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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가 피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시비가 끊이질 않는다. 얼마 전에는 운행 중이던 전동차가 멈춰서는 돌발 상황도 발생했다. 전철 안에서 일어난 마스크 실랑이가 원인이었다. 통계에 의하면 지난 6월22일 기준 마스크 착용을 둘러싼 역무원이나 다른 승객과 시비가 벌어져 경찰에 신고된 사건만 840건이다. 짜증이 날만도 하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장장 6개월째 강요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왜 마스크를 써야 할까. 윤리학적으로 세 가지 유형의 행위자가 있을 수 있다. 첫째, 정부에서 결정한 만큼 반드시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의무론자다. 둘째, 남을 배려하는 것은 시민사회의 구성원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품성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덕론주의자다. 셋째, 나 자신의 바이러스감염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그것은 결국 다른 사람들의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공리주의자다. 당신은 어느 유형에 속하는 사람인가. 나는 대체로 세 번째 유형에 가깝다.

마스크의 경우 이기적인 동기가 오히려 이타적인 결과를 유발할 수 있다. 나 자신의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는 행위가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감염도 막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남을 위해 희생하라는 이타(利他)보다는 자신을 위해 행동하라는 이기(利己)가 훨씬 더 현실적이다. 그러면 마스크 실랑이도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남을 배려하는 고상한 시민의식이 아니라 우선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갖추겠다는 자세다. 그런 점에서 마스크 쓰기는 이기적인 동기와 이타적인 결과의 환상적 조합인 셈이다.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당신은 너무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비이기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은 역설적으로 더욱 이기적인 사고와 행동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이기적이란 말은 효율적이란 말과 사실상 동격이다. 이기적으로 살아야 비로소 이타적인 삶도 가능하다는 역설의 순간을 만나게 된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그동안 우리는 너무 쉽게 이기를 비난하고 이타를 강요해 온 것이 아닐까.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자. 우리가 마스크를 쓰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이기적인 행위이지 다른 사람의 감염방지를 위한 이타적인 행위가 아니다. 

‘앙굿따라니까야’의 ‘화장터 나무토막경’에서 부처님은 ‘이타’를 우선하고 ‘이기’를 희생시키는 삶보다는 ‘이기’를 앞세우면서도 결국 ‘이타’로 귀결되는 행위를 가장 선호했다. 이제 우리가 마스크를 써야 할 이유는 더욱 분명해졌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은 개인의 이기적인 동기가 전체적으로는 이타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공적(公的) 행위가 될 것이다. 도덕적 인식의 공유를 한 번 더 요청한다. 마스크는 나의 바이러스감염을 막기 위한 것이다. 물론 나의 이런 이기적인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바이러스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내가 좋아서 한 일이 운 좋게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안다면 나는 그 일을 얼마든지 반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어느새 하지(夏至)가 지났다. 코로나사태로 빚어진 낯선 학교환경에 적응하느라 한 학기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허둥지둥과 우왕좌왕의 연속, 답답하고 속상한 날들. 그런데 지난주부터 마음의 숨통이 조금 트였다. 좋아하는 능소화가 꽃소식을 알려왔기 때문이다. 임금이 사는 궁궐과 양반집 마당에서만 볼 수 있었다는 꽃 능소화. 양화대교 부근 절두산성당 절벽 아래에 있는 능소화 군락지에 가보라. 멀리서 보면 붉은빛이 나고 가까이 가서 보면 주황색 물감이 금방이라도 손에 묻을듯하다. 한번 보면 만지고 싶고, 두번 보면 품고 싶을 것이다. 절두산의 능소화는 마스크 착용도 요구하지 않는다. 한강 쪽에서 그저 쳐다보기만 하면 끝이다. 코로나 아웃!! 꼭 한번 들러보시길.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hnk@dongguk.edu

 

[1544호 / 2020년 7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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