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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설득력과 흡입력 있는 베토벤의 피아노 작품들

기자명 김준희

베토벤 음악, 전법열의 강했던 부루나 존자 연상

명확한 구조·선명한 리듬에서 삶에 대한 강한 의지 느껴져
낮은 목소리같이 섬세한 음악으로 감동 주는 법 알고 있어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귀족 지원 받으며 음악적 소신지켜

부루나존자_석굴암.

루드비히 반 베토벤.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훌륭한 작곡가를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이 주저 없이 그의 이름을 생각해 낼 것이다. 음악가로서는 치명적인 청력상실을 딛고 일어난 불굴의 의지 표상이기도 한 베토벤은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없는 사람조차도 그의 이름은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고, 모르는 사이에 그의 음악을 들으며 생활하고 있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연주되는 클래식 레퍼토리 또한 베토벤의 작품들이다.

베토벤의 9개 교향곡, 16개의 현악사중주, 32개의 피아노 소나타 등을 비롯한 그의 작품들은 모두 그의 인생 굴곡과 음악적인 고뇌를 담고 있는 대작들이다. 명확한 구조와 선명한 리듬을 바탕으로 한 그의 작품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는 음악으로 다가오며 삶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생명력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완벽한 자유와 마음의 평화’를 이룩한 악성(樂聖)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듣는 이로 하여금 큰 감동을 안겨준다. 

특히 어릴 때부터 피아노 교육을 받았던 그는 훌륭한 피아니스트답게 32개의 소나타 이외에도 다양한 장르에서 작품들을 남겼다. 안단테 파보리 F장조, WoO57'은 원래 베토벤이 1803년 작곡한 ‘발트슈타인 소나타(소나타 C장조, Op.53)’의 두 번째 악장을 염두에 두고 미리 작곡해 놓은 곡이다. 후에 소나타를 작곡했을 때 전체적으로 작품이 너무 길어지는 것을 염려해 독주곡으로 남겨두게 되었다. 

베토벤의 동상 (오스트리아 빈).

이 작품은 베토벤 스스로가 애착이 컸던 곡이었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의 주제로 시작하는 이 곡은 베토벤이 사교모임에서 자주 연주하기에 적합했다. 이 곡은 20세기 영화인들의 마음에도 들었는지, 제인 오스틴(1775-1817)의 소설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을 원작으로 한, 같은 제목의 영국 BBC 드라마(1995)에 삽입되기도 했다. 극중 등장인물이 원전악기로 연주한 이 곡은 OST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주제가 반복되어 나올 때마다 왼손의 반주 패턴이나 장식음들이 추가되어 그 우아함을 더한다. 전체적으로 론도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교차되는 주제 역시 생기 넘치는 선율로 가득 차 있는 이 작품은 ‘내적인 힘’이 존재한다. 고향인 본을 떠나 오스트리아 빈의 음악계에서 웅장하고 건실한 피아노 연주로 주목을 받았던 만큼 베토벤은 피아노라는 악기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섬세한 음악으로도 깊은 감동을 주는 법을 알고 있었다. 피아노라는 악기를 통해 완벽한 음악의 언어를 표현하는 악성 베토벤이었다. 

완벽한 음악적 언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베토벤을 부처님 제자 중 ‘중생에게 가장 설법을 잘하는 부루나(Punna)’에 비유해 본다. 부루나 존자가 수아나(인도의 서부지역)로 전법을 할 것을 정하고 부처님을 뵈었을 때, 그를 염려한 부처님이 물으셨다. “그 쪽 사람들은 흉악하고 무서워 너를 욕하고 미워한다면,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부루나는 대답했다. “그들에게도 착한 심성은 있을 것이니 욕을 할지언정, 저를 때리거나 돌로 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일에 너를 때리고 돌로 치면 어떻게 할 것이냐.” “그들이 저를 때리고 돌로 치더라도 그들은 착한 심성이 있어 칼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너를 칼로 그으면 어찌하려고 하느냐?” “부처님, 만일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도 지혜가 있으므로 저를 죽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부루나야, 혹시라도 그들이 너를 죽이려고 한다면 어찌할 것이냐?” “부처님, 만일 그들이 제 생명을 앗아간다면, 저는 ‘도를 열심히 닦으려는 수행자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들도 있는데, 내가 이들 덕분에 썩은 육신을 벗고 사바세계의 고통에서 해탈하게 되었구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베토벤이 사용하던 피아노(베토벤 생가, 독일 본)

부처님은 부루나 존자를 대견하게 여기시고 말씀하셨다. “부루나여! 너는 도를 닦아 참고 견디는 마음을 체득하였구나. 그런 마음이면 너는 거친 중생을 충분히 제도하고, 열반에 이르지 못한 자를 열반에 이르게 할 것이다.” 부루나는 부처님께 인사를 하고 수아나로 떠났다. 그곳에서 안거를 거친 후 500명의 우바새를 위해 법을 설하고, 500개의 승가람을 세웠다. 이후 삼명을 두루 갖춘 부루나 존자는 열반에 들었다. ‘잡아함경’ 13권, ‘부루나경’의 내용이다. 

부루나 존자가 설법제일로 불리는 이유는 뛰어난 언변 뿐 아니라 확고한 깨우침과 전법에 대한 강한 열의가 함께한 수행력 때문이다. 보수적이고 고정적인 사회에서 넓은 시야의 혁신적인 사상을 펼치려는 의지와 깊은 사유는 어딘가 베토벤의 모습과 닮아있다. 상인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스스로 자수성가한 베토벤은 후원해 주는 귀족들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음악적 소신을 지키며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가 전하는 음악적 메시지는 특정계층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주었다. 노력하는 천재였던 베토벤의 예술성과 대중성에 대한 고뇌가 더욱더 훌륭한 작품을 쓰는 원동력이 되었다. 뛰어난 언어로 사람들을 기쁘게도 하고, 때로는 촌철살인의 고언으로, 밝은 지혜로 설법한 부루나 존자의 설법은 소나타와 같은 무거운 장르 이외의 작품으로도 음악의 진리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베토벤의 모습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자작주제에 의한 6개의 변주곡, Op.34’는 그가 청력이 점점 악화되어 1802년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쓴 이듬해 작곡한 곡이다. 라이프치히에서 출판된 이 곡은 호데스칼키 후작 부인에게 헌정되었다. ‘아다지오 칸타빌레’라는 주제의 지시어가 뜻하는 것은 단순히 ‘노래하듯이’를 넘어선 베토벤의 후기 작품을 연상하게 하는 깊은 울림이다. 이어지는 여섯 개의 변주곡은 숨죽인 듯한 pp부터 f까지의 다양한 악상은 물론이고 장식적인 변주를 넘어서 각 변주마다 조성, 박자, 템포가 각각 다양하게 변화하는 성격변주곡의 모습을 보여준다. 베토벤의 대작에서 느껴지는 강렬하고 웅장한 음악이 아니라 섬세하고 세밀한 아름다움의 흡입력이 느껴진다.

훌륭한 인격과 깨달음, 그리고 뛰어난 전달력의 부루나 존자. 인간의 모든 본성을 담고 있는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음악의 베토벤.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한 봄을 갈망하는 2020년, 탄생 250주년을 맞는 베토벤의 음악이 부루나 존자의 설법처럼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래본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33호 / 2020년 4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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