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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제19칙 승문장사(僧問長沙)

“그대는 천자께서 풀을 벤다는 건가”

승이 성불 개념 못 벗어나자
천자와 필부로 교묘히 제시
본래성불 언설로 이해한 탓
“경전 자유롭게 활용” 주문

한 승이 장사에게 물었다. “본래인도 성불을 하는 것입니까.” 장사가 말했다. “그대는 대당의 천자께서 띠를 베고 풀을 벤다고 말하는 건가.”

장사경잠(長沙景岑)은 선기가 매우 준엄하여 대충(大蟲:호랑이)이라는 의미로 잠대충(岑大蟲)이라 불렸다. 본 문답은 대오철저(大悟徹底)와 성불(成佛)에 관한 문제를 주제로 한 문답이다. 본래인은 본래성불로서 달마조사로부터 전승된 소위 조사선(祖師禪)의 가풍을 가장 잘 드러낸 개념이다. 조사선은 본래성불 사상을 바탕으로 그것을 일상의 생활에서 구현하는 선풍으로, 중생에 대해서도 더 이상 중생이 아니라 이미 깨쳐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일찍이 그 승은 장사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교학에서 말하는 환(幻)의 뜻이란 도대체 있는 것입니까.” 장사가 말했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가.” “환의 뜻이라는 것이 도대체 없다는 것입니까.”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가.” “환의 뜻이라는 것이 도대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는 것입니까.”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가.” “저는 화상의 세 가지 말씀을 통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화상께서는 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일체법이 부사의하다는 말을 믿는가.” “그것은 부처님 말씀인데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믿는다[信]고 했는데 믿는다는 것에도 반연하여 믿는 것[緣信]과 그대로 본래성을 믿는 것[本信]의 두 가지가 있다. 두 가지 가운데 어떤 의미로 믿는다는 것인가.” “저는 연신(緣信)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전에 근거한 말인가.” “화엄경에서 보살마하살은 무장무애의 지혜로 일체세간의 경계가 여래의 경계와 같은 줄을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또 제불세존은 세간법과 제불의 법성이 무차별로서 결코 다르지 않는 줄을 다 안다고 말했습니다. 또 불법과 세간법이 진실하여 차별이 없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대의 답변은 경전의 말을 믿는 것인데, 그 이상의 것이 있다. 이제 경전에서 말한 환의 의미에 대하여 말해주겠다. 어떤 사람이 환이야말로 본래부터 진실[眞]인 줄 안다면 곧 부처를 보는 것이고, 법에 통달하면 그 법에는 생멸이 없는데 곧 불신(佛身)이다.”

장사가 제시한 불신(佛身)과 환이 그대로 진실인 줄을 아는 것이야말로 본래성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본래성불에 대하여 한 승은 언설을 통한 이해에는 정통해 있었다. 때문에 제 딴에는 장사에게 그 도리를 은근히 자랑하고 싶었다. 그래서 본래인도 성불을 하는 것이냐고 장사의 마음을 은근히 떠본 것이었다. 그러나 장사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것처럼 벌써 그 승의 머리꼭대기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그대는 대당의 천자께서 띠를 베고 풀을 벤다고 말하는 건가’라고 묻는다. 대당의 천자는 가장 고귀한 신분을 상징한다. 그리고 띠를 베고 풀을 베는 것은 농부로서 어중이떠중이를 상징한다. 승이 성불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천자와 필부의 대립의식으로 교묘하게 제시한 것이다. 때문에 장사는 그것을 꼬집어서 승은 대당천자와 풀을 베는 농부처럼 분별적인 생각에 빠져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승은 아직 자신이 벌써 한 방 얻어맞았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본래성불을 언설로만 이해하여 ‘성불은 어떤 사람이 하는 것입니까’라고 묻는 것은 더욱더 가관이다. 이 말은 성불은커녕 성불에 다가가지도 못하고, 또한 성불이라는 개념으로부터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말이다. 그래서 장사는 ‘그대는 성불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진정으로 성불이 무엇인지 통 모르고 있구나’라고 핀잔을 준다. 이에 장사는 승에게 경전에 얽매이지 말고 경전을 자유롭게 활용할 것을 주문한다. 그것은 경전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경전을 무조건 신봉하는 것도 아니다. 달마의 말마따나 경전의 대의를 통하여 중생의 본래성을 심신(深信)하는 것이다. 과연 그 승은 연신(緣信)을 본신(本信)으로 승화시켰을지 조금은 궁금하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38호 / 2020년 5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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