촉받은 곡의 작곡은 물론, 에스테르하지 가문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과 지휘, 단원 관리, 연주자 섭외 등등의 여러 가지 업무로 하이든은 고된 일상을 보냈다. 또한 업무 중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갈등도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하이든은 큰 잡음 없이 모든 일들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낡은 클라비코드 앞에 앉아있을 때, 구멍 뚤린 지붕 사이로 내리는 눈이 나에게 그대로 내려 앉았지만, 나는 왕의 권력이 부럽지 않았다. 내가 C.P.E. 바흐의 첫 소나타 6곡을 알게 된 것도 이 시기였다. 그 곡들을 모두 마스터 할 때까지 나는 계속 연습했다. 그리고 특별히 힘들거나 기운이 빠질 때면 내 자신의 기쁨을 위해 여러 번 연주하곤 했다.” 

그가 1760년대 후반 C.P.E. 바흐의 건반악기 소나타를 접했을 때를 회상하며 남긴 이야기다.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100여곡에 이르는 교향곡을 썼고, 60여곡이 넘는 현악사중주를 남겨 고전시대 실내악의 기틀을 마련했던 그는 피아노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건반악기가 실내악에서 전반적인 화성 축을 담당했던 그의 초기 작품들에서도 하이든 고유의 음악적 색채가 엿보였고, 점점 독주곡에서도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되었다. ‘소나타 알레그로 형식’을 바탕으로 세련되고 진취적인 작품들을 선보였던 C.P.E. 바흐의 영향으로 하이든은 독특한 정취를 담은 피아노 소나타들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하이든의 초상화.

그가 작곡한 50여곡의 피아노 소나타는 감상적이고 독특하면서도 간결하고 명료한 악상들을 담고 있다. 특히 소나타 D장조, Hob.XVI:37은 탄성 좋은 공이 튀어 오르는 듯한 경쾌함을 담은 첫 악장과 진지하지만 너무 무겁지 않은 장식적인 느린 악장, 너그러운 분위기의 마지막 악장까지 갈란트 양식(Galant style)의 우아함도 느껴지며 전 악장에 걸쳐 친근한 감상을 지니고 있다.

환상곡 C장조, Hob.XVII:4를 살펴보면 하이든이 얼마나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는지를 엿볼 수 있다. 하이든은 1761년부터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카펠마이스터로 봉직하며 바쁜 나날들을 보냈는데, 1789년 봄 피아노를 위한 멋진 작품을 쓸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곡은 대담한 반음계적 전조, 예상치 못한 휴지부, 다양한 음역의 변화 등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연주력을 드러낼 수 있는 독특한 피아니즘을 담고 있다. 단악장 규모지만 어느 소나타 못지않게 풍부한 악상을 담고 있어 하이든 스스로 좋은 반응을 예상하기도 했다.  

소나타 Eb장조, Hob.XVI:49는 하이든의 후기 작품으로 상당히 규모가 큰 안정적인 느낌의 작품이다. 당당하고도 유쾌한 느낌의 첫 악장 뒤에 이어지는 두 번째 악장은 상당히 섬세하다. 아리아와도 같은 중간 부분은 모차르트의 느린 악장에서 느껴지는 서사와 비교해 보아도 결코 지지 않을 천상의 아름다움도 지니고 있다.

그의 피아노 작품들은 익숙하지는 않지만 결코 낯설다고 할 수 없는, 화려하고 장식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생생한 활력과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음악인과 생활인으로서의 균형과 조화가 잘 이루어진 하이든의 피아노 작품들과 그의 실천적 삶은 불자의 아름다운 행원을 담고 있는 ‘보현행원품’을 떠올리게 한다. 

하이든이 1794~5년경 사용한 피아노.

하이든은 C.P.E 바흐의 건반악기의 연주법에 관한 논문을 읽고 난 뒤 “음악을 잘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내가 이 위대한 인물에게 큰 빚을 진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그의 음악을 매우 꾸준하게 근면하게 꼼꼼하게 연구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C.P.E 바흐를 배우고 익혔던 이전시대의 음악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을 작품에 녹여냈다. 하이든은 음악을 거창하고 심각하거나 심오한 메시지보다는 유쾌하고 소박한 기쁨과 즐거움으로 구현했다. 마치 다른 사람의 공덕을 함께 기뻐하는 듯한 것 같다(隨喜功德願).

한 평론가는 하이든의 이러한 음악은 새로움과 연속성을 동시에 지니며, 그것들을 항상 유지하는 상당히 독특한 음악이고, 통일성 내에서 다양한 원칙을 가지는 음악이라고 평했다. 하이든은 특히 피아노 작품을 작곡할 때 헌정자와 연주가를 위한 세심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앞서 소개한 소나타 Eb장조는 에스테르하지가의 지인인 아마추어 피아니스트 안나 폰 겐칭거를 위한 작품이었다. 하이든은 그녀에게 느린 악장 연주의 어려움에 대한 기술적인 조언을 하기도 했다. 에스테르하지가에 대한 보은의 의미도 함께하고 있는 하이든의 행보는 스스로 쌓은 선근과 공덕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어 자타가 함께 불과의 성취를 기하는 회향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 같다(普皆廻向願). 

‘화엄경’의 실천 체계와 해탈을 총체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보현행원품’과 일생을 음악을 통해 기쁨과 즐거움을 전하는데 힘쓴 하이든, 그의 피아노 작품을 견주어 본다. 수행과 이타가 겸비된 행(行)의 실천이야 말로 영원히 지속될 불법의 원동력이다. 성실한 기쁨의 울림이 담긴 요제프 하이든의 음악. 그의 탄생일(3월 31일)을 맞아 피아노 작품들을 감상하며 보리심으로부터 발원한 이타의 서원 메시지를 느껴본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31호 / 2020년 4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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