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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리스트의 피아노 편곡 작품

기자명 김준희

순수한 음악 열정, 법담에 기뻐하던 수행자 닮아

최초로 피아노 독주회 ‘리사이틀’ 열었던 피아노 신동
녹음기술 발달 전 베토벤 교향곡 피아노곡으로 편곡
무급으로 제자 가르치고 공개 레슨 열어 음악 전수도

프란츠 리스트.
프란츠 리스트.

예술가를 영웅으로 하는 개념은 낭만주의 사상의 중심이었다.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로 대표되는 시기에 프란츠 리스트보다 더 ‘영웅’의 이름에 어울리는 음악가가 있을까? 소년시절, 피아노 신동이었던 그는 리사이틀(recital)이라는 피아노 독주회를 열었던 최초의 연주자였다.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한 무대에서 감상하는 것에 익숙했던 그 당시의 관객들에게는 센세이셔널한 일이었다. 그는 바흐부터 쇼팽에 이르는 균형 잡힌 레퍼토리를 혼자 이끌어가며 오늘날의 독주회의 기틀을 마련했다.

리스트는 종종 자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는데, 그는 많은 작품들을 발표했지만 사실 순수한 그의 창작곡은 전체 작품의 일부였다. 그는 거의 충동적일 정도로 많은 작품들을 옮겨 적어 편곡했다. 합창곡을 피아노곡으로 변형시키거나 피아노곡을 관현악곡으로 바꾸기도 하고, 반대로 관현악곡을 피아노곡으로 다시 쓰기도 했다. 또 다른 작곡가의 가곡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의 대표적인 가곡 편곡 작품(transcription)은 슈베르트의 ‘마왕(Erlkönig)’이다. 원래의 성악곡도 피아니스트에게 상당한 테크닉을 요구하는 이 곡은 리스트의 편곡으로 더욱더 화려한 독주곡으로 재탄생했다. 평소 슈베르트 가곡(Lied)의 예술성을 높이 평가했던 리스트는 한 출판사의 의뢰를 받고 편곡작업을 시작했다. 이 곡에서 영웅적이고 천재적인 자신의 피아니즘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이후에 리스트는 ‘백조의 노래’ ‘겨울 나그네’ 등의 연가곡집의 몇몇 곡을 간결하게 편곡했고, 멘델스존의 ‘노래의 날개 위에’같은 곡들도 친숙하게 편곡했다.   

또한 리스트는 베토벤의 교향곡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하기도 했는데, ‘오케스트라보다 더 오케스트라답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특히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접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이 편곡은 ‘교향곡의 보급’이라는 의미도 가진다. 녹음기술이 발달되기 전, 가정에서 오케스트라의 작품을 피아노로 손쉽게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중 교향곡 9번의 편곡은 가장 훌륭한 편곡으로 꼽힌다. 리스트는 합창부분까지 베토벤 원곡의 수준 높은 전개 방식과 합창의 결합을 어법적으로도 잘 살렸다. 원곡에 충실하면서도 피아노의 효과적인 기법으로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을 잘 그린 이 곡에는, 시골집 벽에 베토벤의 초상화를 걸어 놓고 나중에 크면 ‘저 분 처럼’되고 싶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던 어린 시절 리스트의 모습이 담겨있다. 

리스트는 소년시절에는 주목받는 신동으로, 청년시절에는 유럽 각지에서 연주여행을 했다. 풍부한 음악성과 마법과도 같은 기교로 전 유럽을 매료시킨 그는 놀라울만한 체력을 바탕으로 연주와 함께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의 작곡 능력은 연주력 못지않게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베토벤조차 자신의 곡을 만들 땐 몇 번이고 고민을 하고 오랜 시간을 할애 했지만, 리스트는 달랐다. 그가 피아니스트로 빛나는 활동을 할 무렵은 피아노의 제작이 크게 발달한 시기였기 때문에 그의 모든 활동은 거침이 없었다.

그의 ‘재탄생’에 관한 업적 중 대표적인 것은 동시대의 오페라 작품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것이다. 단순한 ‘편곡’보다 ‘의역’의 의미가 더 강한 ‘패러프레이즈(paraphrase)’는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모차르트부터 벨리니와 베르디에 이르기까지 오페라의 주요한 선율을 피아노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은 매우 독특한 점이었다. 많은 청중들은 오페라를 직접 감상하기가 어려웠는데, 리스트가 패러프레이즈를 통해 해당 오페라의 정수를 더 많은 관객에게 들려 줄 수 있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리스트 청년시절 작품인 ‘노르마의 회상(Reminiscences de Norma)’은 대표적인 패러프레이즈 작품이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벨칸토 창법이 강조된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Norma)’ 여주인공의 선율에 초점을 맞춘 이 곡은, 성악가들에게는 기교적인 어려움 때문에, 또 오케스트라의 부족한 응집력으로 인해 전곡을 자주 무대에 올리지 못했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리스트의 손에서 ‘재창조’된 완성도 높은 이 작품에 청중들은 열광했다.

리스트의 또 하나 대표적인 패러프레이즈 작품인 ‘리골레토 주제에 의한 콘서트용 패러프레이즈(Concert Paraphrase on Rigoletto)’는 그의 가장 성공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유쾌하고도 장난스러운 오페라의 한 장면을 서정적이고도 장식적으로 표현한 리스트의 또 다른 모습을 느낄 수 있다. 

리스트는 30대 중반부터는 오케스트라의 지휘도 같이 하며 폭넓은 음악활동을 했다. 재능 있는 제자들을 가르쳤고, 그리고 50세에 가까워 졌을 때에는 하급 사제직을 받기도 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교사와 지휘자 역할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을 하면서도 작품 활동은 계속 되었고, 은퇴한 후에도 비록 적은 수지만 자선 연주회는 거르지 않았다. 그는 낭만주의 시대의 영웅적인 예술가였지만 음악을 인기의 도구로 사용한 적은 없었다. 언제나 음악 자체에 대해서는 진지했고, 하나의 사심도 없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향유하기를 바랐다. 그의 수많은 피아노 편곡과 개정작업도, 만년에 연주 활동을 줄이면서 무급으로 제자들을 가르치고 공개레슨(마스터클래스, master class)을 통해 그의 음악을 전수한 것도 순수한 음악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선배나 동료 음악가에 대한 헌정과 찬사도 언제나 함께 했다.

“존경, 겸손, 만족, 감사, 때로 가르침을 듣는 것, 이것이 최상의 행복이다. 인내, 온순, 수행자들과의 만남, 때로 가르침을 논하는 것, 이것이 최상의 행복이다.”

‘숫타니파타’(265~266게)의 내용이다. 여섯 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화려한 마차에 전용 피아노를 싣고 전 유럽을 돌며 전대미문의 인기를 얻었던 잘생긴 피아니스트 이면의 진심과, 노년에 들어 보여준 행보가 오버랩 된다. 

피아니스트 스티븐 허프(Stephen Hough)는 “리스트를 화려하기만 한 비르투오소로 인식하는 것은 피상적이다. 그는 10대 시절부터 꿈꾸어 오던 일이 있었으며, 결국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은퇴하지 않았는가.” 다른 사람의 공덕을 보고, 그의 보시 행위를 기뻐한다면[随喜功德], 얻는 복이 매우 크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야성적인 낭만주의 예술을 보여주었던 리스트의 ‘노르마’가 감미롭게 느껴지는 여름이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44호 / 2020년 7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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