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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쌀 씹듯이 해보세요”

  • 데스크칼럼
  • 입력 2020.07.10 20:05
  • 수정 2020.07.16 12:17
  • 호수 1545
  • 댓글 3

불교 쉽게 전달해야 하지만
쉬운 불교가 최선일 순 없어
해주 스님 ‘찐쌀공부법’ 역설

“불교는 어렵지 않고 어렵게 말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에요. 쉬운 말을 난해하게 얘기해서 그런 것이지 불교를 정확하게 이해하면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불교계에서 활동하는 분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이런저런 불교계 얘기로 시작해 출판과 포교 얘기로 이어졌다. 한 분이 “쉬운 불교를 지나치게 어렵게 얘기하는 게 우리 불교계 풍토”라고 토로했다. 불교 강연이나 법문할 때 생소한 용어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책을 쓰는 사람들이 자신이 이해 못한 부분은 얼렁뚱땅 넘기거나 복잡하게 쓰는 것을 자주 보았다고 했다. 쉽게 말하고 글을 쓰는 것은 훈련을 통해 이뤄지는 것인데 불교계는 이에 대한 자각이 부족하고 교육시스템이 정착되지도 않았다는 아쉬움도 드러냈다. 이어 그는 “어려운 글과 말은 당사자도 모르고 하는 경우가 많으니 굳이 어려운 책을 읽으려 애쓸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불교가 쉽다고 얘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어려운 책은 읽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는 다소 충격이었다. 말한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법문이나 불서가 어려우면 불교가 대중에게 다가서기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그렇더라도 “불교가 쉽다”는 얘기는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 여러 경전에 나오듯 부처님은 스스로 깨달은 법이 지극히 오묘해 사람들이 믿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했다. 법을 펴지 않고 열반에 들 것을 걱정한 범천왕이 “수많은 중생 가운데는 지나간 세상에 선한 벗을 가까이 하여 큰 공덕을 쌓은지라 부처님 법을 듣고 받아 지닐 만한 이들이 있습니다. 부디 이들을 위해 큰 자비심을 내어 미묘한 법의 바퀴를 굴려주소서”라고 청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불교는 전해질 수 없었다.

부처님이 전법을 망설였던 애초 이유는 법의 어려움에 있다. 인도에 내로라하는 수많은 사상가와 수행자가 있었지만 아무도 깨치지 못했던 무상의 진리를 오직 부처님만이 깨우쳤으니 그 가르침이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모든 악함을 짓지 말고 여러 선함을 받들어 행하라’는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衆善奉行)’은 세 살 먹은 아이도 아는 ‘쉬운 불교’다. 그러나 칠불통게의 다음구절인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자정기의(自淨其意)’는 불교의 핵심으로 참선, 염불 등 불교수행과 교학의 필요성도 여기에서 시작한다. ‘도(道) 통하기가 세수하다 코 만지기보다 쉽다’는 말은 세수하다 코를 만져 도를 이루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진의 날들이 있었는지를 헤아려야 한다.

쉬움이 강조되고 그것이 옳음처럼 간주되면 잃는 것이 많다. 2600여년간 부처님을 따르는 수많은 이들이 일생을 바쳐 부처님 가르침을 정밀하게 다듬고 외연을 넓혔다. 그런 노력들이 쌓여 부파에서 대승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논서를 탄생시켰고 팔만대장경으로 집성됐다. 수학의 미적분이나 물리학 법칙들이 어렵다고 해서 무용한 것이 아닌 듯 난해해 보이더라도 불교의 논서 자체가 정신문화의 금자탑이다.

동국대 명예교수 해주 스님은 경론 공부를 찐쌀 씹는 일에 비유한 적이 있다. 찐쌀은 벼를 추수하기 전에 덜 여문 벼를 쪄서 말린 후에 찧은 쌀이다. 처음에는 딱딱해서 씹기도 어렵고 별맛이 없다가 씹을수록 점점 더 고소함이 더해진다.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언설에 담긴 뜻대로 오래오래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깊이 관찰하고 실천하다보면 오묘한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편집국장
편집국장

지눌 스님이 ‘계초심학인문’에서 말했듯 쉽다거나 어렵다는 마음 모두 공부의 걸림돌이다. 그렇더라도 불교를 전할 때는 쉽게 설명하려 해야 하고, 배울 때는 찐쌀을 씹고 또 씹듯 묵묵히 나아갈 필요가 있다. 어려운 공부를 기꺼이 받아들일 때 불교학술서나 옛 분들이 남긴 해설서도 활구로 다가오지 않을까. 내 눈높이에 맞추는 게 늘 최선은 아니다.

mitra@beopbo.com

[1545호 / 2020년 7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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